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나'는 어디로 갔는가

Ep11.

by 니디

내 남편 직업은 요리사다. 약 10년 간 호주에서 요리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오랜만에 돌아온.


내 직업은 가장 최근에는 동물병원 간호사였고, 그 전에는 행사 기획자, 또 그 전에는 기자였다. 따지고 보면 기자라는 타이틀을 가장 오래 가지고 있었는데, 여행신문, 골프 및 요트 잡지, 정치 사회부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며 나의 20대를 보냈다. 행사 기획자는 대학생 때 학원비를 벌려고 시작한 박람회 일에서 시작된 연장선이었고, 마지막 동물병원 간호사는 호주에서 동물 공부를 마치고 직접적인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쌓기 위해 일했던 것이다. 요즘은 오히려 N 잡을 안 하면 뒤떨어지는 시대가 되었지만, 내가 20대였을 때는 한 가지 일을 잘 골라 평생 먹고산다는 개념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풍토 속의 나는 어쩔 수 없이 끈기 없는 사람, 적응 못하는 사람,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렇듯 한 가지 길을 선택해 꾸준히 차곡차곡 시간과 경력을 쌓던 오빠와는 달리 나는 이것저것 흥미를 느끼는 것들을 헤집어 놓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변함은 없다. 되려 아직 까지 해보지 못해 한스러운 것들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나는 싱가포르에서 호텔리어로 지내보고 싶다. 아니면 호주에서 공부한 것을 발판 삼아 사육사가 되어보는 것도 환상적인 일일 것이다. 싱가포르의 동물원은 전 세계적으로 알아준다. 미국 디즈니랜드의 크루로 일하며 영어로 인사를 나누고 반가움의 포옹을 일상적으로 나누고 싶다.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의 사육사는 여전히 변치 않는 나의 오랜 장래 희망이다.


또 어떤 때는 포토샵, 일러스트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35살이 되면 내 이름을 내 건 책을 출판하리라 하는 목표도 있었다. 아니, 그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아직 33살이다. CD 수집이 취미이자 내 나이가 두 자리 수가 되기 훨씬 전부터 음악을 끼고 살았던 난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배경 음악의 아티스트 타이틀 등 관련 정보를 척척 맞히곤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음악 감독이 되고 싶다.


이것저것 작심삼일, 한 가지를 진득하게 파지 못하고 기웃기웃, 한심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꿈 많던 나의 20대 나날들이다. 하지만 좀 좋게 보자면 나는 그만큼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무슨 일이든지 잘해 낼 자신까지도 있던 것이다. 배우는 것도 좋고(하지만 이 부분은 항상 심도 있는 배움까지 가지 못한다), 새로운 것도 좋고, 뭐 다 좋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 문득 갑자기 머리를 띵하고 때리는 생각이 나를 마구잡이로 헤집어 놓았다.

"너, 설마 지금 남편 따라 사는 여자가 돼버린 거니?"




나의 가치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결혼을 해도 나를 잃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사람들이 결혼 전에는 완전한 객체, 개인이었던 '자신'이 결혼만 했다 하면 그런 열정과 열망들을 언제 가졌나 싶은 그런 상태, 너무나도 평범해 오히려 평범하지 않은 그런 '삶의 미아'가 되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결혼도 내 선택, 아이도 내 선택, 결혼 후 자아 발전 또한 내 선택 아닌가.


그렇게 높은 자존감과 확실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었는데.. 막상 결혼을 하고 현실을 살고 남편과 부딪히고 화해하고 어른들을 신경 쓰고 뭐 그런 것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 맘 속에 분명했던 내 모습은 어느새 뿌옇게 변해 있었다. 더 무서운 건 정작 나는 내가 그렇게 흐릿하게 사라질 동안 아무런 거리낌조차 못 느꼈다는 것이다. 어제 돋았던 내 팔다리 위 소름이 아직 진정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각자 레스토랑에서, 수의 테크니션으로 일 하며 제주살이를 시작했다. 첫 오피스텔의 월세가 60만 원이었는데, 각종 세금 다하면 80만 원이 가까이 되는 돈이 매달 집세로만 지출됐다. 여기에 경조사, 비상금, 생활비, 용돈 등을 빼면 저금, 투자? 저 세상 이야기였다. 매달 현실을 마주하던 오빠와 난 깊고 깊은 회의감에 빠져들게 되었고, 결국 우리 부부는 서귀포에 작은 식당을 차리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요즘 세상에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말이나 되냐며 젊은 사람을 너무 애쓰며 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시는 울 엄마 아빠.


우울한 나의 속마음은 다음과 같다.


"아니, 보자. 오빠는 요리사이고 그래서 이 식당이 흥하든 망하든 어쨌든 오빠의 경력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뭐 스펙으로 치자면 가치 있는 한 줄이 되겠지. 그럼 나는? 난 요리를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요리 관련된 경력을 쌓거나 원했던 사람도 아닌데 만약 오빠가 갑자기 없어지면 난 뭐가 되는 거지? 이 식당이 무슨 일 때문에 문을 닫게 되면 나는? 나이만 먹고 남는 게 뭐냐고. 무엇보다 세상에 덩그러니 오빠 없이 나만 남겨지면..."


나는 곧바로 오빠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억울해 죽겠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오빠는 예상과는 달리 대수롭지 않게 내 말을 받아냈다. 자존심 세고 자존감 강한 네가 계속 나를 맞춰서 이 일을 하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각자 따로 일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진작에 다 생각은 했었다고.




결혼을 하고 나서 오롯이 나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은 무얼까? 내 비좁은 세상에서는 '직업'을 갖는 것이 나를 지키는 것이라는 답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결혼 이후에도 나 자신이고 싶지 '누구의 아내'는 되고 싶지 않다. 내 이름 대신 호칭으로 불리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나는 내 이름 석자가 너무나도 소중하다. 또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그 누구의 눈치도 보고 싶지 않다. 배려와 눈치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가족이 함께 지내는 테두리 안에서는 자유롭게 각자의 자아를 내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바람이다.


톨스토이가 말했지. 결혼은 하나가 되는 거라고. 그래서 따로따로 각자를 생각할 수도 떨어뜨릴 수도 없다고. 조심스레 그 진리에 반기를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