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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윤 Apr 14. 2018

영어도 시험공부처럼 열심히 하면 되는 거죠?

영어학습의 첫 번째 원칙:  M

  시험공부하듯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왜 말이 안 나오냐 오냐고 울상 짓는 표정에는 이제는 정말 그만두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한숨이 묻어 나왔다. 매일을 정말 성실하게 책을 팠건만 왜 여전히 입에서는 나오지 않을까? 


관찰자 공부의 함정 

 우리가 영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떠올려보자. 교재를 펴고 문법 내용을 읽고 또 읽어서 기억하려고 애쓰고 단어를 밑줄을 쳐가며 외운다. 나도 그랬다. 중국어를 밤을 새 가며 단어를 외우고 수백 번이고 다시 보며 암기했다. 하지만 선택지도 지시문도 없는 백지인 중국어 시험지를 받아 들고 내가 쓸 수 있는 답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내 공부에는 뭐가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심리학에서는 공부방법을 두 가지로 나누는데, '다시 보기(review)'와 '떠올리기(recall)' 가 그것이다. 다시 보기’는 우리가 흔히 하듯 책을 여러 번 보는 것으로 기억 속에 넣는 활동이고, ‘떠올리기’는 내용을 온전히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를 테면 밑줄을 쳐가며 열심히 보는 것은 '다시 보기'에, 책을 덮고 단서가 없는 상황에서 그 내용을 온전히 떠올려 친구에게 설명해 준다면 그것은 '떠올리기'에 해당된다.  내가 중국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형광펜을 쳐가며 책을 보고 보고 또 봤던 공부는 전형적인 '다시 보기'이었다. 여기에서는 이 둘을 보다 확실히 구분 지어 표현하기 위해 '다시 보기'는 관찰자 공부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관찰자 공부는 사지선다형 문제에 적합한 학습방법이라는 사실이다.  다음의 예를 보자.  


How are you? 에 대한 답으로 올바른 것은?      

(1) I am fine, thank you. 

(2) I love you. 

(3) No, thank you. 

(4) I don't know.       


 우리에게 익숙한 사지선다 문제이다. 하지만 실제 말하기 상황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어떻게 지내니?”라고 묻는 상대방이 “자, 이 네 가지 중에 답을 골라봐.”라고 선택지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만나는 언어 상황은 늘 단서 없이 온전한 문장을 떠올려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막상 답을 보면 알겠는데, 보기나 단서 없이 내가 말하려고 하면 말이 막히는 이유는 우리가 사지선다 시험에 유리한 관찰자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여러 번 보면서 공부했는데도 도저히 말이 나오질 않는 것은 사지선다 시험 방식에 맞는 방법, 즉 관찰자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물음에 대답할 때 우리는 주어진 보기 중에 답을 고르지는 않는다. 대신 스스로 단어를 떠올리고 문장을 조합하여 말해야 한다. 실제 말하기 환경에서는 선택지란 주어지지 않는다. 


 나름 열심히 공부했건만 관찰자 공부 방법으로 외웠을 때 내가 실제 언어 상황에서 떠올려서 제대로 말하거나 적을 수 있는 문장은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 중간고사 시험을 준비하는 식으로 공부한 결과였다. 사지선다 문제를 준비하는 방법과 단서 없이 온전한 답을 혼자 힘으로 떠올리기를 준비하는 방법은 완전히 달라야만 한다.





  책 내용을 바라만 보는 관찰자 공부방법은 언어 학습에서 치명적이다. 내가 외운 문장을 단서 없이 온전히 내가 떠올려 기억해 보지 않고서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는 실제 상황에서는 생각이 날 듯 말 듯 하면서 결국 나오지 않는 결과를 낳기 쉽다. 주어진 단서 중에 고르기를 요구하는 실제 언어 상황은 거의 없기에 관찰자 공부는 사지선다 시험이라는 매우 인위적인 상황을 위한 공부이다. 우리가 실제로 듣고 말하는 환경은 단서 없이 떠올리기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에 적합한 방법으로 바꾸어야만 한다. 언어 학습은 '관찰차 공부' 가 아닌 단서 없이 '떠올리기' 가 주를 이루어야 내가 언어생활에서 써먹을 수 있는 공부가 된다. 

   

떠올리기 recall는 팔방미인 

 단서 없이 '떠올리기'는 언어 학습 방법으로 효과적일 뿐 아니라 기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영원히 유창하라 Fluent Forever>의 저자 와이너는 관찰 공부 review와 떠올리기 recall의 기억 효과를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단서 없이 떠올리기 (옅은 색 막대)는 보고 또 보는 관찰자 공부(진한색 막대) 에 보다 장기적인 기억하기에 더 유리한 방법이다.(출처: Fluent Forever)

    


공부한 지 5분 후에는 관찰용 공부만 한 이들이 더 많은 내용을 기억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하여 급기야 일주일 후에는 관찰용 공부와 떠올리며 며 익힌 한 사람들이 기억하는 양의 차이가 더 벌어졌다. 눈으로 여러 번 보기만 하며 공부하는 것보다 익힌 내용을 단서 없이 떠올려기가 훨씬 기억에 효과적이다. 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길고 정확하게 기억하는 방법 또한 "떠올리기"이다. 

   

회화에 최적화된 공부: 단서 없이 입으로 떠올리기 recall    

  

 폴란드의 수능인 마투라 Matura 영어 시험에서도 ‘떠올리기’를 요구한다. 폴란드 수능 영어는 선택지가 있는 문제의 비중은 일부에 불과하여, 백퍼센트 오지선다 문제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수능 영어와 대조적이다. 쓰기와 말하기 시험 덕에 관찰자 공부로는 고득점이 거의 불가능하거니와 독해와 듣기에서도 빈칸 채우기 등으로 '떠올리기' 가 필수인 문제가 상당수이다. 사지선다 문제는 그나마 독해와 듣기 파트 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하다. 폴란드 수능 영어는 (1) 배운 내용을 단서 없이 떠올려 말하거나 적고, (2) 익힌 내용을 내 생각을 담아 표현 내는 과정 일체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폴 입시를 준비하는 폴란드의 학생들의 공부 방법은 '떠올려 말하기'  혹은 '떠올려 쓰기'를 택할 수밖에 없다. 폴란드 수능 영어뿐만이 아니다. 토익이나 토플처럼 유럽에서 통용되는 캠브리지 공인 영어시험인 FCE 나 CAE 등의 시험도 이와 같은 능력을 요구하여, 실제 언어환경과 유사한 단서 없이 '떠올리기'는 필수이다. 



폴란드 마투라 시험을 치르기 위해 기다리는 학생들 (출처: 구글)


 보면 알겠는데 왜 그때는 도대체 입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라며 답답해했다면, 이제는 아주 간단한 문장이라도 단서 없이 떠올리기로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아무리 유명한 강사의 강의를 들어도 그리 오랫동안 미드를 보아도 그것이 그저 바라만 보는 관찰용 공부에 그치고 있다면 내 입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아무리 짧은 한 문장이라도, 세상 쉬운 문법 내용을 담은 영어라도 문장을 반드시 단서 없이 온전히 떠올려 내 입으로 말해야만 한다. 문제풀이용으로 여러 번 보는 영어 대신 간단한 문장이라도 당장 떠올려 소리 내어 말하기는 필수이다. 적어도 언어를 배울 때는 관찰용 공부는 버리고, 내 입으로 주어진 단서 없이 문장 전체를 기억에서 끄집어내어 “떠올리기” 방법을 실천하자.  

    

이렇게 적용했어요 


 오늘의 문장을 정해서 통으로 귀로 듣고 외운 후, 이를 머릿속에서 하루 종일 떠올리며 말했어요. 회화 학원이나 원어민 선생님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그냥 혼자서라도 중얼 거렸지요.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외운 문장을 쓸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하며 혼잣말을 불사하는 통에 길을 지나던 사람에게 ‘괜찮냐?’는 말도 여러 번 들었지요. 책에 쓰인 글을 반복해서 보는 ‘다시 보기’ 공부가 아닌 머릿속으로 ‘떠올리기’였기에,  책상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었어요. 이동시간을 이용해서 하루 종일 그 문장을 떠올리는 데는 단 몇 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하루 중 어느 때고 마음만 먹으면 '떠올 릴 수' 있었지요. 버스를 기다리면서 혹은 길을 걸을 때, 마치 연기를 하는 것처럼 그 문장에 몰입해서 통문장을 떠올리며 내 입으로 중얼거렸어요. 이 문장을 반드시 쓸 날, 써먹을 상황을 상상하면서 말이죠. 


 복잡한 문장일 필요는 없어요. 단지 내가 써먹고 싶은 문장을 통으로 외워서 시시 때때로 떠올리세요. 보고 보고 또 보는 관찰자 공부 대신 아무런 단서 없이 떠올리는 것이 언어를 배우는 중요한 원칙입니다.  


        

* 참고문헌

조선일보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10/2017111002137.html

http://scienceon.hani.co.kr/243558

G.Wyner(2014). Fluent Forever. Harmony Books 





더 이상 끌려다니니 않는 한국인의 영어 독립을 꿈꾸며 글을 씁니다. 이론과 경험으로 탄탄하게 뒷받침된 알면 세월을 아껴주는 방법을 공유합니다.  '유독 한국인에게 영어가 어려운 이유, 대한민국 영어학원이 말해주지 않는 진실 등의 글에서 어려움을 공감하고 '단기 어학연수는 다녀와야 한다?' 등의 글에서는 대한민국 성인도 할 수 있음을 증명해 드렸습니다. 

앞으로는 언어 학습의 3가지 원칙 EMB 의 내용이 이어서 연재됩니다. 



*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 <언제쯤 영어를 잘할 수 있나요> 목차 

https://brunch.co.kr/magazine/englishforkorea



* 소한 좋은 습관, 소질의 힘을 믿습니다 

   매일 영어를 말하면 만나는 설레는 일, 위스픽잉글리시 

http://wespeakenglis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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