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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포 Nov 02. 2022

'어쩌다 대통령'의 추억

워렌 하딩의 오류가 소환되는 까닭은?

<자료 : kr.usembassy.gov>



"나는 대통령 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며, 이 직책을 맡지 않았어야 했다." 미국 29대 대통령 워렌 하딩이 편지에서 밝힌 말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는 별별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당선 이유도 다양하다. 이 중에서 대통령처럼 생겼다는 평가를 받아서 대통령이 된 인물이 바로 워렌 하딩이다.    

  

하지만 하딩은 지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소박하기는 하나 성실하지 못했고, 놀기를 좋아했으며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다. 대통령 직무 보다 포커 게임, 밀조된 위스키, 외도를 즐겼다. 금주법 시기인데도 백악관에서 친구들을 초대해 밤을 새워가면서 위스키를 마시고 포커판을 벌였다.      


워렌 하딩은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후 사람의 외모와 감성만을 보고 판단할 때 발생하는 오류를 "워렌 하딩의 오류"라고 부르게 됐다. 워렌 하딩에 관한 것 중 대표적인 것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어쩌다 대통령이 됐다. 처음 후보로 나섰을 때 하딩은 한참 뒤처져있어 포기하려고 했다. 1위 후보와 2위 후보가 격렬하게 대립하고 서로 양보를 거부하자 당 중진들이 차선책으로 후보 2진 중에서 하딩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당 지도부의 충고를 잘 받아들이고 자신들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라고 한다.      


시대적 배경도 하딩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전임 대통령 위드로 윌슨의 고매함에 싫증 난 미국 유권자들은 대통령답게 생기고 친절한 하딩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다. 변화와 개혁은 1차 세계대전 종료와 함께 유명무실하게 됐고 미국인들은 개혁과 국제문제에 대해선 환멸을 느꼈다. 하딩의 선거 구호는 ‘정상으로의 복귀(back to normalcy)’였다.     


둘째, 부유한 재력가의 딸과 결혼한 후 인생이 바뀌었다. 소박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하딩이 공직에 나가게 된 것은 순전히 아내 플로센스의 극성 때문이었다. 그는 야심 있는 아내의 도움으로 외모와 사교성을 활용해 정치에 뛰어들었다. 남편의 출세에 깊이 관여한 플로렌스와 오하이오 정치 협잡꾼인 해리 도허티의 공작에 의해서 주 상원의원이 되었고 대권까지 차지할 수 있었다.    


셋째, 인사의 난맥상이다. 하딩은 이 나라의 최고 지성을 각료로 임명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그의 인사는 정실에 얽매였다. 주요 인사는 아내 플로렌스의 강력한 요구로 이루어졌고, 그녀는 정기적으로 점성술사에게 가서 점을 봤다. 이 점성술사의 조언에 따라 내각인사와 다른 행정부의 자리가 배정되었다. 하딩은 자신의 측근들을 내무장관과 법무장관과 같은 요직에 임명했는데 이들은 후에 부패 스캔들의 핵심 장본인들이었다.     


어쩌다 대통령에 당선된 하딩은 스스로 “나는 대통령감이 아니다”라고 토로하곤 했다. 책임을 떠넘기고 제대로 보지 않는 바람에 그가 재임한 시기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부패한 시기로 기록되었다. 하딩은 재임 2년 3개월 만에 여행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하딩은 ‘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대통령’ 조사 때마다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100년 전 미국의 ‘어쩌다 대통령’을 소환한 것은 이 사례를 통해서 교훈을 얻고자 하기 위함이다. 대통령제 역사는 짧지만 다이내믹한 대한민국에서도 ‘어쩌다 대통령’이 나왔기 때문이다. ‘어쩌다 대통령’은 진보 보수 언론 모두 인정하는 용어이고 능력과 자질보다는 다른 요인에 의해서 선출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월이 지나면 우리도 ‘어쩌다 대통령’의 추억을 가지고 업적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워렌 하딩의 오류’가 나타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 광일보 은펜컬럼(202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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