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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디 May 19. 2023

처가 식구를 위해 진수성찬을 차려내는 남편

남편과 친정식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부부의 세계에서 염두에 둘 만한 화젯거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나의 남편은 항상 친정식구들, 풀어서 꼽자면 엄마, 아빠, 동생 그리고 이모와 이모부까지 제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진수성찬을 대접합니다. 


일단 만나기로 하는 날짜가 잡히면 남편은 며칠 전서부터 직접 메뉴를 구상하고, 장을 보고, 하루 종일 부엌에서 요리를 해 낼 뿐만 아니라, 술을 좋아하는 식구들을 위해 음식과 어울리는 술까지 따로 (넉넉히) 준비해 둡니다. 


정말 말 그대로 숟가락을 드는 그 순간 화려한 미식세계가 펼쳐지는 남편의 솜씨 앞에서 가족들은 매번 감탄을 하며 즐거운 이야기를 꽃피곤 하죠. 어떤 때는 대화의 장이 너무 길어져 새벽을 꼴딱 새기도 합니다. 대부부의 경우 술을 즐겨하지 않는 저는 중간에 방으로 들어가 버리지만 그래도 즐겁습니다.


여기에서 끝이 아닙니다. 남편은 보다 완벽한 식사 '경험'을 위해 디저트까지 코스에 포함시키는데, 여느 식당 저리 가라 한 수준입니다. 어떤 날은 빵을 구워 내고, 또 어떤 날은 치즈 케이크를 뚝딱 만들어 내는 남편의 모습에, 그리고 그 맛에, 깊은 감탄과 사랑을 느끼는 것은 아내인 저 뿐만이 아닌, 가족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   



식탁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짧은 앞치마를 댕강 두른 남편의 모습이 눈길에 스치면 엉덩이를 꼬집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한창 집중을 하고 있는 남편의 입술은 중앙으로 모아지고 가끔 하얀 앞니가 비칩니다. 그럼 그 얼굴이 너무 웃기고 귀여워 엉덩이를 꼬집고 말죠. 귀찮다면서, 지금 바쁘다면서 절 부엌에서 내쫓는 남편. 훈훈합니다.


그렇게 하루종일 부엌데기를 하고 드디어 식사가 시작되면 막상 잘 들어가지 않는다며, '음식한 사람은 원래 잘 못 먹는다고' 두세 젓가락을 끝으로 술만 들이켜는 남편. 흡족할 만큼의 음식을 먹지 못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가끔은 엄마의 잔상이 흩어지기도 합니다. 


본격적인 남편만의 진수성찬은 설거지까지 깔끔히 마치고 샤워를 끝낸 후 비로소 시작되는데,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비워내며 그날 자신의 요리를 즐기는 식구들의 표정을 회상하고는 이내 뿌듯함을 느끼는 남편입니다. 



*



이따금씩 제 주변 친구들은 이런 남편을 둔 저를 참으로 부러워합니다. 


'우리 오빠는 싹싹한 스타일이 아니라...'

'오빠 진짜 자상하시다...'


이것도 복이라면 복이겠지요. 복 중에서도 큰 복이겠지요.  


어제도 마침 오랜만에 엄마가 우리 집에서 자고 간다고 하기에, 엄마가 좋아하는 젤루 좋아하는 파스타를 만들어는 오빠. 직접 면을 뽑고, 해산물을 버터에 이렇게 저렇게 요리해 지중해식 파스타를 선보인 오빠. '아마 엄마는 이름도 모를 거라'며 야심 차게 준비한 카프리제 샐러드와 요즘 핫한 아사히 캔 생맥주까지 컵에 따라내는 남편.


'이 맥주가 요즘 한창 핫한 건데, 가만히 손으로 쥐고 계시면 거품이 올라와요. 한 캔에 5000원 정도예요. 이게.' 


*


오늘 전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짧은 러닝을 했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도는 것이 목표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코스를 완주했지만, 그 질을 따져보자면 그리 흡족하지는 않다고 평해야 마땅하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산 중턱에 있는 아파트를 뛴다는 것이 사실상 쉬울 수가 없는 것이죠. 산길을 뛰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수 십 년 동안 러너로서 길 위를 달리고 있는 일본 소설가 하루키도 처음에는 20분 정도만 뛰었다고 합니다. 하루키는 ''더 뛸 수 있겠다'라고 느낄 때 중간에 멈추는 것'이 오래 뛸 수 있는 비결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별안간 제게 힘이 되어 무작정 러닝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유난히 하늘이 파랗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오늘 자 아침 날씨가 유난히 기분 좋기도 했구요.


저에게는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 지속하는 일이 몇 배는 더 힘든 일입니다. 이런 모습 또한 제 성격 중 어느 부분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겠지만, 앞으로 얼마 동안은 이 역할을 잠시 접어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고작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전 얼마나 큰 행운을 곁에 두고 사는지 새삼스런 실감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한 평생의 반려자가 나의 친가족을 멀리한다면 그것은 분명 지옥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의 일상들, 나의 친정식구를 '내' 친정식구라고 흔쾌하게 표현하는 남편의 감사한 마음이 이어지는 나날을 살고 있는 지금, 이것은 분명 천국일 것입니다. 


아마도 오늘 저녁은 고기반찬을 내어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씨를 뿌려야 한다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오빠에 대한 나의 사랑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오늘 자 제 사랑은 고기반찬으로 표현하겠다,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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