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을 좋아하는 것도 취향 아닌가요?
어렸을 때는 겨울이 좋다고 했다. 두꺼운 옷을 여러 개 껴입고 밖에 나가면 세상이 새로웠다. 숨을 쉴 때마다 들어오는 찬 공기가 온몸을 돌아 몸의 일부가 되는 그 느낌이 좋았다. 재밌게도 나이가 들고 보니 겨울보다는 봄이 좋아졌다. 살아가면서 겨울의 불편함을 몸소 겪어 그런지 추운 날이 풀리고 옷이 가벼워지는 봄이 좋다. 아니 솔직히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부터 봄이 좋아졌다.
학창 시절을 두 chapter로 나누면 첫 장은 창원, 다른 장은 베네수엘라다. 우리 집은 진해군항제에서 차로 불가 10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어렸을 때 벚꽃은 당연한 것이었다. 매년 봄기운이 올라올 때면 우리 동네는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벚꽃은 얼마나 연약한 지 바람 한 번에 무수히 많은 잎들이 떨어졌다. 우리는 그 장면을 벚꽃 바람이라 불렀다. 바람이 벚꽃 잎을 태워 지나갈 때마다 난 열심히 새 학기 적응을 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 벚꽃은 나에게 당연한 것이자 새 시작이었다.
대학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옷이 한결 가벼워질 때 우리는 막걸리를 들고 을지도를 갔다. 잔디밭에 앉아 벚꽃이 날리는 걸 보며 하염없이 막걸리를 마셨다. 정말 잎이 떨어질 때마다 한 명의 시인처럼 막걸리를 마시다 다시 대학가로 가 소주로 위를 덮었다. 대학 4년 동안 벚꽃 필 때마다 자연스레 을숙도를 가서 술을 마셨다. 그게 당연한 행위 중 하나였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벚꽃을 안주삼아 생막걸리를 들이부었다.
내 삶에 벚꽃은 당연한 것이었다. 봄의 상징이자 새 학기의 시작이기도 한 벚꽃인데 서울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다. 아니 쉽게 볼 수는 있지만 여유롭게 볼 수 없다. 벚꽃이 핀 곳들도 많이 없고 벚꽃이 울창하게 핀 곳은 사람들로 붐볐다. 서울에 올라오자 말자 첫 봄, 그렇게나 고향의 벚꽃이 그리웠다.
벚꽃은 봄,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재생과 유한함 같은 삶의 본성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불과 2주 동안 짧은 시기에 화려하게 피었다가 한순간의 꿈처럼 사라지는 속성을 가진 까닭이다.
- 이민경, 『도쿄 큐레이션』, 진풍경
사람 없는 곳에서 벚꽃을 즐기는 게 너무 그리워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다녔다. 아무리 찾아다녀도 예전처럼 벚꽃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서울에는 없었다. 계속 그리워하는 마음을 간직할 수도 봄마다 밑에 내려갈 수도 없으니 나만의 의식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 집 가까이에는 벚꽃으로 유명한 석촌호수가 있다. 벚꽃이 만개할 때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하지만 딱 새벽, 새벽에는 사람들이 적다. 봄이 오면 새벽에 일어나 석촌호수를 뛰었다.
뛰는 동안 한없이 눈에 벚꽃을 담을 수 있어 좋았다. 사람들이 적은 새벽에 호수의 반대편의 넘치는 벚꽃을 보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뛰다 잠시 멈춰 하늘을 바라보면 벚꽃으로 가득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다 보니 새벽에 벚꽃과 함께 석촌호수를 뛰는 것은 나의 ritual이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석촌호수에 벚꽃 필 날만 기다린다. 새벽에 일어나는 연습을 미리 하고 다치지 않게 스트레칭도 열심히 하며 벚꽃 러닝을 할 준비연습을 한다. 불가 2주 동안만 즐길 수 있는 것이기에 너무나 소중하다.
벚꽃은 피어있을 때만큼 낙화할 때도 이쁘다. 바람에 따라 화려하면서 잔잔하게 그리고 조용하게 땅에 떨어질 때마다 마음이 이상했다. 어렸을 때는 방황하는 우리 같아 마음이 아렸고 지금은 내 청춘이 저렇게 가는 것 같아 아리다. 그때마다 그런 마음을 떨쳐내기 위해 벚꽃 잎을 잡아본다. 초 중학교 때는 친구들과 누가 서로 많이 잡냐 내기도 했고, 대학교 때는 잡으면 여자친구가 생긴다는 말에 열심히도 잡았다.
10분 동안 애를 써야 하나 잡을까 말까 한다. 꽃잎이 바람에 따라 손 틈 사이에도 빠져나가고 잡을까 하면 손바람에 의해 저 멀리로 달아난다. 허공에 이리저리 팔을 휘저어야 소중한 벚꽃 잎 하나가 잡힌다. 벚꽃 잎 잡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아렸던 마음이 사라지고 어린아이로 돌아간다. 아니 내가 돌아가려 그 놀이는 한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그렇게 또 희한한 방식으로 벚꽃을 즐긴다.
의도치 않게 오랫동안 일을 쉬며 나를 보살피는 방법을 배웠다. 혼자 카페도 가고 사우나도 가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는 시간을 가졌다. 나를 보살피는 방법 중 내가 가장 애정하는 건 하이쿠 시집을 읽는 것이다. 김연수 작가님의 청춘의 문장들을 보다 하이쿠에 꽂히게 됐다. 짧은 글에서 오는 연상, 다른 나라 시와 다르게 하이쿠만의 맛이 있다. 하이쿠는 일본 시다 보니 벚꽃에 대한 글이 많다.
하이쿠 역시 읊는 맛이라 병기된 히라가나를 더듬더듬 읽으며 5,7,5조를 느끼는 맛은 각별하다. 도대체 ‘세상은 나흘/보지 못한 동안에/ 벚꽃이라네’ 같은 시를 읽지 않고 어떻게 봄을 기다린다고 할 수 있을까?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마음산책
하이쿠는 봄과 벚꽃을 잘 담고 있다. 봄을 이야기하는 하이쿠에는 여운이 있다. 봄의 하이쿠를 읽으면 그 짧은 글에서 봄이 펼쳐진다. 벚꽃이 가득한 예전 우리 동네가 생각나고 희미하게 벚꽃 향기도 난다. 봄의 하이쿠는 끝이 나지 않는 찝찝함이 매력이다. 나에게는 열린 결말처럼 보이는 봄의 하이쿠는 봄을 연상시키기에 딱 좋다.
이렇게 한가로운 봄날에 왜 벚꽃은 이렇게 서둘러지려고 하는 것일까.
- 키노 츠라유기 "코킨 와카슈"
모두 거짓말이었다며 봄은 달아나 버렸다.
- 산토카
벚꽃잎이여 하늘도 흐려지게 흩날려다오. 늙음이 찾아오는 길 잃어버리게
- 아리와라노 나리히
벚꽃은 일본을 연상시키지만 제주도의 왕벚꽃에서 기원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 1908년 남제주 성당에서 근무하던 프랑스 신부 에밀 타케가 한라산 북쪽 관음사 쪽에서 자생하는 왕벚꽃 나무를 채집하면서 세계에 알려졌다. 다만 최근 연구에서는 (국립수목원 지원 아래 명지대·가천대 연구자가 참여해 왕벚나무의 전체 유전체(게놈)를 해독한 연구) “완전한 유전체를 비교한 결과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서로 다른 식물”이라는 결론 내려졌다. 벚꽃의 기원을 떠나 나는 벚꽃 그 자체가 좋다.
아주 짧게나마 남모르게 피웠다가 바람에 사라지는 벚꽃, 그 벚꽃이 당연한 게 아님을 알게 되니 조금 더 오래 보고 자세히 보고 싶다. 4월 중순이 되면 사라질 것이고 내년에야 벚꽃의 냄새를 다시 맡을 수 있으니.. 벚꽃 향이 옷에 베일 정도로 하루종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