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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 Jan 17. 2021

일상 그리고 꾸준함

그럼에도 소중한

   

   마지막 글을 쓸 때의 계절을 생각하면 눈이 내리는 이 계절이 현실감 없게 다가온다. 정말 오랜만에 돌아왔다. 여기를 버리고 다른 곳에 글을 썼다기보다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짧은 SNS에 글을 남기며 '연명'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많은 일들이 있었으나 글을 쓰지 못하고 여기에 새로운 소식처럼 털어놓을 만큼 드라마틱한 일은 없었다. 그냥 귀찮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럼에도 잘들 지냈냐고 물어볼 염치는 남아있다. 


잘들 지내고 계십니까?


마지막에 쓴 글은 에세이라고 표현하기는 그렇고 오래 고민했던 일종의 '소설'이었다. 의욕차게 시작했고 흔히 말하는 플롯도 구상하고 무려 등장인물의 이름까지 정해줬으며 나름의 결말도 준비했지만 더 쓰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이 브런치 계정의 의도와 상관없이 불특정 회사 사람들에게 알려져 버렸다는 이유(젠장!!)가 있고 두 번째는 아무래도 모든 첫 소설은 자전적인 이야기가 된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으며 세 번째는 그냥 게을렀기 때문이다. 하나 더 붙이자면 메인이나 어딘가에 소개되지 않으면 마치 성과 없는 글처럼 느껴지는 브런치의 구조가 한몫을 했다.


첫 번째는 처음 작가가 되고 의욕차게 내 카카오톡 프로필에 이곳에 쓴 글의 url을 소개하며 시작했다. 구독자를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보험업계에서도 최후의 수단이라는 '지인 영업'을  시작했고 그냥 자랑도 하고 싶은 마음에 무심코 올린 url의 파급력은 컸다. 난 아무도 내 카카오톡 프로필 따위는 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특유의 '까톡' 알림들이 울리며 나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임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프로필을 주시하고 있었는지 응원의 카톡들이 왔는데 그중에는 회사 사람들도 있었다. 아.. 분명히 말해야 하는 것은 내가 '회사 사람들'이라는 단어 자체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일부' 내 사생활 혹은 내 회사 바깥에서의 생각을 몰라줬으면 하는 사람들이다. 대화의 8할이 남 이야기인 사람들을 칭한다. 대화를 하다 보면 '아...이 사람은 내 이야기도 다른 사람들한테 이렇게 지껄이겠구나..싶은 사람들이 있다. 어릴 때는 다른 사람 비밀 이야기를 쉽게 내게 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한 어떤 깊은 믿음을 갖고 있다고 믿기도 했는데 나이 드니 그게 아니더라. 그들은 그저 남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담그지 못하냐??라고 할 수 있지만 이곳에는 우리 가족도 모르는 내 무의식의 생각들을 써보고 싶었던 나에게는 어떤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물론, 내가 작가로 대성하면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겠지만 과연 그런 날이 이번 생에 혹은 다음 생에(적어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가정했을 때)라도 오게 될까?


두 번째는 자전적인 이야기로 소설이 채워질 때 그 자전적 요소의 어떤 부분들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내 글을 봤을 때 느낄 감정들이 우려됐다. 좋은 것도 있겠지만 나쁜 것도 있을 것이고 그 요소들이 모여서 지난 기억들을 다시 현실로 옮겨놓는 일은 달갑지 않았다. 과거는 죽은 시간이다. 그 죽은 시간들의 등장인물들이 내 실수로 현재에 환생하여 다시 현실이 되는 것은 반갑지 않다. 난 적어도 오늘이 어제보다 1은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 생각이 바뀌어서 과거가 그립다면 나이 들어간다는 의미겠지. 내가 쓰려던 소설이 결국 내 어떤 경험을 통째로 가져온다고 생각하니 겁이 났고 한편으로는 그런 경험 없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쓰자니 내 상상력이 고갈됐다. 


세 번째는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아우른다.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하니 그저 귀찮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예전에는 머리가 아프면 길게 글을 썼다. 하지만 그것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뭐라도 해보려 하면 난 꼭 실수를 한다. 생각해보니 내가 원고료 받는 작가도 아니지 않은가? 좋으려고 쓰기 시작한 글인데 스트레스라니.... 안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 썼다. 대신 SNS에 짤막한 글들을 남겼으나 그것을 여기에 옮기자니 역시 첫 번째, 두 번째 이유가 발목을 잡았다. 생각했다. 여기에 어떤 글을 써야 할까? SNS에나 쓸 글을 혹은 일기장에나 쓸 글을 쓰는 게 많나? 그것도 나름의 생산력이겠지만 이 브런치라는 곳에서 그것을 '생산'이라 칭할 수 있을까? 구독자들에게 쓸데없는 새 글 알림이나 가게 하는 똥덩어리 글이라면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차라리 기대감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긍정 기제가 되지 않을까?


마지막, 난 칭찬을 받아야 더 잘하는 사람이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 정말 잘하는 사람이고 매우 중요한 동기부여가 된다. 아... 그렇다고 내 심리를 분석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그냥 남들처럼 상처 받고 남들처럼 기뻐하며 살았다. 칭찬에 목마른 아이는 어린 시절에 만족하지 못하는 가정의 사랑... 뭐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예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랑'을 받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주는 입장에서도 생각하면 다른 문제다. 주는 사람은 줄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을 줬는데 받는 사람이 부족하다고 원망할 수는 없다. 지금의 나를 바라보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어른이고 사내다. 어린 시절의 어떤 기억이 성인기의 근간을 이루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어쨌든 지금의 나는 칭찬이 있어야 더 멀리 뛰는 사람인데 브런치의 구조는 그런 나의 동기를 갉아먹게 만들었다. 브런치의 특성상 메인(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나?)에 소개되지 않으면 글을 읽는 사람은 구독자 정도뿐이다. 다시 말하면 팔리지 않는 글이 되어버린다. 뭐라도 해서(결국 잘 써야 하겠지) 어떤 형태로든 내 글을 노출시키지 않으면 업로드하는 순간 반짝 조회수가 올라가고 바로 바닥으로 떨어진다. 여기는 말 그대로 일기장이 아니고 누군가 내 글을 봐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관심 없는 글이 된다. 그 글은 죽은 글이 되며 다시 말하면 그 글을 쓴 사람도 죽은 사람이 된다. 그렇게 따지면 난 글을 올리고 여러 번 죽었다. 대문짝만 하게 노출된 글을 몇 개뿐이고 나머지는 그냥 브런치 서버 용량만 잡아먹었다. 그게 싫었다. 정확히 표현할까? 그 꼴이 보기 싫어서 더 글이 쓰기 싫었다. 다 나름의 노력으로 쓴 글인데 AI가 픽 하는지 브런치 직원분들이 픽 하는지 뭐가 됐든 간택을 받아 노출되지 않으면 내 글이 형편없는 것 같았다. 아.. 나도 나름 글 잘 쓴다는 말 많이 들었는데 우물 안 개구리구나...라는 반성보다는(난 지나친 성찰은 인생에 독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웃기고들 앉았네?'라는 반발감이 먼저 들었다. 그러면서도 인공지능 혹은 브런치 담당자의 눈길을 끌만한 제목과 사진을 고르는 나를 보며 웃음이 나왔다. 그런 것들을 신경 쓰며 글을 업로드하는 시간(가급적 사람들이 많이 볼만한? 혹은 직원님께서 기분 좋으실만한 시간이 출근 직후인가? 같은)까지 생각하게 되며 글을 멈췄다. 이게 뭐라고?


그러나 돌아왔다. 돌아온 이유는 뭐 별거 없다. 다시 쓰고 싶어 졌고 '뭐 어쩌라고? 이것은 내 이야기니까 누가 뭐라고 하든 위축될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첫 번째 이유에서...회사 사람에게 내 모든 모습을 노출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 모습도, 저 모습도 다 나의 모습인데 그걸 숨길 이유가 없다. 누가 뭐라고 하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같은 이유에서 마지막 이유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읽지 않는 글이라면 어쨌든 차곡차곡 모아서 다듬고 보완해서 더 큰 그림을 그리면 된다. 이곳이 최종 정착역은 아니고 글을 쓰지 못하면 밥을 굶는 상황도 아니니 여유를 가지고 계속하면 된다. 역설적으로 절박하지 않으므로 더 좋은 글이 나올 수도 있는 거 아니겠나? 이도 저도 안 되면 나중에 모은 돈으로 자비 출판하면 되지! 두 번째 이유는 여전히 어렵지만 극복하고 또 감당할 문제다. 내 자전적 이야기가 어떤 형태로 글에 녹아들지 모르겠고 준비해둔 '소설이 언제 다시 여기에 등장할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어떤 내용을 썼느냐보다 그 내용들에서 어떤 것을 보았고 어떤 것을 느꼈느냐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레짐작하며 뭐라도 한 줄 쓰는 것은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이제 하나의 이유가 남았고 역시 가장 큰 적이다. '귀찮음'과 '게으름'이다. 그 두 가지는 인생의 여러 가지를 덜 성취하게 만들거나 아예 성취하지 못하게 만드는데 글도 마찬가지다. 소설을 구상하며 느낀 것은 소설이라는 단어에 연관 검색어로 '근면 성실 꾸준함 인내' 같은 단어들이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뭔가를 계속 해내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경지가 분명 있는데 '글'이 거기에 포함된다. 천재라 평생 단 한 권의 책만 쓰고 그걸로 인정받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 한 권의 책도 그 순간만은 꾸준했기에 얻은 성취다. 


정리하자면 앞으로 이 공간에 읽히는 혹은 읽히지 않는 글들이 계속 채워질 수 있느냐? 는 나의 꾸준함에 달렸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 뭔가를 쓰고 싶어 지느냐에 달렸다. 확답은 못한다. 나는 아직 나를 다 모르고 앞으로도 언제쯤 다 알 수 있을지 모르니까. 하루에 한 편씩 글이 올라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게 어떤 형태로든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아니 두 명 정도는 있다면 어떤 형태든 그게 나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아..이 사람은 가끔씩 글을 쓰는구나.. 혹은 매일 쓰는구나... 그 모든 모습이 나이며 하나의 개성으로 생각해줘도 좋겠다. 그럼에도 하나 확실한 것은 난 '언제가 됐든' 계속 글을 쓸 거라는 사실이다. 이 글 뒤로 또 몇 달 뒤에 다음 글을 쓸 수도 있지만 항상 나는 어떤 형태로든 어딘가에는 뭔가를 쓰고 있다. 나의 꾸준함은 글의 개수가 아니라 '어쨌든 멈출 생각은 없디'는 걸로 알아주면 더 좋겠다. 


이쯤 되니 나도 몹시 궁금해진다. 다음 글은 언제가 될까?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는 시간에 글 공개를 하진 않았겠지. 하지만 내 결심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당당하게 업로드한다. 또 하나의 독백으로 끝날지라도 오늘의 나는 이렇게 글을 쓰면서 문장들에 남았기에 부족하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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