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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산팔육 Nov 23. 2019

어느 날 현관을 나오며

서하에게 화를 내는 아침은 하루가 슬프다. 서하는 금세 모든 걸 잊어 내 손을 쥐고 졸래졸래 집을 나서지만, 그래도 그날은 슬픔이 자꾸 곁을 맴돈다. 이를테면 등원을 앞두고 촌각을 다투는 시국에 거듭 혼자서 칫솔질을 하겠다며 혓바닥만 슥슥 닦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열불이 뻗칠 때가 있다. 그러다 버럭이라도 하게 되면 엄마와 달리 아빠는 무서운지 서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소리 없이 몸으로 운다. 그렇게 미안할 새도 없이 서둘러 옷을 입혀 현관을 나오다 보면 그 시인이 생각나는 것이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할미의 오지랖이나 아내의 잔소리에는 한번 대항하지 못하면서 옹졸하게 서하에게만 빽 소리를 지르는가. 부장의 부당한 지시는 영혼 없이 잘만 이행하면서 서하의 서투른 칫솔질과 환복에는 가축처럼 흥분하는가. 이에 시인은 '우습지 않느냐'고 했지만 나는 암만해도 미안하다. 나의 옹졸한 분노를 마음 한구석이 아닌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서하가 암만해도 안쓰럽다. 나는 그것이 '조금은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서하에게 화를 내는 날은 오늘처럼 하루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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