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언덕에서 등산하기.
세스림의 마지막 아침
사막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2박 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다시 장거리를 이동을 해야 한다. 떠나는 날 보려고 나미브 사막의 최고의 관광지, 일출 명소로 유명한 '듄 45'를 남겨뒀다. 일출을 보고 돌아와서 짐을 마저 정리하기로 하고 서둘러 야영장을 나섰다. 캠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듄 45가 위치하고 있어서 차로 조금만 가면 되는 거리지만, 모래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사막의 아침, 정확하게는 사막의 새벽은 낮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서늘한 공기와 서늘한 습기를 머금은 사막 언덕 사이로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하루의 푸르스름한 기운이 잠을 깨운다. 아프리카지만 새벽은 패딩 점퍼를 입어야 했다.
조금 늑장을 부렸을 뿐인데 벌써 해가 빠꼼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급해진다.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유전적 본능의 소리 "빨리빨리". 아무리 서둘러도 우리보다 해 뜨는 속도가 더 빠르다. 멀리 걸어 갈수록 태양이 더 크게 보인다고 했는데 이번 여행은 실패다. 모래 언덕이지만 정상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산허리에서 멈췄다. 우리나라에 첩첩산중으로 된 산맥이 있듯이 세스림엔 모래언덕이 첩첩 산맥을 이룬다. 산 능선을 타듯 모래언덕을 따라서 줄기를 타고 올라가면 정상, 즉 가장 높은 모래 언덕에 도착한다고 했다. 지리산 일출을 보려고 행렬을 이루는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풍경이 사막에서 그대로 재연되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해가 뜰수록 붉은 사막의 이편과 저편의 색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검은 사막과 붉은 사막의 대비점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느라 열심이다. 국적 불문, 지각한 사람들의 발길이 급한데 사막 언덕을 올라가는 걸음이 마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모래 언덕의 등뼈를 따라 걸어야 쉽게 갈 수 있다. 한 줄로 늘어서서 올라가는 행렬 사이로 마음 급한 사람은 둔덕을 타려고 시도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모래를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듄 45의 일출과 모래 언덕 구르기
아침 일찍 나선 등산(?) 후유증인지 후배가 소화불량 증상을 보인다. 등을 두드려 주고 체기를 가라앉히고 다시 모래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온 아프리카인데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다. 능선에서 정면으로 뜨는 일출을 꼭 봐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워가며 겨우 중간 지점에 올라섰다. 태양 빛을 그대로 반사하는 모래사막의 붉기 붉은 색감은 아무리 봐도 현실감 제로다. 마주 보이는 모래언덕 너머로 붉게 뜨는 태양을 보고 있자니 과연 동해에 뜨는 그것과 똑같은 태양이 맞나 싶다. 맞겠지.
이렇게 하루를 또 여행하게 되는구나. 아직 돌아가지 않아서 좋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어서 좋고, 건물 하나 없어서 좋고, 낯선 곳이어서 더 좋다. 붉은 사막에서 일출을 보는 내내 모두의 얼굴색이 같아졌다. 옆에 앉은 백인 아저씨도 우리도 몸매가 정말 좋은 흑인 언니도 붉디붉은 얼굴로 태양을 마주 보았다.
한참을 앉아서 노닥거리고 나니 어느새 주변이 하얗게 밝아온다. 해가 중천에 뜨기 직전이다. 이제는 내려가는 게 일이다. 우다다다다~. 어떤 백인 아저씨가 '헤벌레~"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표정으로 박장대소를 하면서 아주 높은 곳에서부터 뛰어내려온다. 곧장 직진을 하다가 사람이 많은 구간에서 둔덕으로 내려서더니 그대로 아래 바닥까지 뛰어내려 간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누가 봐도 속도조절 실패다.
구경하던 사람들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그 이후 릴레이처럼 한 팀씩 모래 둔덕을 타고 뛰어내려 간다. 경사도가 제법 되는 언덕이라 제각각 굴러가는 모양새가 참 다양하다. 주르를 미끄러지는 사람들~ 캥거루처럼 점프하고 내려가는 사람들~ 얼마 못 가서 의지를 잃고 몸이 가는 대로 굴러가는 사람들. 그래도 모두 함박웃음 짓고 있는 건 같다. 모래 놀이를 해본 기억이 언제인지..... 어릴 적에도 이렇게 요란하게 놀지 않았던 것 같은데.
동심이 별 거인가 싶다. 별 게 아닐수록 즐거운데, 하고 나면 민망하기도 하다.
살짝 부끄러웠던 모래 언덕 구르기를 끝으로 세스림에서의 2박 3일 여정을 끝냈다.
모래사막에서 보낸 즐거움만큼 몸이 고단한 것도 사실이라 다음 목적지는 사막과 바다의 경계를 이루는 도시, 스바코프문트로 정했다. 오랜만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을 하고 빨래와 샤워를 해결한 후 다시 캠핑을 할 예정이다. 그다음엔 사자후를 들었던 아프리카 최고의 사파리 국립공원 '에토샤'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