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아줌마의 불안증 투병기 5
나 역시 내가 맡은 집 청소와 빨래를 하고, 느지막이 일어난 딸에게 간단한 음식(냉장고에 있던 컵케익과 요구르트)을 먹였다. 그리고 애써 남편의 감정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면 왜 이런 남편을 달래거나 멈추게 하지 않느냐고 궁금해할 거다. 어쩌면 저렇게 까지 감정을 표현하는데 왜 모르는 척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이미 전날 아침 남편과 이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자꾸 이렇게 혼자서 불편한 감정을 뿜는 남편에게 나는 뭐가 문제냐 물으며 혹 불편한 게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니 남편은 요즘 자기가 힘든 게 많은데, 밖으로 말하지 않으려고 혼자 중얼거리는 거라 한다. 그래서 그냥 두라고 말한다. 그러다 나아질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 또 불편함을 표현해도 그냥 뒀다.
하지만 딸은 여간 힘들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청소를 마치고 점심으로 떡볶이를 먹은 후(물론 남편의 기분을 좋게 해 주기 위해 너무너무 맛있다는 칭찬을 했다), 내가 할 일이 있어서 나갔다 오겠다고 하자 딸은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같이 가서 조용히 내가 일할 동안 수학 숙제를 하겠다는 거다. 하지만 "사무실은 좁아서 불편할 건데?"라고 말하자 그래도 괜찮다며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아무래도 아빠랑 둘이 있는 것은 자신이 없나 보다. 그때 남편은 점심 이후 자기가 먹고 싶은 무생채를 하겠다고 씩씩거리며 또 중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에게 유튜브는 보지 않고 숙제만 하고 오는 것을 조건으로 조용히 준비하고 나가기로 했다. 이 상황을 마음속으로 너무 불안해할까 봐 "우리 방탈출 미션 하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딸은 아빠에게 들킬세라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나갈 준비를 했다(평상시 등교 준비 때 이렇게 하면 좋으련만...). 그리고 준비가 끝나자 우리는 같이 나갔다 오겠다고 알리고 집을 나왔다.
등 뒤에서 남편이 "그래 엄마랑 둘이 가는 게 더 좋겠지!"라고 큰 소리로 비꼰다.
그렇게 우리는 현관문을 닫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혹 딸이 죄책감을 갖거나 많이 속상할까 봐, 내가 우스겟 소리하듯이 "에고, 아빠가 점점 성격이 나빠지네. 어제 건드리지 말라고 해서 말 안 한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딸은 맞장구를 치며, 웃는다.
질문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딸은 얼른 닫힘 버튼을 여러 번 누른다.
그래, 나도 아이를 낳고 육아로 힘들 때 했던 고민이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했던 이유로 생각한 답을 해줬다.
"그래야, 너를 낳지. 아무리 멋진 남자라도 이렇게 조화롭고 멋진 딸이 나오진 못했을 거야."
"칫!"
딸은 콧소리를 내며 웃는다.
그리고 우리는 아파트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