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아줌마의 불안증 투병기 6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이에게는 늦잠을 자고 되는 시간이지만, 엄마에게는 삼시 세 끼를 차리고 먼 곳으로 나가기도 힘든 시간이다. 그래도 아이가 많이 컸기 때문에 아기 때처럼 손이 많이 가지는 않아서 그리 힘들지는 않다. 지난 코로나 기간도 견뎠기 때문에 더욱 그렇고 말이다.
오늘 아침도 방에서 아이는 늦잠을 자고 나는 늦은 아침을 준비한다. 그러다 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생각을 멈추는 방법을 아직 모르겠다. 그래서 이렇게 떠오른 생각을 적어보며 마음속 감정을 정리해보려 한다.
생각의 시작은 아이가 벌써 6학년이라는 거였다. 비록 코로나 팬데믹으로 학교에서 친구들과 아웅다웅한 시간도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을 간 시간도 적었지만, 그래도 그 나이대에 하는 고민과 즐거움을 조금씩이나마 느끼며 잘 자라고 있다. 그런데 나의 과거는 어땠을까?
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이미 여러 차례 전학을 다녔던 나영이의 5학년은 또 한 번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서 시작되었다. 이전과 달리 멋들어진 교복을 입는 소위 명문 사립 국민학교였다. 이곳의 아이들은 모두 공부를 잘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엄포에 첫날부터 나영이는 긴장을 많이 했다. 하지만 여러 번 전학을 다녀봤기에 처음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얌전히 이름을 말하고 잘 지내보자고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 으레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아이들이 몰려온다. 어느 학교 다녔는지, 어디 사는지 등등을 물어보던 아이들 중 한 명이 이렇게 물었다.
"너희 집은 몇 평이야?"
처음 받은 질문이었고, 나영이는 자신의 집 크기를 몰랐기 때문에 답할 수 없었다.
이전의 학교들과 조금은 달랐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잘 지냈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미술부에도 들어갔고, 얼마 후 미술대회에도 함께 나갔다. 그런데 덜컥 나영이가 참가한 학생들 중에 가장 높은 상을 받아버렸다. 교장선생님께 직접 상장을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5학년 친구들 뿐 아니라 6학년 선배들도 나영이를 서늘하게 바라봤다. 이유는 몰랐다. 그리고 얼마 후 가장 친한 친구에게마저 네 능력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지? 내가 그렸는데?'
나중에 알았다. 그게 왕따였다는 걸.... 얼마 후 나영이도 기억이 안나는 몽유병 비슷한 행동으로, 그 친구에게 밤에 전화해서 화를 냈다고 한다. 그 전화에 놀란 친구의 엄마가 자초지종을 들은 후, 친구는 나영이에게 다시 다가와줬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알게 되어 아주 가혹하게 가해자들을 처벌했고, 나영이는 그 상황에 또 한 번 상처를 받으며 그렇게 지나갔다.
그때 나영이는 그저 무기력했다. 친구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해명할 길이 없었고, 가해자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 지에 대해서도 선생님은 나영이에게 묻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위로해주지 않았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또 더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끈을 잡았다. 그렇지 않으면 우울한 감정의 구렁텅이로 들어가니, 얼른 나와야 한다. 그리고 다시 현실을 바라봤다.
어린 시절, 왕따의 기억뿐 아니라 난 성추행, 그리고 요즘 기준으로 성폭행이라 할 수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수없이 당해왔다. 그래서 난 여자들은 다 그런 걸 당하며 자라는 줄 알았다. 하지만 크고 보니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억울하기보다는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야 이 세상을 조금 덜 불안하게 살 수 있으니...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이 세상이 조금 더 안전했으면 좋겠고 불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는 다행히 나보다는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입장에서 힘든 일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어린 나영이와 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너무나 다행이다. 그리고 현재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