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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ry Aug 31. 2021

온라인 강의, 수강생과 소통하기

클래스101에서디자인 강의를 진행하며


우리의 온라인 강의 기획은 코로나가 막 창궐하기 시작했던 2020년 3월 즈음이었다.


우리도 비대면 비즈니스의 물결을 타보고자, 생계가 걸린 대면 강의 금지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소수일지라도 우리의 강의를 원하는 니즈를 확인한 뒤, 여러 복잡한 이유로 우리는 온라인 강의 준비를 시작했고, 2020년 12월, 온라인 강의를 오픈했다.


<글꼴의 맛: 한글 디자인 마스터>

나와 Sui 디자이너가 함께 진행하는 온라인 강의의 타이틀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디자인 중에서도 특수 분야(어쩌면 마이너 한 분야) '한글 디자인'인 우리 강의는 5개월 동안 수강하는 코스다. 영상을 시청 후 다양한 레벨의 실습을 하고, 작품을 완성해 나가려면 5개월은 결코 길지 않다.


오프라인에서 5개월이면식사도   하고연락처도 주고받을  있는 사이가   있지만 온라인 강의 특성상 그런 방식과는 차이가 크다Zoom처럼 스크린으로 수강생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라서, 길에서 수강생과 마주치더라도 수강생의 얼굴을 모르니 아는 체도 못하는 상황이다. 


소통하는 방식에서는 기존의 질서와 달라 친밀도가 낮아질 수는 있지만, 그것을 상쇄시킬 온라인 강의의 장점은 수강생이나 강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강사와 수강생, 클래스101에 소속된 md나 스태프진들 역시 편리하게 느끼고 있을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는큰 장점. 그 때문 우리는 '온라인 만의 소통방식'을 개척해야 했다


온라인 소통의 낯섦을 상쇄하고, 수강생 친화적인 강의가 되고자 우리는  가지 방식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다.





선미의 <24 Hours> (스포츠서울닷컴)


1. 24시간

디자인 강의는 대체로 진행되는 강의 중간중간 수강생이 미션(실습 과제)을 수행하고 강사는 피드백을 한다. 우리 강의는 온라인 강의 + 교재가 있기 때문에 교재에 있는 아주 쉬운 미션부터 천천히 실습한다. 수강생이 수행한 미션을 사진으로 찍거나 캡처해 댓글로 업로드하면, 강사인 우리는 미션에 대한 피드백을 대댓글로 달아주는 방식이다. 이때 강사와 수강생간 운명적인 타이밍이 맞으면 실시간급 피드백이 가능하지만, 보통은 몇 시간 뒤에나 피드백이 가능하다. 


그래서 하루 1-2번은 미션 업로드 상황을 확인하고, 24시간 내에 피드백을 완료하도록 노력한다. 마침 class101의 시스템에서도 피드백 소요시간을 체크하고 있어, 긴장의 끈을 붙잡을 수 있게 해 준다.


 다행히도 우리는 24시간 내에 답을 하고 있었다.


피드백 후에 기다렸다는 듯 댓글 소통을 이어나가는 수강생을 만나기도 한다. 실시간 채팅하듯 소통하게 되는 수강생도 있지만 대부분의 수강생과는 실시간이 어렵기에 24시간 내에 댓글은 꼭 지키려고 하고 있다. 내 피드백이 수강생에게 용기와 의욕이 되길 바라며, 피드백 시간을 정해두고 수강생들만을 위해 시간을 사용한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한 장면


2. 너의 이름은

우리 강의는 5개월 동안 들을 수 있는 커리큘럼이다. 무려 5개월간의 여정을 함께하면서도 우리는 수강생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그렇지만 새끼손톱보다 작은 동그라미 속 프로필 사진으로 얼굴을(높은 비율로 디폴트 이미지다), 수강생이 직접 지었을 닉네임으로 이름을 대신한다. 강사가 알 수 있는 정보는 프사와 닉네임, 그 정도다.


나이도 성별도 모르지만 수강생이 미션을 올리면 꼭 닉네임을 불러본다. 

그래서 대댓글 작성은 닉네임을 먼저 적으며 시작한다.


나리님, 미션 꼼꼼히 잘하셨어요! 다만 받침 부분은 ···”

피카추님, 민글자의 굵기 보정을 진행하시려면 ···


꾸준히 여러 미션을 올린 수강생의 닉네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이름을 여러 번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의 후반부에는 수강생 닉네임만 봐도 자동으로 그의 작업이 떠오른다. 몇몇 메일까지 주고받은 수강생이라면 작업과 닉네임이 진하게 기억 남는다. 나 혼자만의 내적 친밀도가 높아지는 걸 수도 있지만, 자주 부른 닉네임은 왠지 친근하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서 주인공이 만나는 후반부 장면을 좋아한다. 주인공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알아보는 그 마지막 장면. 언젠가 수강생을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된다면, 항상 댓글로 쓰던 대로 아주 자연스럽게 닉네임을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피드백을 요청한 수강생 작업을 프린트해, 피드백 진행 후 온라인으로 전달한 것.


3. 때로는 아날로그

아이폰 좌측에 붙은 음량 버튼을 꾸욱 누르며 조작하는 감각, 컴퓨터를 켜기 위해 누르는 전원 '버튼'의 물리적 직관성을 좋아한다. 생활의 많은 것을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여전히 몇 가지 행동들은 아날로그가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글꼴 디자인에서도 때로는 디지털 도구가 아닌, 종이에 펜으로 표현하는 것이 빠르고 직관적이다. 특히 초기의 머릿속 아이디어를 스케치로 구체화시키거나, 구체적인 대안과 피드백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과 재빨리 공유하기 위한 상황에서 말이다.  


우리 강의의 수강생들이 1:1 피드백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작업물을 프린트해서 직접 필기해 전달하는 편이다. 주니어 디자이너 시절에 디렉터로부터 받았던 일명 '깜지', '빨간펜 선생님' 페이퍼를 받았었다. 그분은 항상 같은 사이즈로 글꼴을 출력할 것을 요청하시고는, 컬러펜으로 꼼꼼하게 코멘트가 달린 페이퍼를 돌려주셨다. 나도 진심을 담아 쓴 코멘트를 수강생에게 전달해준다. 내가 받았던 '깜지'처럼 여백이 안 보이게 꽉꽉 채운 페이퍼는 아니지만, 수강생 진도와 수준에 맞춰 최대한 정성을 담아본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에는 a4용지에 손으로 꾹꾹 눌러쓴 손글씨와 스케치도 포함된다. 내 작업을 봐주시던 옛 회사의 선배와 디렉터의 마음을 떠올리며, 내 마음이 또 수강생에게 닿길 바라며 코멘트를 쓴다. 화살표도 그리고, 동그라미 표시, 간단한 스케치 등을 채우다 보면, 이상하게 키보드로 타이핑해서 적는 것보다 따듯하게 느껴진다. 수강생들도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며. 





만화 <슬램덩크>

4. 포기하지 마

한동안 영어를 배워 보겠다며, 스마트폰 어플로 열심히 수강하던 때가 있었다. 하루 30분, 영어공부를 하겠다던 나와의 약속은 여러 핑계로 미뤄지는 날이 많았다. 친구와의 약속, 회식이나 모임, 야근, 피곤하다는 핑계로 땡땡이치는 날이 있었지만, 자꾸자꾸 울리는 앱 푸시에 마음을 다잡곤 했었다. 상당히 귀찮았고, 죄책감이 들게 만들었던 앱 푸시가 그래도 수강하는 동안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줬던 것 같다. 


아주 가끔, 강의 초반에 열공 출석하시던 수강생이 한동안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그분이 학생이라면 시험기간, 직장인이라면 야근에 시달리고 있다고 강사로서 추측해 볼 뿐이다. 안부를 궁금해하며 일정기간 동안 강의를 못 들은 학생들에게는 독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어딘가에서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을 우리 수강생들, 나의 귀찮은 메시지로 인해 조금이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강사로서 가장 뿌듯한 성취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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