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소울메이트'와 제주살이를 지내고 있습니다
Ep.9
가게 일을 마치고 바다를 보러 해안가로 갔다. 일몰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바닷가에 가보면 바다의 색과 하늘의 색이 거의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때의 색을 분명하게 형용할 수는 없지만 하늘은 너무 어둡지 않고 바다는 너무 검지 않다. 하늘과 바다 모두 전체적으로 푸르스름한 색을 띠지만 어떻게 보면 보라색 같기도 하다.
파도의 색깔은 낮이나 밤이나 언제나 같다. 흰색. 맑은 흰색이다. 특히 바람이 많이 부는 달밤이면 파도는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 바다 위에 떠다닌다. 이때 바라본 파도는 바다와 하늘의 색에 대비되어 더욱 하얗게 반짝인다.
파도 소리를 좀 더 가까이 들으려 근처 벤치에 앉아 있다가 물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까만 제주 돌은 환한 달빛에도 여전히 새까맣다. 때문에 어떤 돌이 평평한지, 모난 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반듯한 돌에 앉아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고 싶은 욕구가 갑자기 강해진다. 그때 어디선가 새하얀 나비가 날아와 까만 돌 위에 앉았다. 그 작은 나비는 파도와 같은 맑은 흰색을 한 날개를 활짝 펼치며 제자리에서 날갯짓을 해 보였다.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던 나비는 잠시 동안 돌 위에 머물러 있었고, 덕분에 난 걸음을 떼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차분해진 바다의 냄새는 습습한 대기를 타고 내 코끝을 자극했다. 나비는 아직 날아가지 않고 있다.
오늘은 낮에 비가 왔다. 때문에 밤이 되어가는 지금도 대기 중에는 구름들이 흐릿하게 떠다니고 있다. 낮과 밤은 연결되어 있다. 낮은 밤의 세상을 미리 우리에게 알려준다. 만약 낮에 온도가 높고 대기의 느낌이 따뜻하다면 그것은 저녁에 비가 온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만약 낮의 풍경이 유난히도 뚜렷했다면 밤의 풍경 또한 뚜렷하다는 말이다. 또한 어스름한 이른 저녁에 주황색 하늘을 보았다면 당연히 밤에도 하늘은 여전히 주황색이라는 소리다. 물론 밤의 경우가 조금 더 검어지긴 한다.
적당한 돌을 찾아 자리를 잡은 나는 바다의 짠내를 맡으며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을 바라봤다. 언제부터 이 꽃들은 길가 귀퉁이에서 만개해 오가는 사람들을 환대하고 있었을까. 아직 내 마음에는 꽃을 피울 만큼의 봄이 오지 않았는데, 이 부지런한 생명들은 벌써부터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봄이면 꽃을 피워야 한다는 의무 말이다. 벚꽃과 마찬가지로 유채꽃도 밤에 보아야 더욱 그 색이 선명하고 아름답다. 줄기의 푸른색은 어두운 밤하늘과 대비돼 거의 형광 빛을 띠는 지경이 되는데 사실 노란 이파리들은 벌써 달빛에 발광을 하며 자기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어느새 나비는 날아가고 없다. 나비의 빈자리를 보며 사랑받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조건 없는 사랑을 받고 싶었다. 한 없이 주는 사랑. 나는 그것을 부모님 이외의 사람에게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엄마 아빠만 줄 수 있고, 배우자 혹은 애인과의 사랑에서 부모님의 사랑과 같은 꼭 같은 사랑은 받을 수 없다. 왜냐면 내 배우자 혹은 애인은 엄마 아빠가 아니니까. 이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변하지 않는 사실이고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다. 완전히 늙었을 때의 사랑은 아직은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에 입각한 사랑 만을 열거할 뿐이다.
그래도 나의 삶을 더 행복하게, 덜 외롭게 해 줄 수 있는 사랑 분명히 존재한다. 부모님의 사랑을 제외하고. 한참 크고 나서야 알았지만 나는 약간의 애정결핍이 있었고, 그 때문에 항상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며 살아왔다. 나는 항상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때는 그게 애정결핍 때문인지는 몰랐다. 호르몬의 변화가 찾아올 때면 나의 기분은 항상 오락가락했고 이 점 때문에 그냥 나는 감정 기복이 있고 솔직하고 뭐 그런 사람인가 보다만 생각했었다.
근데 어찌 됐든 좀 살다가 보니까 그것은 어렸을 때 어떤 경험에서 나온, 어떤 경험인지는 진짜 모르겠지만 무언가 결핍이 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임을 알아차리게 됐다. 친구의 눈치를 보고 애인의 눈치를 보고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던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을 때는 물론 초반에는 눈치를 봤지만(그리고 지금도 어쩔 때는 눈치를 본다. 근데 이건 그냥 부부가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보는 눈치다. 상대방의 행동을 충분하게 예측할 수 있으니까)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온전한 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됐고 지금도 하고 있다.
난 오빠를 만나고 외롭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 특별한 변화는 우리 엄마 또한 알 만큼 그 형태와 세기가 진했다. 내가 오빠를 만나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바로 오빠 또한 애정을 갈구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방향으로 향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연애에 있어 연락을 먼저 하는 쪽이었고, 애인이 생기면 일주일에 절반 이상의 날들을 애인과 보내야만 했으며, 애인이 친구보다 우선인, 언제나 사랑이 최고인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만난 첫날부터 지금까지 서로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전 우주가 완전하게 인정 해버린 사실이다. 그 증거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어제 일을 마치고 나는 공원으로, 오빠는 마트로 향했다. 그런데 대략 1시간 뒤, 우리는 도로 한복판에서 앞 뒤 차량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좌회전 신호를 넣고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뒤에서 오빠 차가 떡 하니 서있었다. 나 참. 떨어질래도 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며칠 전에 싸웠을 때는 진짜 답답하고 미웠는데 이런 우연이 겹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또 막상 떨어져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허전해 죽겠고, 또 그래서 힐끔힐끔 쳐다보면 난데없이 잘생겨 보이고.. 현재는 싸움의 효과인지는 몰라도 내 눈에서 오랜만에 꿀이 떨어지는 중이다. 결국 난 '우리는 서로 싸우고 난리를 칠 망정 절대로 떨어질 수 없겠다'고 인정했고, 난 이 사실을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 자 나의 공상 끝에 오빠가 서 있을 줄은 몰랐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저녁밥을 함께 해야겠다. 계란 프라이를 하나 먹어도 꼭 내가 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오빠는 지금 나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이것봐. 우주의 확신이 이렇게 또 나타났다. 휴대폰 진동이 바쁘게 울린다. 참고로 오빠는 올해 수년 차 경력의 셰프다.
'옳지, 어디야? 나 배고픈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