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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모 Apr 10. 2024

도덕적 우월감

스스로 착하다고 여기며 살고 있나요

누구나 듣기 싫어하거나 불편한 말이 있다. 나라는 사람이 그중에서도 특히 착하다는 말이 듣기가 굉장히 불편하다. 남을 험담하지 않는다거나 욕설을 내뱉지 않고 부드럽게 말하는 모습과 사람들을 대하고 그저 인상이 그렇게 보인다고 한다. 실제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의 마음은 굉장히 불편하고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이해를 해보는 데 있어서 더 마음이 어려웠다. 그리고 더 듣기 싫은 이유는 상대방이 나에 대해 얼마큼 안다고 그런 말이 쉽게 나오는지와 그만큼 내가 매력이 없는 사람인 것인가라며 스스로 생각을 해보게 된다는 점에 있어서다.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보면 착하다는 말이 좋은 말인 줄 알았고 그 말을 듣는 것이 나에게는 인정이고 칭찬인 줄로만 알았다. 도덕적 규범을 중요하게 여기고 인간관계 안에서 정도의 선을 지킨다면 상대방과 깊고 친밀한 관계가 오래 유지될 것이라는 막연한 잣대가 있었다. 스스로 착하게 행동하고 타인에게 착한 모습을 보여 그로부터 돌아오는 인정의 말이 최고의 칭찬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형이라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아래로 동생이 하나 있다. 어른 앞에서 동생보다 잘하고 잘난 모습을 보이려고 열심히 하고 노력한다면 그로부터 오는 칭찬과 인정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준이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일은 자주 발생하지 않았다. 동생보다 더 드러나게 행동을 해도 오히려 꾸지람과 야단을 맞았고 반대로 동생은 어른들에게 더 많은 보호와 예쁨을 받았다. 예로부터 이렇게 지내온 형이라는 존재인 나를 보며 선하고 착한 행실 자체가 즐거워서가 아니라 그런 계산적인 방식으로 환경을 통제하기 위했던 것이었다. 선행과 반듯한 삶을 공로로 세우면서 무언가를 받기 원한다면 분노로 삼켜지고 말았던 것이다. 삶이란 결코 우리가 바란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환경과 상황을 통제하고 계산을 하는 나의 자아상은 어떤 우월감에 찌들어 있었던 것이다. 동생 그리고 수많은 타인들에게 이런 우월감을 품은 상태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인정하기란 나에게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면 나의 이런 자아상을 떠받치기 위해 비난의 대상으로 동생과 같은 누군가가 필요했고 이용했는지도 모른다.


결국에는 타인을 향한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분노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 동기는 두려움과 이기심으로 가득 찰 때 그러했다. 무언가를 놓치고 싶지 않고 소유하고 싶고 인정을 받고 싶어 부단한 노력과 계산을 하고 마는 것이다. 스스로 선행으로 여기던 것이 오히려 스스로 기쁘고 즐겁기 위해서 한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착하다고 여기며 살아왔던 것이다. 점점 착하다는 말이 듣기가 불편해진 것 같다. 내 안에 선한 것 하나 없고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인지 모른다. 그저 그렇게 살기보다 좀 더 누군가를 돕고 베풀며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지 착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다. 착하다는 말은 나의 기본값 또한 아니다. 뿌리 깊은 이기심에 도덕적 규범과 윤리를 엄숙하게 지키고 의무감으로 살기보다 지금 주어진 상황과 과거에 비해 좀 더 나은 삶과 자유로이 각자의 목표와 자아실현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게 더 재미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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