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도시와 정경을 좋아한다. 그냥 서울보다는 남산에서 보는 서울이 좋고, 회사 옥상에서 보는 여의도도 좋아한다. 그곳에 올라가 현대5차아파트나 양화대교를 찾아보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망망하고 아득한 풍경에 마음이 의젓해지는 기분이 좋다. 맹자의 호연지기도 분명 이런 데서 유래하였을 것이다. 혹시 그곳이 남해는 아니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빈센트라는 이름을 가진 남해의 펜션에서 유리와 처음 본 끝없는 수평선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디서도 목격한 적 없는 그 온전한 경계에 우리는 낡은 추억을 걸어놓고 왔다.
나는 잠에 청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컴컴한 방에서도 눈을 꼭 감고 누워 하루의 몽상을 시작하는 그 시간은 휴식의 완성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시간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 평온하고 고요한 순간을 능가하는 여가와 휴양지를 알지 못한다. 하와이에서도 남해에서도 진정한 휴식은 찬란했던 태양이 저물고 사람들의 아쉬움이 짙게 깔리던 밤에서야 시작되었다.
나는 노년의 작가가 쓴 글을 좋아한다. 모든 군더더기를 들어내고 남은 마지막 모습은 늘 아름답다. 소년 같은 진솔한 마음, 꽃 같은 순수한 감성은 내가 아는 한 언제나 청춘이 아닌 노년 작가의 몫이었다. 나는 특히, 피천득의 <서영이> 같은 글을 사랑한다.
나는 사우나를 좋아한다. 생각 좀 정리하겠다며 가서는 잠만 자다 오기 일쑤지만, 온탕에 온몸을 내어주고 얻는 나른함이 좋다. 가끔 온탕 대신 선택한 열탕에 몸을 반만 넣고 정신을 잃을 때면, 좀처럼 생각나지 않던 '심오한', '청초한' 같은 단어가 생각나 한없이 기쁠 때가 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좋아하고, 가령 내가 지하 조직의 '실장' 같은 남자가 되는 상상을 좋아하고, 그래서 느와르를 좋아한다. 나는 먼 미래에 서하의 결혼식장에서 주례사를 낭송하는 상상을 좋아하고, 그 주례사가 내 필생의 대작이 되는 상상을 좋아한다.
나는 내가 축구를 좋아하고 조금은 잘한다는 사실을 좋아한다. 그래서 일요일 경기를 앞둔 토요일 밤을 좋아하고,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유튜브로 연습한 기술을 현장에서 완벽히 구현해내는 상상을 좋아한다. 물론 상상은 늘 현실에 미끄러지는 법이다.
나는 서하가 좀 더 크면 일주일에 두세 번은 축구를 하고 싶다. 지금도 물론 가능하겠지만, 아무래도 육아에 좀 더 힘을 보태야 하는 시기다. 나는 요사이 집에서 서하의 공으로 이쪽 방에서 저쪽 방까지 해가는 드리블을 좋아한다.
나는 퇴근하고 들어서는 현관을 좋아한다. 현관 앞으로 벌써 새어 나오는 서하와 유리의 대화를, 이제는 좀처럼 해주지 않는 서하의 첫인사를 좋아한다. 구두를 벗으면 시작될 전쟁의 서막을 잘 알면서도, 나는 몇 시간 만에 다시 보는 서하의 얼굴을 더 사랑한다. 나는 그곳에서 보게 된다, 우리 집에 걸려 있는 단정한 수평선 하나를. 나는 그것을 떼어다 높은 집을 짓고 싶다. 저 작은 세상에서 더 작은 아이로 살아가는 서하가 잘 보이는 현대6차아파트를 짓고 싶다. 거기서 서하에게 호연지기와 축구를 가르치고, 서하가 결혼할 때까지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