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사를 읽다 우연히 싸이월드가 아직도 연명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싸이월드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의 역사였다. 나는 싸이월드에서 축구선수 마이클오웬에 빗댄 마이클희웬이라는 잔망한 닉네임으로 활동했고, ○○누님이라는 일촌이 참 많았다. 미니미에 군복을 입히고 떠난 군대에서도 일촌들의 댓글을 꼬박꼬박 확인했고, 복학을 해서는 '너가 문득 웃길래' 같은 감성 픽션을 꾸준히 연재했다. 그 모든 부끄러움이 분명 회사의 부실과 함께 청산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그 일촌명과 미니미가, 또 제목조차 납득하기 힘든 감성 글들이 버젓이 세상과 동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간담이 서늘했다. 그래서 찾아가 보니 과연 오보가 아니었다. 나는 방문을 닫고 그 오욕의 역사를 단숨에 읽었다. 어떤 하나의 감정으로 설명하기 힘든, 그래 만감이 교차했다. 언젠가 이에 대해서는 또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거기서 발견한 하나의 글을 옮겨보려 한다. 부끄러움이야 어차피 내가 아닌 마이클희웬의 몫이고, 지금 내게는 그 글의 바닥에 깔린 가볍고 유쾌한 정서가 추억의 BGM처럼 아련하게 몰려왔기 때문이다. 암만해도 이런 글은 다시 못 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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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겨울에 관한 얘기 / '08.11.15
요사이 조금 무료한 날들을 보내면서 어제는 오랫동안 예능을 보았다. 예능에서는 많은 말들이 오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피식 웃거나 꺼이꺼이 폭소하다 문득 얼마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그냥 재밌으라고 하는 얘기. "요새 뭐 재밌는 일 없어?"라고 묻는 박진우에게 들려줄 얘기가.
이런 얘기. 버스를 타는데 내 앞에 연인이 먼저 탔다. 여자친구로 보이는 여자가 교통카드를 제대로 찍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이유는 모르겠다만 밀려있는 대기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 때문인 듯 그녀는 더 허둥대더니 지갑마저 떨어뜨리는 게 아닌가. 나는 그녀가 지갑을 줍는 사이 무심히 카드를 먼저 찍고 자리를 잡아 앉았다. 그리고는 잔뜩 벌게진 그녀의 얼굴을 못 본척해 주기 위해 창밖을 쳐다보는데… 겨우 탑승에 성공한 그녀가 씩씩거리며 걸어오더니 내 옆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서울버스는 못 타주겠다느니,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느니, 마치 내가 남자친구라도 된다느니, 하소연을 시작했다. "자기, 오늘 정말 힘들다 그치?" 그랬다. 그녀는 정말 내가 자기 남자친구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면 다음 장면은 뻔한 것 아닌가. 여자친구 탓에 날이 선 대기자들에게 모든 차례를 양보하고 그제야 여자에게 향하던 남자와, 방금 막 민망한 상황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여자와, 정말로 아무 죄가 없던 내가 서로를 다시 발견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때 그녀의 태도는 어땠는가. 그녀는 좀 전의 쩔쩔매던 표정과는 반대로 마치 그러한 일이 연속으로 발생한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기개를 발휘했다. 하지만 아아.. 가혹했다. 나에게는 회초리를, 연인에게는 철퇴를! 그녀는 멋쩍은 표정으로 우리의 뒷자리에 혼자 자리 잡은 남자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재개했다. 아무렇지 않게, 나는 여전히 창밖을, 그녀는 오롯이 정면을, 그는 '우리' 사이에 얼굴을 집어넣고는. 이 예능 같은 삼각 구도는 얼마간 지속되지 못하고 결국 그녀가 원죄를 직접 주워 담기로 결심하며 종결되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아무렇지 않게 "그냥 우리 뒤에 앉자"며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둘은 총총히 이동했고 비로소 혼자가 된 나는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우리가 함께 하는 동안 그녀는 분명 내가 다음 정거장, 그래 적어도 다음 정거장에서는 내려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건 볼만한 채널을 기다리는 것만큼 모두에게 고역일 수밖에 없다. 오직 다행인 것은 그녀가 남자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그제야 그가 활짝 웃었다는 것이다.
서울의 겨울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써놓고 보니 역시 이런 얘기는 직접 들려주는 게 제일이다. 그냥 재밌으라고. 그러고 보니 며칠 전 교양에서 한 학생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건 그냥 웃기라고 쓴 거 아닌가요?" 성석제의 소설을 두고 한 말이다. 이후 학생들은 트라우마니 메타포니 헤게모니 같은 단어들을 마구 쏟아냈다. 학생들의 심오한 지성에 문득 멀미가 올라올 즈음, 가만히 학생들의 공방을 지켜보던 교수가 입을 열었다. "허허 성석제가 사실은 내 친구야. 능구렁이 같은 놈이었지.. 그게 일종의 해체적 글쓰기가 아니냐는 해설들이 있었는데, 자꾸 자기는 그냥 한번, 느닷없이, 정신없이 웃자고 썼다는 거야 허허"
이런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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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에서 발견한 수십 개의 글 중에서 남의 문장을 가져오지 않은 글은 이 글이 유일했다. 이 얘기는 당시 짝사랑을 집에 바래다주며 지하철에서 들려준 얘긴데, 그 아이가 꺼이꺼이 폭소하는 모습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으로 집에 와서 쓴 글이다. 나는 그 이후 모든 글은 경험 안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웃기라고 쓴 성석제의 글을 모두 섭렵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작은 에피소드를 가지고 몇 문장 써놓고 이것도 글이라 했었다. 남의 문장에 내 문장을 보태기도 귀찮아서 그랬지만, 글 하나는 참 쉽게 썼다. 생각도, 의미도 없이. 이제는 머리가 커져서 그런지, TV의 모든 예능이 재미가 없어진 것처럼, 글 하나 쓰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제는, 그제와 똑같은 회사원의 생을 원망하기도. 그래서 저 오욕의 역사에서도 오늘 하나 건진 게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경험이 글이 된다는 믿음이었다. 여전히 서울은 겨울이고, 사람들은 안부를 묻는다. 아마 내일부터 글을 몇 개는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