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비아 스바코프문트
세스림 협곡을 넘어 이동
원이 없을 정도로 돌아다니며 뒹굴었던 사막 공원 '세스림'을 떠나서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대서양 파도가 철썩철썩 해변으로 밀려오는 나미비아의 해양 도시 '스바코프문트'가 목적지다. 바짝 마른 산을 하나 넘었다. 온통 돌로 된 모양새가 마치 작은 그랜드 캐년 같은 세스림 협곡이다. 물이 콸콸 쏟아지면 좋으련만 어림없는 꿈이다. 우기가 아니다. 잠시 차에 내려서 사진 하나 덜렁 찍고 바다를 향해 직진을 했다. 이번엔 또 다른 의미에서 무척 "서두르고 싶은 마음"에 일심동체가 됐다. 오랜만에 문명으로 가기 때문이다. 잠시 사람답게 지낼 수 있는 장소에 머물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스바코프문트로 달린다.
해안도시 스바코프문트
스바코프문트는 나미비아의 서쪽 해안도시로 사막과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통치했던 독일의 영향으로 건물은 모두 유럽풍인데 시선을 밖으로 조금만 돌리면 사막이다. 심지어 해안에는 새와 낙타가 슬렁슬렁 걸어 다닌다. 높은 빌딩 숲을 이루는 우리의 도시와는 다르지만 나미비아에서 3번째 많은 인구가 사는 동네이다. 의류 매장도 있고, 로터리식 교차로에서는 신호를 지켜가며 운전을 한다. 유럽 스타일이라 핸들이 우리와는 반대 방향이다. 후배가 운전을 하면서 옆으로 차가 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더니 인도에 차바퀴를 슬쩍 올리기도 하고 야단이다. "어어~~" "어머어머" "야이~" 등등 비명이 터진다. 차들이 쌩쌩 달리지 않아서 큰 사고는 날 것 같지 않지만 해외여행을 떠나면 내 몸보다 렌트 차량이 망가질까 더 걱정이 되는 법이다.
스바코프문트 거리는 여느 도시와 비슷하다. 은행과 건물들이 제법 많다.
남아공 화계를 유로 화폐처럼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유독 나미비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살짝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역사가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나미비아 화폐를 사야 한다. 참 골치다. 스바코프문트 외에 아직 두 군데를 더 방문해야 하는데 얼마나 환전을 해야 할지 계산이 잘 안된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 "어떻게든 다 쓸 수 있을 거야". 부족하면 곤란하니 여유 있게 환전을 했다. 큰돈이 남으면 수수료를 내고 남아공 화폐로 되팔아야 한다.
환전을 조금 한 후 숙소를 찾았다. 조용한 곳에 위치한 백패커스에 방을 정했다. 우선 빨래를 몽땅 모아들고 세탁소로 갔다. 현금박치기로 세탁실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돈을 지불해드리고 숙소로 귀환, 곧장 뛰어들어간 곳은 샤워장이다. 모래 바람이 수시로 불어서 씻는 게 의미가 없었는데 뽀송뽀송 씻고나도 더러워지지 않는다. 캬아~ 샤워가 이렇게 좋은 것이었나?
깨끗하게 씻고 개운 상쾌한 기분으로 산책을 나섰다. 우리나라 바다와 달리 짠내가 나지 않는 것이 다르다. 전날 마신 술이 어떤 종류인지 맞출 수 있을 정도의 개코 능력자인 나에게 그 바다의 냄새가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해안으로 가는 길 토스트를 파는 작은 트럭이 보이지만 꿀꺽 인내심으로 침을 삼키고 바다에 위치한 카페를 향해 간다. 마시고 싶었다. 차고 달고 새콤하고 시원하고 조금 알딸딸해질 수 있는 칵테일"
약간 강릉 같기도 하고 양양 같기도 하고. 바다는 너무나 익숙한데 주변을 둘러싼 사막이 낯설다.
여유를 가져야 하는 여행자의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며 어슬렁어슬렁 해안가를 걸었다.
느긋하게 앉아서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 사이에 놓인 대서양의 파도로 안구 정화하고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를 하는 심정으로 칵테일을 조금씩 조금씩 아껴 마셨다. 더 바랄게 뭐가 있을까? 없다. 쌀쌀한 바람에 패딩을 껴입고 있지만 느껴지는 공기의 결이 다르다. 따듯한데 쌀쌀하다. 쌀쌀한데도 따듯하다.
잠시 떠나온 일과를 생각한다. 아~ 컴퓨터를 보고, 자료를 찾고, 자막을 뽑고, 생방송 시작 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시간인데, 여기서 이러고 있네. 아하하하하. 웃음이 난다. 여행을 멀리멀리 온만큼 더욱 웃음이 난다.
무엇을 해도 성에 차지 않을 때가 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8000원씩 주고 마시거나 질러버리는 쇼핑을 아무리 해도 성에 차지 않던 허허로운 마음이 여기선 파도만으로 채워진다. 내 자리를 떠나서 그렇겠지. 남의 자리에 와 있어서 그렇겠지. 잠시 머물다 갈 곳이지만 그래서 더욱더 잘 지내다 가고 싶어 진다.
한참을 앉아서 서로의 일상과 돌아가면 해야 할 일, 지금 안고 있는 고민과 선택이 필요한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누가 답을 선뜻 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을 알지만 두런두런 "나는 이랬는데" "이런 거 같던데" 하며 울렁울렁 멀미 날 것 같은 삶에 대해, 여행에 대해 좋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6,000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전체 여정에서 단 두 번 가질 수 있었던 문명 속의 시간이었다.
카페를 나서서 해안가를 좀 더 길게 걸어보기로 했다.
"유레카". 해안가의 남쪽 끝으로 한참을 걸어간 곳에서 우리는 낙타를 보았다. 눈을 의심했다.
멀리서 꿈틀꿈틀 공룡처럼 움직이는 한 무리의 낙타 떼가 사막 해안가에 몰려 지내고 있었다.
아프리카든 어디서든 내가 보았던 동물들은 줄을 참 잘 선다. 일렬로 줄을 지어서 차례차례 다닌다. 몸이 부딪히는 일 따윈 절대로 없다. 스바코프문트에서 본 낙타도 그랬고, 사파리에 보았던 코끼리와 작은 동물들이 그랬다. 종족을 불문하고 치고 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한라산의 오름을 촬영 갔던 적이 있다. 영화 '이재수의 난'을 찍은 제법 높은 편에 속하는 오름이었다. 화산구를 따라 능선을 한 바퀴 뱅 돌면서 촬영을 하고 내려올 때쯤 이미 해가 스멀스멀 지고 있었다. 고단함에 다리를 질질 끌고 내려오는데 우리만큼 더딘 걸음으로 소떼가 몰려들던 풍경을 본 기억이 있다. 오름 아래에는 작은 우물 모양의 웅덩이가 있었는데 소들이 모두 물을 마시러 오는 길이었다. 웅덩이 근처까지 한 줄로 오던 소떼는 제일 앞을 선두로 멈춰 섰다. 그리고 앞서 한 마리가 물을 마시고 앞으로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에 서있던 소 한 마리가 이어서 물을 마시러 나섰다. 뒤로 줄줄이 일렬로 서 있던 소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럽다. 조급함 따윈 찾아볼 수 있는 낙타들이 질서계. 뒤처지는 것이 걱정되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마도 낙타는 속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럴 수도 있겠지. "너희가 가시덤불 먹는 입장을 알아?"라고 하면서.
사막과 바다가 만나는 나미비아 스바코프문트에서 칵테일 한 잔으로 속을 씻기고 나선 모래사장에서 낙타를 볼 줄이야. 이것이 아프리카 여행의 참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