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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 Apr 27. 2024

‘유당불내증’에 무너지며

내게 남은 것들은



너무 오랜만에 쓰는 글입니다.

이런 '오랜만'이 주는 장점은 한참 지나서 보면 내가 그때는 '참 좋다'라고 생각했던 글들이 참으로 부족하다는 아픈 현실을 깨닫게 해 주고 동시에 '나를 객관적으로 볼 만큼' 내가 성장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준다는 사실 아닐까 싶습니다.


한때는 '잘했다'라고 했던 많은 것들을 지금은 부족하게 볼 수 있을 만큼 내가 가만히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구나

아예 의미 없는 시간들은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으로 글을 시작해 봅니다.


구구절절 오랜만의 소회를 쓰는 것은 너무 뻔하고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 오늘은 짧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살이 조금 쪘습니다. 뻔한 말이지만 마음에 살이 쪄야 하는데 대부분 마음의 무게와 체중은 반비례 관계로 흘러가는듯 싶습니다. 저도 나름의 필살 다이어트 방법이 있는데 그건 특정 브랜드의 선식을 하루 두 끼 정도 마시면서 운동을 곁들이는 방법입니다. 보통 이렇게 하면 한 달에 5~6키로 정도는 쉽게 감량을 하는 편이라 다이어트에 큰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았습니다. '내게 없는 것은 의지일 뿐이지 방법은 있다' 뭐 그런 생각이었죠.


그리고 이번에도 선식을 마시며 감량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일부러 '소화가 잘 되는' 락토프리 우유를 섞었음에도 먹자마자 배가 불편해집니다. 당황하여 선식의 성분을 보니 '유당'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 이런 정도의 소량(?) 유당에도 몸이 못 견디는 것입니다.


사실 유당불내증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 저희 세대에서는 서서히 끝물이 된 '우유 급식'을 끝까지 신청해서 매일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켰고 따로 집에서도 하루 1리터 가량 마시곤 했습니다. 군대에 가서는 또 얼마나 많이 마셨을까요. 저는 우유만 마시면 배탈이 나는 대부분의 '전우'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아..저들은 장이 약하구나..' 하늘 아래 강한 사람이 있고 나약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적어도 장 측면에서는 강인하구나'라고 믿었습니다. 군대에서 마신 우유의 양이 지금 돌아보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이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마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안 먹는 우유는 대부분 제가 대신 마셔버렸으니 그 짧은 시기 대한민국에서 우유섭취량만 따지면 초상위권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우유를 즐겨 마시다 전역을 하고 대학교에 복학을 했는데...일이 벌어집니다. 그때도 매일 차갑디 차가은 우유를 즐겨 마셨는데 어느 전공 수업 때 살면서 처음 듣는 뱃속의 꼬르르르륵 소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마치 폭탄이 뱃속에서 터지면 이럴까 싶을 정도로 가스가 차오르기 시작하고 식은땀까지 나는데 깐깐한 전공 수업 교수님은 중간에 나가는걸 일종의 '학점 포기 선언'으로 받아들이시는 분이라 정말 이를 악물고 참았고 쉬는 시간이 오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뛰었습니다.


그 이후 저를 괴롭히기 시작한 '유당불내증'의 시작이었습니다.


병원으로 당장 가보니 한참 이야기를 듣던 의사 선생님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럼 우유를 안 마시면 되잖아요?'라고 되물었고 '그런 뻔한 말이나 들을 거면 내가 여길 왜 왔나요?'라고 하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아니 선생님 없던 유당불내증이 갑자기 올 수 있나요?'라며 절규했고...선생님은 다시 심드렁한 표정으로 '원래 그래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의학에는 '원래 그런 것들'이 참 많나보다..'원래 그런 것들'을 공부하는 게 의학이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무튼 그 이후 다시는 예전처럼 우유를 마시지 못했고 오히려 점점 유당에 대한 예민도가 높아져 이제 달달한 '라떼'도 피하게 됐는데 이제 선식마저 못 마신다고 생각하니 참담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실망에 빠져 화장실로 달려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마다 평생 마실 수 있는 우유의 양은 정해진 것이 아닐까? 난 그래도 그 용량이 컸는데 어릴 때부터 너무 빨리 채워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억울할 것도 없었습니다. 누구나 삶에 주어진 것들이 있고 사람의 숙명은 '유한함'인데 단지 내게 허락된 양을 빨리 채워버렸을 뿐이니까요. 그렇다면 삶에 있어 다른 많은 것들 역시 각자의 운명에 따라 총량은 주어졌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아픔도, 슬픔도, 행복도, 사랑도, 인연도, 악연도, 돈도, 웃음도, 눈물도 사람마다 정해진 양이 있어서 그걸 다 채우면 이제 더는 담을 공간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우유는 그걸 넘기면 복통을 주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예를 들어 내게 주어진 슬픔을 다 채우면 이제 슬픔은 나를 찾아오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나는 다시는 슬픔을 느끼지 못할 만큼 꽉 채워 담았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그 이후 찾아오는 슬픔은 내가 거부하면 됩니다. 내게 허락된 슬픔은 이미 꽉 채워 담았으니 그 이상의 슬픔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흘려보내고 다른 대안의 감정을 생각하면 됩니다. 제가 지금은 '락토프리' 우유를 찾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슬픔을 통해 행복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부터 슬픔을 흘려보낼 것이고 행복이란 대단한 어떤 성취가 아니라 심플하게 '슬픔'이 없는 순간들의 모음이라는 것들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내가 생각했던 행복이 너무 거창한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었나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도 있고요.


그런 생각들이 좀처럼 긍정적인 감정을 '만끽'할 정도로 누리지 못하고 '더' 찾고 그만큼 실망하는 욕심쟁이 같은 저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행복의 순간은 아주 작은 슬픔이 왔을 때 지난 과거에서 찾게 됩니다. '아.. 지나 보니 평온한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이 따분함이나 지루함이 아니라 행복이었구나..'싶은 거죠. 이제 '라떼'도 못 마시는 제가 마치 영웅호걸처럼 하루 1리터씩 우유를 마시던, 그러나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걸 전혀 행복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을 '행복'의 순간으로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오늘은 퇴근하면서 다른 선식을 검색해 봤습니다. 아직 적당한 제품은 찾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찾게 되겠죠. 그때는 또 지금을 어떤 이유로 '행복'이라 그리워할지 모르겠습니다. 한가롭게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자체를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고...아무튼 그래서 사람은 지금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나 봅니다.


하루만 지나도 그리워질 오늘이니까요.


오랜만에 글을 썼더니 두서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몇 번이나 글을 다시 읽어봤는데 오히려 그러다 보니 글을 더 쓰지 않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음만 '프로 작가'라 재주에 비해 과한 공을 들이니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 같네요.


그런 프로의 영역은 정말 훌륭한 작가분들에게 맡기고 저는 이렇게 일상의 소소한 생각들을 앞으로 종종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진 것은 객기고 없는 것은 끈기라 약속은 못하지만 일상의 많은 순간들에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고 살아가니 짧게라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토요일이 벌써 시작 됐습니다. 내일이면 바로 그리워질지 모를 오늘을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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