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투어에 필요한 에티튜드
세스림에서 첫 번째 아침은 늦잠으로 맞았다. 2박 3일 동안 머물 예정이라 일출 관광은 다음 날로 미루고 숙면을 취했다. 장거리 운전을 떠맡은 미스터 홍일점의 안녕과 우리 모두의 좋은 컨디션을 위해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할 필요가 있었다. 아침은 레스토랑에서 가볍게 먹고 사막 투어를 준비하고 나섰다. 우리는 보고 뛰어오는 우노 우노(캠핑장에서 만난 아이)를 태워서 캠핑장에서 사막으로 이어지는 내부 게이트 앞 주유소까지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아침 인사를 나눈 후 우노 우노를 집으로 보내고 나미브 사막의 한가운데 위치한 곳, 데드 블레이를 목표로 투어를 나섰다.
빠져 빠져 사막에 빠져
캠핑장 내부 게이트를 지나면 곧장 사막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길이 나온다. 아스팔트의 끝 지점부터는 사막 모래길이다. 오프로드와 다름없다. 사막에서 우리 차가 버텨줄지 고민이 됐다.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을 하다가 일단 가보기로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결론은 늘 같았다. "일단 가보자, 우선 가보자".
사막으로 가는 아스팔트 길이 차량이 드문 외진 길이어서 돌아가며 운전을 해보기로 했다. 내가 운전하는 동안엔 모두가 잠을 자지 않는다. 뒷자리 옆자리 할 것 없이 모두 눈빛이 살아있다. 허리는 곧추 세우고 눈은 반짝 뜨고 앉아있다. 무서워한 것 같은데 난 그 모습이 사실 좀 귀여웠다. 지금도 슬며시 웃음이 난다. 무사고 경력으로 그린카드를 받은 사람인데 왜 걱정이지? 아마도 4차선 고속도로 달리듯 운전했나 보다. 좁은 철망 사이를 별 다른 생각 없이 쭉~ 통과했을 때 일행들은 동시에 "우어으~"라고 기합 들어간 소리를 내질렀다. 그렇게까지 험하게 운전한 것 같진 않은데...... 만고 내 생각이겠지.
트렁크에 짐도 없겠다~ 넓게 넓게 편하게 앉아서 가벼운 차림으로 나선 사막투어에 신이 난다. 뭔가 있을 것 같고, 뭔가 대단한 것을 보게 될 것 같고, 막막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거 같은 막역한 두근거림으로 주변 모든 게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창밖을 보고 또 봐도 있는 건 모래뿐이고 사막인데 그게 왜 그리 좋은지. 덥고 뜨거운데 마음은 왜 그리 상쾌한지.
한참을 달리다 보니 아스팔트 길이 조금 울퉁불퉁 해지더니 이내 뚝 끊긴다. 여기서부터는 진짜 고민. 우리 차도 나름 suv인데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무모한 판단을 내리고 말았다. 심지어 환호성을 지르면서 갔다. 차바퀴가 돌 때마다 모래가 튀어 오르는 그 스펙터클함이 무엇인지? 걱정 따윈 집어던지고 바보들처럼 소리를 지르고 비명을 지르며 "간다. 간다" "됐다. 됐다"를 거침없이 내지른다.
모래사막을 달리는 투어차량이 보이면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하고 하루를 제대로 만끽하려나 싶었는데 결국 우리는 포드에게 버림을 받았다.
"휘이잉~기기기깅~~"
망했다. 바퀴가 푹 빠져서 헛돌기만 한다. 당최 나올 생각을 않는다. 차를 밀어도 보고 들어 올려보려 해도 꼼짝을 하지 않는다. 우리 선에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제법 다 왔다고 생각한 지점에서 모래에 빠져버렸다. 지나가던 차량의 관심을 온몸으로 받으며 도움을 기다려야 했다. 결국 투어 가이드로 일하는 아저씨가 견인차를 불러주기로 하신 후에야 우리는 셔틀 차량을 타고 사막 투어에 다시 나설 수 있었다. 사막을 다녀오면 차를 꺼내서 안전한 곳에 주차해둔다고 했다. 키를 맡기고 돈을 지불하고 트럭을 탔다. 다시 신이 난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찍혀주고. 이렇게 단순해도 되나 싶게 아무 걱정이 없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사막이나 사파리 내부에서 관광을 하는 것은 꽤나 안전한 편이다. 시스템 관리 체계가 분명하고 잘 짜여 있다. 차를 도둑맞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없다. 무리한 욕심이 불러온 참사를 해결하고 다시 투어를 이어갈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
죽은 습지 데드 블레이(Deadvlei)
한참을 나무 그늘에 숨어 기다렸다가 셔틀 차량을 탈 수 있었다. 픽업 시간을 알려준 후 아저씨는 쿨하게 퇴장해버린다. 세스림은 물과 얽힌 이름을 가지고 있다. 비가 내리면 협곡에서 6개의 가죽 끈으로 만든 통을 들고 물을 길어 나르던 곳이다. 협곡도 있다. 아주 가끔 운이 좋아야 물이 있는 사막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방문한 계절은 봄. 마른 사막은 바람이 불고 모래 알갱이가 쓸리는 소리가 마치 파도 소리처럼 들리곤 했다.
사르르르 르~~~~
바람에 밀릴 때마다 모래 알갱이들이 슬리퍼를 신은 발등을 타고 넘는다.
바람과 햇볕에 잔뜩 몸을 숨기고 한참을 걸었다. 운동화를 신어도 힘들고 슬리퍼를 신어도 힘들다. 운동화 속까지 모래가 들어와 박히면 관리도 힘들고 빨기도 어려워 우리는 슬리퍼를 택했다. 모래와 바람에 발바닥이 금세 건조해지고 거칠어졌다. 발바닥 하나는 참 보들보들한 편이었는데 나미비아 사막을 다녀온 그 즉시 작별을 고해야 했다.
사막에서 길 찾기를 한다는 게 가능할까 싶은데, 가능하다. 특별한 이정표는 없지만 길을 잃지 않고 데드 블레이까지 잘 다녀왔다.
중간중간 무심하게 세워진 표지판을 확인하면서 걷다 보면 나미비아 사막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 데드 블레이에 도착할 수 있다. 모래 사구에 둘러싸인 죽은 습지 - 데드 블레이에서 가장 기묘한 것은 고사목이다.
사막으로 다져진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를 보면서 태백산 주목과 한라산 구상나무를 떠올렸다. 한라산 구상나무는 살아서 백 년, 죽어서도 백 년을 산다고 했다. 사막의 나무도 죽은 듯했지만 살아있는 것 같았다.
죽은 채 버티고 선 이 고목은 하얀 꽃잎 흩날리는 아카시아 나무들이다. 마른나무들이 왜 더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까?
데드 블레이는 한 때 물이 흘렀던 곳이다. 그러던 것이 바람에 날려온 모래가 쌓이고 쌓여 언덕을 이루자 물길이 끊어진 자리에 갇혀버린 형세다. 한 때는 습지였던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던 아카시아 나무도 버틸 재간은 없었겠지. 상상을 해본다. 이곳에서 이대로 하얗게 꽃이 피고 바람에 흩날리는 모양새를 그려본다. 어린 왕자의 사막여우가 나타날 것만 같은 마법의 공간이다. 나무들의 모양새는 하나 같이 다르다. 땅이 마른 이곳에서 더 이상 버티기 살기 싫다며 탈출을 시도하는 것처럼 뿌리를 들어 올린 나무도 있고, 엎드려 통곡하는 듯한 나무도 있다.
데드 블레이의 아카시아 나무는 죽어서 유명해진 아이러니한 운명을 가졌다. 멀리서 보면 깊은 땅 속에 무엇인가 큰 덩어리가 숨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는 땅을 뚫고 올라오려는 듯, 꿈틀꿈틀 뒤틀린 나무들이 하나로 연결된 듯 보인다. 지금은 죽은 습지에 살지만 미래엔 또 어떤 운명이 될지 모를 일이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으니 언젠가 데드 블레이는 물의 은혜를 다시 얻게 될 지도.
파란 하늘과 붉은 모래사막과 아카시아 고목이 살고 있는 데드 블레이에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고목처럼. 태양의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앉아있었던 것은 신기루처럼 찾아온 마음의 평화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