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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Jun 14. 2022

따뜻하고 다정한 우리가 되길


울산에 정착한 아프간 특별 기여자 자녀들의 학교 입학을 앞두고 지역 학부모들이 거세게 반대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들 마음 놓고 보낼 수 있는 대안을 달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고, 해당 사건을 다룬 기사 아래에는 차마 옮기기 힘든 혐오의 댓글들이 달렸다. 울산 지역의 학부모들은 일방적인 행정에 대한 불만일 뿐 아프간인에 대한 혐오는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나는 그들의 피켓에서 혐오가 아닌 다른 마음을 읽을 수 없었다. 

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나에게 이런 뉴스는 남의 일이 아니다. 누군가 내 아이 때문에 제 아이 학교 보낼 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내 마음은 어떨까? 불편하고 아린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리던 중 울산시와 교육청은 학부모들과의 만남을 통해 6-12개월 동안 아프간 아이들이 우리말을 익힐 수 있도록 교내 특별 학급을 운영하기로 합의를 하고, 아프간 학생들은 결국 2주 늦게 입학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안심이 되었지만, 마음 한구석 답답함이 아주 가시진 않았다.

딸아이가 이태리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같은 학교에 손녀를 입학시키신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입학식 소감을 전하셨다. 

“학교가 참 좋더라. 외국인 아이들이 많지만, 아이들이니 서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할머니는 평소 우리 아이를 참 예뻐하고, 외국인 애기 엄마가 어려운 일이 있는지 늘 먼저 살피는 다정한 분이셨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가 무심코 건넨 한 마디, ‘외국인 아이들이 많지만’이라는 말에 마음을 베이고 말았다. 그 간 당해도 아닌 척하고, 보았어도 못 본 척했던 인종 차별, 배척의 기억들이 한데 모여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할머니의 한 마디에 남의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내가 안쓰럽고, 태어났지만 조국은 아닌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는 딸아이가 측은해졌다. 그래도 이곳에서 이 이 이웃들과 살아야 하고, 내 아이는 이곳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니, 나는 할머니 말씀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바보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으로 내 마음의 상처를 숨겼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만난 할머니께서 내 손을 잡고 사과를 하셨을 때는 더 이상 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집에 돌아가서 생각해보니 실수를 하신 것 같아, 꼭 나를 만나 사과를 하고 싶었다고 하셨다. 매일 만나는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그만 실언을 하셨단다. 외국인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는 손녀를 걱정하는 마음을 떨쳐버리시지는 못하셨겠지만, 적어도 내 손을 감싼 주름진 손이 전하는 온기는 분명 진심이었다. 우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제의 상처를 깨끗이 치료할 만큼 큰 위로였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훔쳐가며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다.

덴마크로 이사 와서 아이 학교 배정을 받고는 온 가족이 긴장을 했었다. 설레기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 친구를 만날 아이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셋이 다 처음인 곳에서 치열하지만 의연하게 적응을 해내고 있었지만, 아이가 낯선 환경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렸다. 아이도 아는 친구 하나 없는 교실로 들어갈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은 눈치였다. 그렇게 긴장하며 등교하는 월요일을 기다리던 일요일에 초인종이 울렸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문 앞에 서서 우리 아이와 한 반에서 공부하게 될 아이들과 엄마라고 소개를 했다. 우리 아이 또래의 여자 아이들 두 명은 우리 아이의 이름을 똑바로 발음하며, 내일 학교에서 만나서 재미있게 놀자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같이 온 아이 엄마는 우리 아이가 운동을 좋아한다고 들었다고 아는 척을 해주었고, 운동 외에 관심 있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딸아이는 내 뒤에 몸을 반쯤 숨기고 수줍게 손님들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얼른 제방으로 뛰어가 큐브를 들고 나왔다. 아직 말이 서투르니 백마디 말보다 행동을 하기로 했는지, 그간 친구 없는 외로움을 달래며 연마한 큐브를 맞추는 기술을 선보이고, 처음 보는 친구들의 박수를 받았다. 박수에 우쭐해진 아이는 아끼는 초콜릿까지 가져와 새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손님들은 반 친구들이 우리 아이를 환영하는 마음에서 만들었다는 그림 모음을 선물로 전해주었다.  손님들을 보내고 훨씬 밝아진 아이의 표정을 보고, 우리 부부는 조금씩 눈물을 흘렸다.

이방인으로 살면서 피부색이 다른 우리를 보는 사람들의 표정, 무심하게 던진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기도 했고, 진심 어린 사과 한 마디, 소박한 환대와 같은 것들에 다시 살아낼 힘을 얻기도 했다. 자발적인 이방인에게도 이처럼 타향살이는 녹녹하지 않은데, 하물며 살아 남기 위해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상실과 슬픔은 헤아릴 수 조차 없다. 그렇게 슬픔을 안고 타향살이하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등교를 막으며, 아이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어른들을 마주하는 마음은 어땠을까? 나를 격렬하게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어른들의 혐오를 지켜본 대한민국 아이들이 새로 온 친구들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대신 두려움과 혐오를 습득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약속한 6-12개월이 지나면 아프간 아이들도 일반 학급에서 문화도 피부색도 문제되지 않는 학교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기대해 본다.

울산에 거주하는 85명의 아이들이 모두 내 아이와 같이 마음의 상처도 지우고, 편견의 무게도 덜어낼 만한 환대를 경험하길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란다. 

대한민국이 이방인들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참 좋은 나라가 되어주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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