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비아 붉은 사막, 세스림

'6개의 생가죽 끈' 대신 '우노 우노' 찬스

by 반똥가리
나미비아 국경에서 붉은 사막 '세스림'으로


나미비아 국경 근처 캠핑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목적지 세스림을 향해 아침 일찍 출발했다. 지난밤, 하늘에는 별이 참 많았다. 총총한 별빛 아래에서 인스턴트커피를 마셨더랬다. 그냥 행복했다. 이유 없이 좋았다. 방송사 파업으로 졸지에 백수가 된 프리랜서라 "에라이~" 하고 떠난 여행이지만, 갑자기 찾아온 곳이 아프리카라니. 올 때까지는 두려움이 컸는데 정작 도착해서는 연정만 무럭무럭 커졌다. 짝사랑도 그런 짝사랑이 없다. 이곳에 오는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겁을 먹었을까?

아프리카를 달리는 로드트립의 여정 끝에 무엇이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으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곳에 있어서 좋았고, 그날이 좋았다. 이런 느낌조차도 너무나 오랜만이라 좋았다. 다음날도 잘 지내는 것 말고는 머리 복잡할 것이 없었고 단순한 삶을 살게 하는 여행이었다. 좋은 옷과 가방일수록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프리카 여행이다.


나미브 사막의 '세스림 캠핑장'으로


TV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 - 아프리카 편>에서 방송된 나미비아는 이후 유명세를 치르겠구나 했지만 한국인을 만나지는 못했다. 방송을 타고 유명해지면 순식간에 사람이 많아졌을 텐데.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했던 걸까?


나미비아에서의 우리 여정은 붉은 사막으로 불리는 '나미브 사막', '사막의 경계선' 있는 해안 도시 '스바코프문트' 그리고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는 '에토샤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문지는 나미브 사막에 있는 '세스림'이다. 사막 투어의 베이스캠프로 삼게 세스림 캠핑장을 향해서 곧장 이동하기로 했다. 세스림 캠핑장으로 가는 길은 오프로드와 다름없다. 타이어가 펑크 나거나 휠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운전해야 한다. 차로 달리다 보면 붉은 사막의 나라 나미비아의 본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에어컨을 틀어두고는 있지만 뜨거운 열기가 차량을 뚫고 들어온다. 더운 것이 아니라 뜨겁다. 창쪽에 앉은 사람의 풍경이라는 혜택을 얻지만 피부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프리카니까 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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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림 캠핑장으로 가는 길. 세스림 캠핑장의 외부 게이트 가까운 곳이다.


세스림 캠핑장은 만석


찜콩 해 둔 캠핑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늦은 오후. 예약을 하지 않고 캠핑장에 도착했는데 모든 사이트가 만석이다. 다른 캠핑장으로 이동하기엔 시간적 압박이 컸다. 한두 시간 후면 해가 질 것 같았다. 눈을 뜨자마자 아침만 먹고 곧잘 달려가도 언제나 일몰 즈음 도착한다. 캠핑장에서 현장박치기로 해결하는 것도 스릴은 있지만 안전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예약하고 다니길 추천한다. 우리는 주로 "가보지, 뭐"를 택한 편이다.


캠핑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외부 게이트에서 국립공원 입장료 같은 것을 지불해야 한다. 만약 텐트 칠 곳을 찾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돈만 버리는 셈이다. 사막 투어를 할 때마다 입장료를 내고 드나드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입장료며 숙박비며 차량 유지비는 쉽게 보다간 큰 코를 다칠 것이다. 저렴한 편이 아니다.


외부 게이트를 통과한 후 캠핑장 프런트를 찾았다. 우리가 타깃으로 삼은 캠핑장은 이미 모든 사이트가 만석이었다. 다른 곳을 가느냐 마느냐 결정을 해야 했는데 시간이 애매하다. 고민하는 우리를 보더니 관리인이 제안을 한다.


"나무 두 그루가 있는 자리는 사이트로 쓰지 않지만 비어있는데 거기라도 오케이?"

"정말요? 그래도 돼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아웃 사이트에 텐트를 칠 수 있게 허락을 받았다. 아프리카에서 나무 없는 곳에 텐트를 치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일과 같다. 하물며 사막의 나라에서 말해 뭘 할까?

나무 아래에 텐트를 치고 있으니 인상 좋은 시설 담당 아저씨가 화덕으로 쓸 큰 드럼통과 쓰레기 통을 가져다준다. 그럴듯하다. 문제는 음식이며 주방 기구를 올릴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바람이 조금씩 불면서 사막 모래가 날리고 있어 땅바닥에 식기 도구며 음식을 둘 수가 없다. 게다가 공용 조리대와 식수대도 너무 멀다. 개별 적으로 조리대와 식수대를 갖춘 사이트는 남의 것, 우리는 나무 두 그루에 의지해 허허벌판만 분양받은 사람들이다.


'우노 우노네 찬스'로 아웃 사이트를 포근하게


세스림은 나미비아 최대의 관광지다. 세스림은 '6개의 생가죽 끈(six rawhide thongs)’이란 뜻을 가졌다. 모래 협곡에서 물을 퍼올릴 때면 6개의 끈을 연결한 물통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비가 아주 잠깐 내린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관광을 하러 가서 ‘물이 흐르는 협곡’을 보는 기회를 잡기는 어렵다. 우리도 6개의 생가죽 끈으로 된 통을 사용할 일은 없었다. 대신 수도꼭지를 가진 친절한 어느 가족의 도움으로 캠핑장에서 편하게 지냈다.


나무 두 그루 아래, 우리가 텐트 친 곳 옆에는 흰 벽에 슬레이트를 얹은 집이 하나 있었다. 어떻게 해서 세스림 안에 집을 짓고 살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이 집에는 엄마와 두 형제가 살고 있었다. 우노 우노네 집 밖에 버려진 듯 놓인 벤치가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캠핑장 소유인지 그 집의 소유물인지 알 수가 없어서 확인차 노크를 했다. 그 집에 아이들의 엄마가 혼자 집을 지키며 앉아 있었다. 2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엄마는 우리에게 벤치를 가져가서 사용하라고 했다. 감사의 인사를 꾸벅꾸벅하고 벤치를 들고 온 후 텐트를 치고 이리저리 배치를 하고 나니, 다른 사이트 못지않게 안락해 보이는 공간이 되었다. 그렇게 얻은 벤치에 조리 도구와 음식 재료를 모두 올려두고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신이 났다. 뭔가 해낸 기분. '의식주' 가운데 '식주'를 무사히 해결하게 되었음에 안도하며 선사인스러운 마음 가짐으로 감사했다.

IMG_3843.JPG 똑같은 텐트를 사용하고 있는 걸로 봐서 트럭커 그룹이 야영 중인 것 같다.
P20170917_013540094_8564C4FE-A63E-48DE-93FE-6D532C6C771C.jpg 캠핑 사이트가 모두 만석이었다. 다행히 나무 두 그루 아래 빈 공간에 있어서 아웃 사이트로 숙박할 수 있었다.


세스림 캠핑장.png 세스림 캠핑장의 배치도


서걱서걱 날리는 모래 바람을 피해 뜨끈한 라면 국물에 당면을 넣어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더워서 고기는 생략. 라면 먹고 당면 먹고 밥 말아먹고. 라면 수프 레시피의 끝판왕 같은 저녁 만찬이 메뉴였다. 물을 끓이는 동안 잠시 물멍을 하고 있는데, 벤치를 빌려준 집 옆 수돗가에서 두 아이들이 손을 씻는 걸 보았다. 형제다.


주섬주섬. 장시간 이동 거리를 고려해서 주전부리를 꽤나 챙겨 왔다. 한국에서 사 온 젤리와 건빵, 달고나를 챙겨 들고 벤치를 빌려주심에 감사 인사를 할 겸 그 집을 다시 찾았다. 덕분에 편하게 밥을 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손짓 발짓 몸짓으로 인사를 하고 간식을 건네였다. 그때까지도 잘 웃지 않던 엄마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위한 간식거리를 받아주었다. 형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동생 이름은 '우노 우노'라고 했다. 내 사랑 '보노보노' 말고 아프리카의 '우노 우노'.


우노 우노는 해맑고 낯가림 없는 아이였다. 호기심도 많았다. 집 옆 모래언덕에서 놀다가 집에 갈 때는 항상 수돗가에서 깨끗이 손을 씻었다. 우노 우노네 수돗가는 우리랑 우노 우노 엄마가 설거지를 하며 눈인사를 나누는 곳이었다. 우노 우노는 우리 차를 타고 드라이브도 했다. 웃기도 잘 웃고 울기도 잘 울었다. 사막 탐험을 가는 우리를 배웅하다가 그 길로 떠나는 줄 알았던 것인지 우노 우노의 울음이 터졌었다. 겨우 달래서 집으로 보내고 돌아왔을 때 달려와서 인사를 하던 꼬마. 지금은 청소년이 되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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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뒤로 보이는 곳이 우노우노네 집 2. 집으로 돌아가는 우노우노와 형.
사막에서의 첫 일몰


먹고 잘 곳을 확보하는 것이 아프리카 캠핑 여행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어찌 보면 살짝 생존형 캠핑처럼 보여서 고단할 것 같지만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다.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어디든 잘 곳은 있다. 디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파리 투어를 하거나 사막 투어를 할 경우, 국립공원 내부에 위치한 캠핑장에서 야영하는 것이

가성비가 좋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 절약에 필수적 조건이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한 후 조리 도구를 정리하는 중인데 후배가 꺄악~~ 비명을 지른다. 돌아보니 야생 동물 한 마리가 캠핑장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 그 뒤로 몇 마리가 각자 나무 그늘과 캠핑장 곳곳을 유유히 걸어 다닌다. 오릭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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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 특별 게스트 '오릭스'


나미비아에서 오릭스 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포털 검색을 하면 멸종 동물이었다고 나오는데 나미비아에서는 번식을 시켰던 것일까? 오릭스는 꽤나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이 녀석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마치 집주인이 초대장을 받고 온 손님들을 대하듯 살펴보고 다녔다. 곧게 뻗은 두 뿔과 문신을 새긴 듯 얼굴에 있던 두 줄의 검은 무늬가 매주 선명하고 위풍당당했다. 어떻게 관리를 하는지 궁금할 정도로 깨끗하고 말끔했다.


늦은 호우 마지막 열기가 뜨거웠던 건 건지..... 아니면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워져 한 끼를 해결하러 온 건지..... 한국식으로 "라면 먹고 갈래?"라고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으로 우리는 단번에 즐거워졌다. 야생 그대로의 환경에서 처음으로 만난 동물이다.


캠핑장은 동서남북으로 모두 사막이다. 팡~ 트여있다. 동쪽으로 해가 뜨겁게 사막 언덕을 타고 뜨면, 지평선으로 지는 해가 시야에 가리는 것 하나 없이 눈에 들어온다. 나미비아의 붉은 사막에 뜨고 지는 태양의 움직임은 장대한 풍경이다.


붉은 사막의 일몰

세스림 캠핑장에 일몰이 시작됐다. 다 같이 캠핑장의 너른 공간으로 산책을 나섰다. 바다 같다. 모래 바다. 수평선 대신 지평선으로 해가 오롯이 지고 있다. 산이든 빌딩이든 뭐 하나 해를 가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땅과 하늘 사이, 붉은 해만 있다. 내일은 다시 뜨거운 날이 이어지겠지만 잠시 나무 그늘을 벗어나도 되는 시간. 피부를 닿는 바람의 어루만짐이 달라진다. 오늘도 무사하게 '세스림에' 잘 도착했구나.


IMG_3831.JPG 나미비아 '세스림 캠핑장' -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사막의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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