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음식을 넘기지 못하던 노모(老母)는
결국 의식을 잃고 가까운 병원으로 실려 갔다.
신우신염으로 시작되어
염증이 온몸에 퍼지고,
혈압은 위험할 정도로 떨어지고,
심장 기능까지 문제를 일으켜
심장 전문의가 있는 큰 병원으로 다시 옮겨졌다.
정밀 검사가 진행되었고, 결국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치료를 받고 의식을 차린 어머니는
집에 가서 식구들 밥 해줘야 한다고 떼를 쓰고,
주삿바늘을 자꾸 빼려 해서
결국 사지를 침대 난간에 묶인 채 일주일을 보냈다.
중환자실의 면회 시간은 7시 30분에서 50분까지 하루 한 번.
20분 정도 허락된 면회시간에
뼈만 남은 노모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왔니? 밥은 먹었니? 배고프겠다.
내가 얼른 가서 밥 차려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꼼짝도 할 수 없이 묶여있는 어머니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한 말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창피함이 나의 슬픔을 이길 수 없었나 보다.
어머니의 묶인 손을 잡고 펑펑 울었다.
신파를 찍었다.
어머니의 기억은 50, 60년 전 배고프고 가난하던 시절로 소환되어 버렸다.
가난하던 시절 어린 자식들 따뜻한 밥 해 먹이는 것이
어머니의 유일한 의무이고 또 기쁨이었다.
뒤죽박죽되어 버린 어머니의 뇌세포는
이제 모성애만 남기고 다 사라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