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집사가 되면서 식물이 가엾어졌습니다

Ep.10

by 니디


작년, 야심 차게 준비한 우리의 첫 식당을 기념하기 위해 엄마가 큰 나무 화분을 두 개 선물해주었다. 식물에 대해서는 아무런 흥미가 없어 아직도 하루의 절반을 나와 함께 하는 녀석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지만, 애정만큼은 꽤나 깊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녀석 중 하나, 큰 나무 기둥에 야자수와 비슷한 이파리를 달고 있는 녀석이 노랗게 변하면서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엄마는 죽어가고 있는 거라고 했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울 엄마는 식물들을 무척 좋아했다. 좁은 우리 집 거실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화분이 가득했고 이따금씩 아빠는 좁아터진 거실에 무슨 화분이 이렇게나 많냐며 짜증을 있는 대로 내곤 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아랑곳 않고 녀석들의 이파리 하나하나 줄기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먼지를 닦아주고 물을 주고 흙도 갈아주며 애지중지 식물 가족들을 살폈다. 몇십 개가 되는 화분을 일일이 화장실로 옮겨서 물을 충분히 주는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목말랐지, 충분히 물 마시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그렇게 키운 식물들 중 어떤 것은 25년이 다 되어가는 것도 있다. 물론 얼마 전 아빠가 그 선인장들을 한겨울에 베란다로 내놓으면서 25년 역사가 끊겨 버렸지만. 선인장은 얼어 죽고 말았다. 지금 엄마는 그 선인장을 살리려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다. 엄마는 딱 한마디만 했다. "선인장이야 선인장. 사막 사는.. 안 죽는다고 우기길래.. 내가 입씨름하기 싫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지."


말하기는 싫지만 엄마는 요즘 아프다.


초록색 이파리를 만지고 흙을 고르는 우리 엄마 표정에 미소가 피어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엄마의 웃음만큼 흐르는 눈물을 보며 엄마 곁을 지키던 나는 이다음에 성공하면 울 엄마 화원 차려줘야지 했었다. 나는 울 엄마를 위한 작은 그 소망을 마음속에 품은 채 엄마의 분신과도 같은 그 화분들과 함께 쑥쑥 자라났다. 하지만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던 그 화분과 식물은 나에게는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되려 나는 동물을 사랑했다. 한동안 나의 장래희망은 사육사였다.


시간이 흘러 나는 결혼을 하고 엄마 품을 떠나게 되었다. 내가 차려주려 했던 화원은 어쩌다 보니 엄마가 나에게 가게를 차려주는 꼴이 되었고 그 덕에 나는 여기 제주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여러 가지 삶의 변화가 일었다고 해서 내 안에 있는 화원에 대한 소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울 엄마는 아직 젊으니까 화분을 운영할 시간은 충분하다.


나에게 곧 화분은 엄마와도 같기에 나는 이 죽어가는 나무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여전히 식물에게 큰 관심은 없었지만 울 엄마가 선물한 거라 죽어가게 둘 수는 없던 것이다. 사실 엄마가 사준 게 아니었더라도 그냥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난생처음으로 내 손으로 식물을 거두면서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 또한 소중한 생명이라는 사실이다. 이어 나는 녀석들이 너무 가엾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동시에 인간이 잔인하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알 수 있었다.


식물들이 가엾은 이유는 식물들은 화분만큼의 넓이와 깊이 그 이상의 세상은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뿌리를 더 깊게 더 넓게 내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나에게는 중국의 '전족'을 연상시킨다. 전족은 여성의 발을 묶어 발이 성장하는 것을 막아 여자가 도망갈 수 없게 만드는 중국의 옛 문화다. 자기에게 맞지 않는 화분에서 방치된 식물들은 뿌리가 썩어 결국 죽게 된다. 얼마나 갑갑할까.


그리고 인간이 잔인한 이유? 멀쩡한 발을 인위적으로 묶어 도망 못 가게 한 인간이 잔인하다는 사실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하긴 이런 논리를 모든 생명에게 대입하면 내가 키우는 강아지와 고양이 또한 같은 이치고, 열대어 따위의 관상어 또한 같을 것이고, 가축 또한, 파충류, 곤충 또한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인간이 잔인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모순적이라는 사실 그뿐이다.


그들의 삶에 인간의 개입이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이미 인간을 위한 희생이 그들의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이상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와 버린 이 동물들을, 물고기들을, 식물들을 잘 보살펴줘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죽어가는 나무를 보며 공상하는 일 따위를 그만두고 즉시 화원으로 달려갔다. 돈 4만 원을 지불하고 분갈이용 흙과 작은 돌멩이들, 화분 4개, 그에 맞는 화분 받침대, 영양제 등을 사서 가게로 돌아와 '나무 살리기'를 위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엄마의 조언대로 이미 노랗게 말라버린 가지들을 과감히 잘라냈다. 그마저도 쉽지 않았는데, 때문에 자르는 내내 내 마음이 너무 아파왔다. 그래서 나지막이 읊조리며 녀석들을 나무기둥에서 천천히 잘라냈다. "미안해. 아프지.. 좀만 참아.." 나는 그중에서 아직 푸른빛을 잃지 않은 녀석들만 골라내 깨끗한 물에 잠시 담가 두었다.


큰 나무 기둥은 몸통에 매달린 그 외의 가지들을 다 잘라내고 화분에 가득 차 있던 흙을 반쯤 덜어냈다. 새로운 흙을 섞어주기 위함이었다. 녀석의 단단한 뿌리가 드러났다. 원래는 나무를 화분에서 완전히 분리해 화분 가득 새 흙을 넣어주고 싶었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화분과 녀석은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아직 뿌리는 촉촉했고 살 수 있는 희망을 다분히 보였기에 나는 식물영양제와 토양 영양제를 하나씩 부어주고 흙을 채워 뿌리를 단단히 고정시켜주었다. 그리고 그 위에 흙이 넘치는 것을 막기위해 작은 돌멩이를 적당한 두께로 깔아줬다. 녀석은 원래 키가 2미터쯤 되던 나무였는데 이제 짧둥한 기둥만 남아있다. 기다려 내가 꼭 살려줄게.


그다음은 잘라낸 3개의 줄기들. 잘라놓고 보니 아직 싱싱하다. 녀석들의 새 집이 되어 줄 검은 고무 화분 제일 밑에는 흙이 빠지지 않도록 망사를 두 겹 정도 깔았다. 그리고 화원 사장님이 챙겨주신 스티로폼을 조각 내 한 층 깔아준 다음 흙을 화분에 채우기 시작했다. 빼곡한 이파리를 몇 가닥 걷어내 깨끗한 속살이 드러난 줄기를 흙 속에 심고 나서 마찬가지로 자잘한 자갈들을 그 위에 깔았다. 물을 담뿍 주고 영양제도 챙겼다. 어린이 손님이 화분을 깨트려 별안간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말라가던 스투키도 마찬가지로 새 화분에 심어주었다. 다만 스투키는 선인장이라 자갈과 흙을 반쯤 섞어 심어주었고 작업이 다 끝난 후에 물을 따로 주지 않았다.


이마에 묻은 흙의 감촉이 낯설다. 그냥 산책길에 만나는 흙이 아니고 이 분갈이용 흙은 좀 더 그 색이 어둡고 무게가 가벼웠다. 이것저것 섞여있다고 설명에는 적혀있었는데 도무지 무엇이 섞인 건지 글자를 보고도 알 수 없다. 실로 오랜만에 흙을 만지고 있자니 어렸을 때 매일 놀던 놀이터가 떠올랐고, 잠시 잠깐 그 시절의 나의 소중한 시간을 생각하게 됐다. 그래, 나도 흙을 손에 쥐고, 남몰래 그 흙이 묻은 손을 혀에 대보기도 하고, 뉘엿뉘엿 지는 해를 등 뒤로 젖혀두며 친구와 흙장난 하기에 여념 없던 때가 있었지. 그때 우리 집 유난히도 포근했는데.


가끔 그 시절을 엄마와 이야기해보면 그때 엄마는 죽는 것만이 소원이었던 시절이라고 말한다. 엄마가 죽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니 성급히 기억을 접어 엄마가 찾을 수 없는 내면의 구석에 처박는다. 다들 알 것이다. 엄마들은 유난히 모든 나의 것들을 잘 찾는다는 것을. 물건이건 기억이건 뭐건 다.




만약 오늘 심은 이 줄기들이 감사하게도 화분에 뿌리를 내려 잘만 살아준다면 난 아마 식집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식집사가 될 자질은 충분하다. 나는 뭐든 잘 키워낼 자신이 있고 얼마든지 사랑을 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살아 만 주라 식물들아. 기꺼이 너희의 집사가 되어줄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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