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선생 Apr 04. 2024

드시다, 주무시다 對 마시다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에 2023년 6월 1일, 요즘 들어 자주 접하는 ‘먹으세요, 마시세요, 자세요’에 관한 질문이 올라와 있다. 이에 관한 답변은 다음과 같다.      


안녕하십니까?
질문하신 내용은 문법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관습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높임 어휘가 있다면 이를 사용하여 높이는 것이 자연스러우므로 '드세요/주무세요'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겠습니다.
'드시다'는 ‘먹다’의 높임말이며 '마시다'의 높임말은 따로 없다는 점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온라인 가나다 ‘높임 표현’ 답변 내용 2023.06.03. https://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273364     


  한국어에는 ‘마시다’를 가리키는 높임말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말을 높이기 위한 어미 ‘-시-’로 활용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마시다’의 높임말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마시다’를 ‘마시세요’라고 높이는 것을 무조건 비판해야 하는가. 차근차근 살펴보자.

  『표준국어대사전』은 한국어 어휘를 판단하는 데에 가장 좋은 사전이라고 배웠고,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선, ‘드시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형태를 보면 짐작할 수 있지만, 이 표현은 ‘들-’에 ‘-시-’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표현이다. 결국, ‘드시다’는 ‘들다’를 높인 표현인 셈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들다’는 동사로서 “아래에 있는 것을 위로 올리다”, “설명하거나 증명하기 위하여 사실을 가져다 대다”, “‘먹다’의 높임말”이라는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드시다’는 ‘먹다’의 높임말인 ‘들다’를 다시 높인 표현인 셈이다. 조금 더 말하자면, ‘먹-’의 높임말로 ‘들-’이 사용되고, ‘들-’에 ‘-시-’를 결합하면 ‘드시다’가 된다. 아래와 같겠다.     


  밥 좀 먹어.

  밥 좀 들어.

  밥 좀 드시어요.     


  ‘자다’의 높임말인 ‘주무시다’는 이미 그 형태로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그러니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먹다’는 ‘들다 > 드시다’로 나아가고, ‘자다’는 ‘주무시다’로 나아가는 데에 반해, ‘마시다’는 이미 그 형태가 ‘먹다’와 ‘자다’의 높임말처럼 ‘시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시-+-시-+-어+요’라는 형태를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나로서는 이미 ‘시다’가 보이는 형태에 ‘세요(시어요)’를 결합하는 어색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드시세요(드시시어요)’나 ‘주무시세요(주무시시어요)’가 받아들이기 힘든 형태인 것처럼 말이다.      


  근거 없는 반(反)-문법이지만, 공상을 끄적여 본다.

  어느 인터넷 자료에서는 ‘마시다’의 어원이 맛(맏)이라고 설명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마시다’는 『월인천강지곡』에서 처음 발견된 것으로 나온다. 그 구절은 “믈 다 마셔 그 모시 스러디니”라는 구절이라고 한다(http://old.koreaa2z.com/kd/cgi-bin/xjump2.cgi?ssid=142845&dbid=../kd/kd&no=498). 아래는 어원에 관한 설명이다.     


마시다 【동】(飮)
마시다의 어근은 ‘맛(맏)’으로서 명사다. ¶마시다(飮):믈 다 마셔 그 모시 스러디니<曲159>. 먹다(食)의 대가 되는 말로서 마시는 것은 입이기 때문에, 그 어원은 입의 뜻을 지닌다고 하겠다. 물다(咬)의 어근 ‘물(묻)’은 입(口)의 뜻을 지닌다. 무는 행위는 입의 행동이다.      

  어원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 없으므로, 믿을 것은 안 된다. 다만, ‘마시다’가 ‘드시다’나 ‘주무시다’처럼 높인 어미인 ‘-시-’가 붙은 듯 보이는 이유가 ‘맛어’ 따위가 본뜻에서 멀어져 ‘마셔’로 굳어진 것 아닐까 상상해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는 것 정도다.     


  다시 문법으로 돌아와 보자.

  ‘마시다’의 높임말로 내세우는 ‘드시다’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먹다’의 높임 표현이다. ‘먹다’는 “음식 따위를 입을 통하여 배 속에 들여보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음식은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밥이나 국 따위의 물건”을 가리킨다. ‘마시다’는 “물이나 술 따위의 액체를 목구멍으로 넘기다”, “공기나 냄새 따위를 입이나 코로 들이쉬다”라는 의미이다.

  결국 ‘먹다’는 ‘마시는 행위’를 포함하여 사람이 어떤 것을 자신의 신체로 들여보내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마시다’의 높임 표현은 ‘드시다’가 된다.

  ‘먹다’가 ‘마시다’를 포괄한 음식 섭취 행위를 나타내기는 하지만, 물을 마시는 행위 자체의 특수성을 살리지는 못한다는 점은 분명한 한계이기도 하다. 어원이라고 주장되는 ‘맛’과 월인천강지곡에서 보이는 ‘마셔’, 그리고 현재 사용하는 ‘마시다’의 불분명한 관계를 생각할 때, 이미 ‘마시다’는 그 말 자체로 낮추지도 높이지도 않는, 낮추기도 높이기도 가능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빠 물 마셔”라고 말하던 아이가 “아빠 물 마셔요”라고 말하면 충분할 것만 같다.

  물은 먹기도 싫고, 그래서 드시기도 어쩐지, 불편하니까 말이다.

  물 먹기 싫은 건 나만 그런가?

작가의 이전글 부족해서 배우는 중입니다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