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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디 May 13. 2023

결혼 4년 차, 애 없는 부부의 일상

2020년 8월 22일, 

코로나 바이러스가 모두의 일상 속 중심에 있던 그때.

저는 얼굴의 반이 수염으로 덮인, 그러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나 깨끗한 - 2살 연상인 남자와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검은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인생을 함께하겠다는 원대한 약속을 맺은 우리 부부는

만난 지는 6년 차, 부부로 시간을 함께한 지는 올해로 4년 차입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적당한 크기와 적당한 가격의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고 

벌이는 또래보다는 조금 낮거나 비슷한 수준입니다. 


남편의 집안, 시가와 연을 끊은 지는 수개월 째라 별다른 시가 스트레스는 없고요.

고로 저는 결혼 전이나 후나 똑같이 친정만 챙기며 며느리 역할이 빠진 평범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회사동료가 그러더라고요.

'난 시가 없는 남자가 내 이상형이야.' 


네, 맞아요. 편하긴 편합니다. 

비록 연을 끊기까지 정말 무수히 많은 상처와 비난을 받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긴 했지만

뭐, 어쩌겠어요. 과거는 흐르는 강물에 유유히 떠나보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배웠습니다.


아이는 없어요.

무책임한 부모 밑에서 자란 남편이 절대 자리를 잡기 전에는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단언하는 바람에

아직 아이는 없습니다.


이게 '아직'인지 '영영'인지 '계획'인지 헷갈립니다만, 사실 저로서도 아이가 간절한 입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 부부는 연애 1일 차부터 동거를 시작했어요.

2018년 봄부터 연애를 시작했으니까 같이 한 공간에서 산 세월이 여느 신혼부부 치고는 조금 더 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간혹 사람들이 물어요. 그쯤 되면 애 없으면 심심하지 않냐고.

음, 우선 '심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남편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끔 우리 부부를 바라보고 있으면 둘 사이에 허전한 빈 공간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는 합니다.


이 빈 공간에 애를 채우면 소위 말하는 '그림'이 완성되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누군가 저에게 '완성된 그림이 아닌 것 같아?'라는 질문을 해온다면 저는 머뭇거림 끝에 결국 확신에 찬 대답을 내놓지 못할 것 같긴 합니다.


그 대신, 우리 부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프고 '엄마'로서의 제 자신을 성장시켜 주는 소중한 가족이 있는데요.

바로 강아지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입니다.

모두 유기동물 출신이니까, 말하자면 저희는 심사숙고 끝에 그들을 자식으로 '입양'한 셈입니다. 


아이가 있는 일상을 전혀 모르지만,

그래도 남들과 비교해 보자면 아이가 없는 부부의 삶에는 뚜렷한 장점 몇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다방면에서의 자아실현과 다방면에서의 자유만끽인데요, 최근 저희의 일상을 예로 들어 열거해 보겠습니다. 


-


1. 다방면에서의 자아실현


저는 올해로 만 33세인데, 우선 결혼을 했고. 뭐 그러니까 사회가 말하는 '창창한 청년'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내면의 자아는 아직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한 10대 소녀와 다름없지만요. 


요즘 제 머릿속 화두는 '난 어떤 일이 적성에 맞을까?'라는 간단하고도 심오한 질문입니다.

 

아직도 원하는 일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방황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활동을 하긴 해야겠으니 우선 차선책으로 일을 구해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어떤 날에는 미쳐버릴 지경이에요. 


일을 하면서도 하루에 몇 번씩 구직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리고, 다른 부서의 일을 호시탐탐 염탐하며 잿밥에 관심을 갖고.. 이러고 싶지 않은데, 현실과 타협하고 이제 그만 좀 하라고 끊임없이 자신을 나무라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안 맞는 걸.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포인트는, (쓰다 보니까 이게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으나, 애초에 전 이 생각들이 좋은 것이라고 간주했기에 그 스탠스를 쭉 이어가겠습니다.) 결혼을 했으나, 전 시가 스트레스, 육아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자아실현에 골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가 혹은 애와 싸우는 대신에 여전히 '나 자신'과 대화하고 타이르고 싸우고 있다는 것이죠. 여기에서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희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타인 혹은 가족을 위한 나의 희생. 이 희생 때문에 우리 부모님들 가슴에 대못 하나씩 박혀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가끔은 술에 취하신 부모님 입에서 한풀이 나오지 않습니까? 전 이 한의 씨앗이 타인을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나를 위한 희생이 아닌, 남을 위한 희생 말이에요.


2. 다방면에서의 자유만끽


다가오는 6월에, 전 친구랑 둘이 오사카 여행을 갑니다. 비록 지난 2월에 엄마랑 이모랑 2주 간 대만 여행을 다녀왔지만 말이에요. 


남편은 4월 중순에 보름정도 나 홀로 동남아 여행을 즐기다 왔습니다. 

올해 추석이 지나면 필리핀 여행도 계획하고 있네요. 이건 부부여행으로요.


저희는 많지 않은 월급을 쪼개고 쪼개 일 년에 400만 원을 해외여행에 투자하기로 계획했습니다.

100만 원씩은 개인여행에 지원해 주고, 200만 원은 함께하는 여행에 지원하기로.


몇 년 후에 집 사고, 몇 년 후에 차 바꾸고, 그리고 또 몇 년 후에 애 낳고...

항상 미래를 얘기하며 답답해했던 저희 부부가 어느 순간 생각을 거꾸로 전환해 버린 것인데, 이에 대한 결론이 바로 이 400만 원 해외여행 플랜입니다.


오늘이 가장 젊고, 그 젊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결혼을 했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지극한 현실을 짠하게 살 필요 없다는 것을 결혼 4년 차에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하고, 지금이 행복해야 나중도 행복하고.


이런 욜로족 같은 인생계획, 지금 저희가 애를 키우고 있다면 가능했을까요? 굳이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절대 불가능했을 겁니다. 체력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 그렇고 그렇게 '여행=사치'가 되어갔겠죠.


-


지금 남편은 친구와 놀러 나갔어요. 회기에서 파전을 먹고 있다네요.

그리고 전 토스트와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공원 벤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해가 떠 있을 때 앉았는데, 어느새 노트북 화면 밝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하늘이 어둑해졌네요.


이 글을 쓴 의도가 무엇인가 잠깐 생각해 봤는데, 표면적으로 드러난 건 '애 없어서 자유롭다'는 것이지만

결국 그 속에는 왠지 '애 갖고 싶다'는 진심이 들어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순간 가로등 불빛이 켜졌습니다. 주광색 가로등 불빛. 가장 어두웠던 찰나를 환히 밝혀주는 공원의 가로등처럼 언젠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아이 생각 대신 서로가 서로에게 환한 불빛 같은 존재가 되어주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요.


결론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겠다! 는 것입니다. 

카르페디엠! 아모르파티!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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