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에서 맞이하는 첫날 아침이다. 비행은 좋았으나 몸이 고단한 것은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점점 쓰레기가 되어가는 몸을 어찌해야 할지...... 긴 여행을 하려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휴식이다. 쉼표가 없는 여행은 고행이 되어 버린다.
첫날 아침. 퉁퉁 부은 얼굴과 살짝 부르튼 입술이 "힘들다"라고 "알아달라"라고 생색질을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날은 캠핑을 위한 장비 구입 등이 주 일정이다. 나머지는 둘러보기, 살펴보기 정도. 우선 커피를 한 잔 들고 테라스로 나섰다. 아프리카 남대서양의 너른 바다가 찰박찰박 마음에 일렁임을 만든다. 오긴 왔구나!
여행하는 동한 동행이 되기로 한 우리는 첫날 아침 굿모닝 인사를 어색하게 나누고 두 팀으로 나뉘어서 일과를 시작했다. 한 팀은 여행 일정을 확인하고 한 팀은 식사 준비를 했다. 나영이라는 친구는 독일에서 유학 중인 친구였는데 아프리카 여행을 위해 곧장 건너온 미모의 여성이었다. 나영인 음식 하는 것을 좋아했고 상당히 솜씨도 좋았다. 무엇이든 열심히 노동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미스터 청일점과 여자 친구인 또 한 명의 여성은 영어 능통자로 일정을 짜고 필요한 것들을 확인하는 일을 했다. 방송사 파업으로 갑자기 떠나게 된 여행이었다. 때문에 일정에 관해선 그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던 우리는 미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해서 나와 후배는 나영이와 함께 주로 식사 당번을 했다.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누리길 바라면서..... 설거지는 미스터 청일점이 주로 맡았고 나머지 멤버들이 거들었다.
이 날은 야외 테라스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잘 먹었다. 해외에 머물다 아프리카에 온 동행자들은 한국 음식을 반겼다. 음식 사진을 찍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냈는데 아프리카에 있는 거 맞느냐고 했단다. 우리는 이후에도 밥을 열심히 챙겨 먹었다. 장거리 이동에 배가 항상 헝그리 했다. 투정 따윈 있을 수가 없었다.
한국식이라 해봐야 라면 수프 혹은 고추장 된장을 이용한 국과 밥에 고기를 하나 더 얹은 메뉴가 전부이다. 무엇인가로 국물을 내고 수제비를 던져 넣거나 당면을 넣거나 라면을 넣었고, 고기 추가.
우리의 시그니처 식단이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소고기가 1kg에 우리 돈으로 8천 원 가량이다. 오히려 기름진 돼지고기가 비싸서 삼겹살은 특식으로 딱 한 번 구워 먹었을 뿐이다. 모닥불에 구워 먹었던 그 삼겹살의 맛은 아프리카에서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우리의 지성은 사라졌고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입을 벌린 채 통삼겹살만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케이프타운의 첫 번째 얼굴
이곳엔 큰 쇼핑몰과 펍, 요트 정박지가 있어서 호주의 어떤 곳인 듯 착각하게 만든다. 거대한 빅토리아 쇼핑몰을 관통해서 반대쪽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오면 항구가 나온다. 우리가 이곳을 찾아간 목적은 아래의 사진 속 '케이프 유니언 마트"때문이다. 이곳에서 사파리 캠핑에 필요한 텐트와 침낭 등 야영 도구를 저렴하게 구입했다.
아프리카 여행하는 내내 우리는 캠핑 사이트에서 야영을 했다. 텐트며 침낭을 한국에서 가져가는 것보다 이곳에서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서의 캠핑을 생각하기보다는 야영을 떠올리면 좋을 듯하다.. 후배와 내가 산 3만 원을 넘지 않았던 2인용 텐트는 사용 후 버리고 올 생각이었지만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아까웠다. 결국 캐리어에 구겨 넣어서 한국으로 데려왔다. 수요가 많다 보니 캠핑 장비가 저렴하고 아주 쓸만했다. 관광객들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가장 대표적인 숙박 형태가 야영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야영 방식에 대해서는 캠핑을 이야기하는 날 자세히 적을 생각이다.
이곳엔 주로 백인들이 많이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흑인들의 기억은 공연 중이던 한 그룹이 떠오를 뿐이다. 기억나는 큰 이미지 틀에서 단조롭게 구분해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니 참고를 바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역사는 세계사를 공부한 이들이라면 대략은 알고 있을 것이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나라. 우리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처럼 곳곳에서 그에 대한 남아공 사람들의 사랑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념품에서조차. 남아공은 네덜란드와 영국이 아시아로 가려는 길목에서 아프리카를 중계지로 삼아 정복했던 땅이다.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면서 인간의 탐욕과 광기와 오만함으로 땅이 파헤쳐지고 피를 흘려야 했던 서러운 땅이기도 하다. 케이프타운엔 그 정복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두 얼굴을 이루고 있었다.
케이프타운의 두 번째 얼굴
빅토리아 & 알프레드 워퍼 트론트 지역이 케이프타운의 두 얼굴 중의 하나였다면 또 다른 얼굴은 다운타운 '롱스트리트' 거리에 있다.
빅토리아 몰에서 굳게 닫혀있던 지갑이 활짝 열리고 싶어 했던 곳이 여기 '그린 마켓'이다. 사진 속의 저 잘생긴 사자 얼굴을 사버릴 뻔했다. 내 얼굴에 "갖고 싶다"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는지 주인아저씨가 흥정을 계속 걸어왔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캠핑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짐을 늘여서는 안 되는 경종이 머리에서 딸랑딸랑 울린 덕에 충동구매를 면할 수 있었다. 얼마나 힘들던지..... 러시아를 갔을 때 길거리 노인에게서 샀던 작은 그림과 몽골에서 가져온 말 타는 칭기즈칸이 늠름한 그림 액자가 집 어딘가에서 결국 뒷방 신세를 지고 있음을 상기하며 겨우 돌아섰다. 이곳에는 토속적이고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는 기념품들이 많았다. 솜씨가 꽤 좋아서 잘 만들어진 수공예품들도 종종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케이프타운의 두 얼굴 중 이곳이 더 좋았다. 토속적인 분위기, 원래 그것에 속하는 분위기.
심쿵이었지만 안전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을 지나 큰 도로로 나오는 동안 따라오던 흑인 아이는 계속 무엇인가를 요구했고 우리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팔을 잡으려 했다. 우리의 미스터 청일점이 제지하며 엄격하게 쫓아 보내는 멋진 모습으로 보디가드를 해줬기에 망정이지 마음 약해져서 어리바리할 뻔하지 않았나 싶다. 이 지역에 게스트하우스가 많은 곳이라고 했다. 아마도 관광객들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구역인 듯하다. 안전을 위해서는 항상 본인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점만 기억한다면 상상(?)하는 것만큼 위험한 곳을 아닐 것이다.
'케이프타운의 두 얼굴'이라 소제목을 달았지만 지금의 역사를 둘로 나눠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역사를 책으로 공부했다 한들 함부로 언급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잘 몰라서 뭐라 하기 어렵지만 "힘들었겠네요"라는 정도로 섣불리 언급하는 것은 더더욱 싫다. 그저 한 번은 "어떠했을까?" 생각해보는 시도는 해볼 수 있었기 때문에 기억하고자 붙여본 제목이다. 원래 살았던 이들의 역사와 그들의 땅을 가지고 싶어 했던 정복자들의 이야기와 인간의 탐욕에 대한 역사가 새겨진 곳이니까.
태양의 땅
돌아오던 길에 들린 선셋 비치에서의 일몰은 정말 장관이었다. 절경이었고 신이 내린 선물이었다. 멀어도 한 먼 이국 땅에 내가 여행자로 와있음을 또다시 알게 했다.
해변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모래사장에 내려선 우리는 멀리 테이블 마운틴이 보이는 바다 수평선과 마주 섰다. 뜻밖에 한숨이 나오더라. 깊은 한숨. 탄식. 보랏빛이 되나 싶더니 어느새 우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듯한 붉은 바다와 붉은 하늘과 붉은 해변으로 바뀌는 선셋 비치를 보면서 나는 혼자 아프리카에 온 것을 자축했다. 새로운 것을 보아도 무디기만 했던 죽은 감성이 모처럼 눈을 뜨는 것에 슬프기도 했던 아름다운 순간.
이 날까지도 몰랐다.
아프리카는 매일매일 바다의 수평선으로 혹은 사막의 지평선으로 뜨거운 태양이 지는 것을 바라보게 하는 땅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