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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무솔 Nov 09. 2018

매일 보는 사람과 매일 인사하기

당신의 인사가 더 이상 고역이 되지 않기를




6살 무렵부터 매일 같이 어딘가를 가야만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로 시작했던 하루가 차장님 안녕하십니까로 바뀌었을 뿐 그 시간의 포맷은 무서울 정도로 동일했다. 이 수없이 반복되는 비스무리한 시간들을 견뎌내야만 하는 것은 얼마나 큰 고역인가. 가끔 추억으로 남을 몇 장면을 위해 내 365일의 대부분은 B컷으로 소비되고 말았다.


평소보다 늦게 출근했던 날, 애타게 기다려도 오지 않던 엘레베이터 안에서 상급자를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라는 나의 인사에 짐짓 못들은 척 정면을 바라본다. 자기보다 늦게 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제스쳐다. 분명 업무시작까지는 20분이나 남았지만 그냥 고깝다는 데 할말이 없다. 나도 그처럼 아무 것도 없는 엘레베이터 철문을 응시하는 수 밖에.


가야만 하는 곳에서의 인사는 반가움보다는 권력의 코드로 해석되고 나이를 먹어갈 수록 그 정도는 심해진다. 학창 시절 선배에게 인사를 먼저 하지 않는 것이 치기어린 자존심이었다면, 군대에서는 규율 위반이 되고, 사회에서는 싸가지 없는 놈이 된다. 매일 보는 사람과 매일 인사를 하지만, 상급자가 먼저 좋은 아침이야라고 인사하는 일은 전날 자기계발서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든지 하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발생한다. 그들에게 고기는 씹어야 제맛이고, 인사는 받아야 제맛다.


흔히들 신입사원들에게 인사를 크게해라, 인사는 기본이다라는 말을 대단한 격언처럼 건넨다. 시스템을 너에게 맞출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네가 시스템에 맞추라는 고압적인 길들이기다. 고작 삼십대 중반을 갓 넘긴 과장에게서 요즘 애들은 인사를 안해(싸가지 없이) 우리 땐 안그랬는데 라는 말을 들었을 땐 헛웃음이 나왔다. 당연히 그가 먼저 인사하는 일은 없었다. 잘 모르는 사이인데도 왜 그렇게 인사를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왜 인사라는 행위로부터 자신이 존중받고 있음을 확인해야 하는 것일까?


굳이 마주치지 않는 이상 찾아가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지 않기로 한 순간부터 불편한 시선들이 느껴진다. 차라리 예전처럼 나오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여 인사를 해야하나 하는 유혹에 빠진다. 목요일까지 마주칠 일이 없다가 금요일에 정면으로 마주친 상급자에게 인사를 건네면 냉냉한 기운이 들어오기도 한다. 나는 이미 싸가지 없는 놈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비생산적인 서열확인으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다. 대신 누군가를 마주칠 때면 의식적으로 먼저 인사를 건네고자 노력한다. 선배든 후배든, 상급자든 하급자든 나는 오직 그 사람을 봐서 반갑다는 이유로만 예의를 담아 하고 싶다.


인사가 아닌 경례를 받고자 하는 이들이 많을 수록 그 조직은 삭막하고 피곤하다. 그런 곳에 매일 같이 가야하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다며 자조적인 개그를 잘도 건네지만, 서로를 가족처럼 대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나도 모르게 인사라는 행위가 내 위로 몇명 있는지, 내 아래로 몇명 있는지를 구분하는 서열 측정기로서 기능하고 있다면, 스스로를 꼰대로 의심해 볼 시간이다. 인사하지 않는 하급자를 고까워 하느니 인사를 크게 하자. 인사는 기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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