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디자이너가 없다면 성장할 수 없나요?’라는 글을 적은 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그 사이 브랜딩 업계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디자이너와 기획자들이 생겼다. 고민 끝에 찾아낸 이들이라기보다는 작업과 이야기를 지켜보며 마음에 스며든 분들이다. 나가오카 겐메이 선생님의 말씀처럼 브랜딩 업계에 관심을 가지고 브랜딩 책을 읽고 브랜딩 작업을 보니 좋아하는 작업자(디자이너, 기획자, 마케터)들이 저절로 생기더라.
오늘은 한국, 일본, 미국으로 나눠 내가 존경하는 브랜드 전략 기획자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들 중에는 마케터도, 디자이너도 있지만, 모두 브랜딩을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이들이기에 한데 묶어 ‘기획자’라 칭하고자 한다.
브랜드 심리학자,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시간과 비용의 한계로 집중화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브랜드 분야의 지식에 목말라하고 있다면 이 책은 분명 한 번쯤 정독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서비스 디자이너가 된 후 현실에 부딪혀 브랜딩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자 하였을 때 우연찮게 김지헌 교수님의 디스 이즈 브랜딩을 보게 되었다. 누구보다 쉽게 브랜딩에 대해서 알려주었고 그 책을 시작으로 브랜딩을 업 삼기로 했다. 이전까지는 사람들이 물어볼 때 서비스디자이너라고 대답했다면 이 책 이후로 브랜드 전략기획자가 되었다. 브랜드의 컨셉이 무엇인지, 브랜드 자산이 어떻게 되는지, 브랜드 확장 전략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브랜드의 기본과 심화를 배울 수 있었다.
그중 브랜드 지식구조는 브랜딩 에이전시부터 인하우스에 온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브랜드 지식구조는 브랜드가 어떤 연상을 만드는지 쉽게 맵으로 표현한 것으로 나이키는 농구와 도전정신의 강력한 노드를 가지고 있으며, 리복은 에어로빅, 샤킬오닐 등의 노드를 가지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디스이즈 브랜딩을 읽은 후 더 배우기 위해 마케팅 브레인을 읽었다. 상대 브랜드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희석시키는 등의 진정한 브랜드 전략(전쟁을 전반적으로 이끌어 가는 방법이나 책략)을 배웠다. 여전히 교수님의 페이스북을 살펴보며 브랜딩 지식을 얻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브랜드와 관련된 기억에 따라 이 정보를 선택하고 조직하여 해석합니다. 따라서 기업은 긍정적인 왜곡이 일어날 수 있도록 소비자들의 기억을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소비자의 기억을 브랜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구축, 관리하는 것이 브랜드 전략의 핵심입니다.”
- 김지헌, 『디스이즈브랜딩』, 턴어라운드
기능적 혜택은 소비자가 느끼는 현재의 기능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또는 미래의 기능적 문제를 예방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능적 혜택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앞으로 설명할 다른 두 유형의 혜택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에 비해 가격민감도가 높은 특성이 있습니다.
(생략) 상징적 혜택은 소비자가 자아 이미지, 사회적 지위, 소속감 등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략) 경험적 혜택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이용할 때 오감 또는 지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혜택을 의미합니다.
- 김지헌, 『디스이즈브랜딩』, 턴어라운드
시장에 먼저 진입한 브랜드가 해당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차별적 가치를 선점하고 있는 경우 후발 브랜드가 고려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전략이 있습니다. 먼저, 경쟁 브랜드가 선점한 핵심 연상들의 의미를 재해석함으로써 가치를 희석시키는 전략입니다.
또 다른 전략은 경쟁 브랜드가 선점한 핵심 연상을 세분화한 뒤 더 유리한 연상을 선점하는 방법입니다. (BMW가 경쟁 브랜드인 벤츠를 공략할 때 이 방법을 활용)
나의 가치 수준을 높이지 않더라도 경쟁자의 가치 수준을 낮추면 소비자가 우리 브랜드에 대해 인식하는 가치 수준은 높아질 수 있습니다.
- 김지헌, 『마케팅 브레인』, 갈매나무
굿디자인컴퍼니 대표 http://gooddesigncompany.com/
“기획서는 지식의 축적이 필요하고, 그 상품의 이야기나 가치를 말해주어야 한다.“
팔다에서 팔리다를 처음 읽었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어떻게 자신의 PT 장표를 책에 넣을 수 있을까?’, ‘이렇게 자신만의 노하우를 알려줘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우면서도 대단했다. 미즈노 마나부 대표의 책을 통해 기획서 작성의 기본을 다시 배우게 되었다. 기획서를 쓸 때 어떤 생각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무엇을 고려해야 효과적인 설득이 가능한지 등 브랜드 기획의 기초부터 심화까지 담겨 있었다.
특히 팔다에서 팔리다로는 젠 스타일의 프레젠테이션 만드는 법과 장표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임팩트 있는 장표 설계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은 단순히 단어의 선택이 아닌 압축된 표현과 유려한 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미를 잃는다. 장표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의 흐름을 말로써 보충해줘야 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센스의 재발견에서는 브랜드다움의 개념을 배울 수 있다. 책에 등장하는 sizzle이라는 단어는 브랜드나 제품만의 고유한 매력을 의미한다. 이 sizzle이 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핵심이다. 그 사례로 미즈노 대표가 디자인한 쿠마몬을 만들 때 사용한 질문법이 소개된다. “구마모토의 곰은 일본다운 것인가?”, “일본다운 곰의 색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팔리는 sizzle이 탄생한다. 이런 질문법은 브랜드의 본질을 고민하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기획의 핵심을 보여준다.
기획서도 그것은 동일합니다. 읽는 상대, 전하고 싶은 상대를 생각하면서 씁니다. 저는 이것이, 실은 기획서의 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략) 그래서 저는 평소에도 기획서에는 우선, 상대방이 이것을 듣고 싶을까, 이것을 말해주길 바랄까를 생각하며 그렇게 쓰고자 노력합니다.
- 미즈노 마나부, 『팔다에서 팔리다로』, 이콘
종래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독창성만 고집한다면 말 그대로 ‘독선적인 창조’가 된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새로움을 쫓으면서도 과거에 대한 경의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로부터 배울 때는 무엇을 단서로 삼을지 꿰뚫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 미즈노 마나부, 『센스의 재발견』, 하루
도로를 청소하는 사람은 ‘깨끗한 도로’라는 가치를 만드는 일에 종사하니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어떤 뜻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은 ‘편리함’이라는 가치를 고객에게 주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으니 편리함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깨끗한 도로, 혹은 편리함이라는 것은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그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이런 지식이 없다면 설명서대로 일할 수밖에 없다. 모든 일은 가치를 창조함으로써 대가를 얻는다.
- 미즈노 마나부, 『센스의 재발견』, 하루
Collins Chief Strategy Officer, https://www.youtube.com/watch?v=SCKYMUBSpxs
“제가 전략가로서 가진 가장 큰 힘은 작지만 강력한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가능성이 저를 매일 아침 설레게 하고 일어나게 만듭니다. 이 브랜드가 세상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돕고 있는지 생각할 때, 그 과정 자체가 저에게 큰 의미와 동기를 부여합니다.”
이전 회사에서 뉴욕의 3대 디자인 어워드보다 더 권위 있다는 평가를 받는 D&AD 어워드를 준비하던 중 우연히 Collins의 브랜드 전략 디렉터의 강의를 접하게 되었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에 강의를 하기에 그 전날 빠르게 잠에 들고 새벽 4시에 그 강의를 live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땐 너무 목말라있었다. 사수도 없었고 고만고만한 사람들과 함께 브랜드 전략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며 나보다 경험 많은 자의 지식이 필요했다.
그의 강의는 간지럽던 곳을 긁어주기 충분했다. 특히 브랜드의 해답을 찾기 위한 3가지 단계는 주변 초보 브랜드 전략 기획자에게 권해주고 싶을 만큼 유익했다. 첫 번째로 답하고자 하는 진짜 문제를 찾는 것이다. 브랜드 컨설팅을 할 때 클라이언트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문제를 말씀하시지만 실제로 그게 브랜드를 작동시키기 위한 핵심 문제가 아닐 때가 왕왕 있다. 그러다 보니 진짜 문제는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만약 이 문제를 발견했으면 문제 해결의 절반정도 온 것이다.
두 번째는 질문을 답하는 데 필요한 input이 뭐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배워야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배움의 과정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구성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질문에 대한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준비가 되면 산발된 정보들을 한데 모아 solution을 구축하고 브랜드에서 표현해야 할 경험들을 설계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다만 3가지 단계를 생각하며 컨설팅을 진행할 때에 브랜드를 도울 수 있는 알맞은 답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재밌던 부분은 Q&A시간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으로는 ‘뻔한 답을 찾는 것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새로운 인사이트가 전혀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었다. 그 답으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착각이고 더 강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길을 구축하고 새로운 인사이트를 파악하라는 것이었다. 만약 정말 그곳에 새로운 것이 없다면 완벽히 반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라고 조언했다. 힌트가 될 곳을 찾고 연관 없는 공간, 카테고리에서 같은 패턴의 행동이 보이는 곳에 가 새롭게 배우라는 것이었다.
재밌게도 새로운 카테고리로 가 유사한 브랜드를 찾는 건 첫 번째 컨설팅 회사에서 배운 방법으로 생각을 전환하는데 좋다. 새롭게 시선을 바라보면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문제들이 보이고 어떤 브랜드 경험을 설계해야 할지 다른 카테고리에 있는 유사 브랜드에서 배울 수 있다. 이렇게 1시간 동안 진행한 강의는 쏜살같이 지나갔다. 상당히 유익했고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브랜딩 강의 었다.
이렇게 세 명의 기획자를 소개했다. 브랜드 전략의 이론에서부터 기획서 작성 방법, 그리고 브랜드 솔루션에 접근하는 태도까지, 브랜드 전략 기획자로서 꼭 필요한 다양한 가르침을 이분들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일을 하며 브랜딩에 대한 확신이 흔들릴 때도 있었고, 도무지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좌절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분들의 강연과 책은 나에게 다시 방향을 제시해 주었고, 작은 실마리를 찾으며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브랜딩이 무엇인지 모르겠거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이 분들의 책과 강연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