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텅 빈 머리로 인스타그램을 뒤적이다가 이런 포스트를 봤다.
한국에서 '도저히 같이 살 수 없어서'이혼을 희망하는 부부를 살펴보면 40대가 가장 많으며, 이혼 사유로는 성격 차이가 가장 상위에 랭크된다. 하지만 사실 성격 차이를 느끼지 않는 부부는 없다, 그런데 왜 어떤 부부는 이 성격 차이를 극복하고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고 또 어떤 부부는 결국 이혼을 하기에 이르는 것 인가?
왜 일까? 성격이 미치게 잘 맞는 부부가 얼마나 된다고? 나도 내 남편과 성격이 찰떡궁합은 아니다. 안 맞는 부분이 상당하고 또 그런 차이를 뿌리 삼아 자라는 여러 부정적인 감정은 아직 꺾이지 않았다.
나는 사소한 것에 꼼꼼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오빠는 매사에 모두 꼼꼼하다.
나는 현재 지향적이라 걱정이 많은 스타일은 아니지만 오빠는 미래지향적이라 걱정이 많다.
나는 계획되지 않는 일이 생기면 먼저 콧방귀를 끼지만 오빠는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나열한다.
나는 하나의 현상을 대할 때 그 현상 만을 쳐다보지만 오빠는 그 현상의 360도로 모자라 위아래 그 속까지 들여다보려고 노력을 한다.
나는 나 편한 대로 행동을 하지만 오빠는 자신의 편함보다는 앞으로의 변수가 없을 행동을 최대한 생각한다.
오빠와 나의 이런저런 차이들 때문에 우리는 정말 많이 싸웠다. 요즘은 거의 오빠가 내 쪽에 맞추는 쪽이지만(사실 그렇지 만도 않다. 내 쪽에서도 정말 많이 오빠를 배려한다. 이 글은 여자인 내가 쓰고 있다) 그래도 이 차이의 간극을 결코 좁힐 수 없다. 그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서로가 가지고 있는 차이와 이해할 수 없는 공간 들이 메워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요 며칠 간 나를 지배했던 생각, '나는 지금 혼자 있고 싶은 건가?'라는 물음에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한 것도 다 이런 차이들이 갑작스럽게 버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몸의 면역력이 낮아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나의 정신적인 포용력 또한 잠시 몸살을 앓는 그런 느낌. 난 요즘 이런 음지의 감정들이 내 안에 결국 가득 차 버려 내가 터지지는 않을지 약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걱정도 잠시, 나는 나를 마구 나무라기 시작한다. 또 어디서 남의 탓을 하려고 하는 거지? 결국 너의 문제는 다 너로부터 오는 거라는 거 몰라?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이럴 때를 대비한 것이다. 수많은 책에서 나보다 잘나고 똑똑하고 성공하고 인품이 뛰어난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의 문제는 모두 당신으로부터. 고로 답은 모두 당신 안에 있는 것'이라고. 또 만만한 오빠를 건들 뻔한 내가 무식하게 느껴진다.
여하튼 그래서 이혼을 죽도록 원하는, 이혼을 못하면 삶이 끝날 것 같은 고통을 앓고 있는 40대 부부들은 그들의 꼽은 이혼사유인 '성격 차이'에서 도대체 어떤 부분이 그렇게 못 견디게 힘들다고 느꼈을까?
그것은 바로 '대화 방식의 문제'였다.
비난,
방어,
경멸,
담 쌓기.
이제야 왜 40대 부부 이혼 비율이 높은지 짐작이 간다. 쌓아둘 만큼 쌓아둔 것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관계를 망치는 대화법(이를테면 위와 같은)을 사용하는 부부의 약 94%가 이혼하게 된다는 미국 워싱턴 의과대학의 실험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1972년부터 36년 동안 3천 쌍 이상의 부부를 조사했다고 한다.
정상적인 대화법을 부부가 갖추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소비된다. 함께한 세월이 쌓일수록 원하는 방향으로 고치기가 더욱더 어려워진다고 보면된다. 반면 연애 초반부터, 사랑을 싹 틔우기 시작할 때부터라면 훨씬 더 쉬울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은 다 습관의 문제라는 것이다.
나와 오빠는 연애 때부터 동거를 해서,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귄 지 1일 때부터 동거를 해서 정말 엄청나게 많이 싸우며 시간을 보냈다. 사귄 지 1일째부터 같이 사는일, 얼마나 바보 같은가.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은 하지 않을 거다. 서로의 음지를 너무 일찍, 너무 자주, 너무 많이 보며 살았던 그 시간들은 우리에게 끈끈한 결속력을 주었고 환상을 빼앗아 갔다.
이때 서로 주고 받은 막말들과 상처들 그런 것들은 아직 나와 오빠의 마음속에서 떡하니 버티며 잘 살고 있다. 이런 생채기들은 평소에는 꽁꽁 숨어있다가 우리가 의견 차이로 약간이라도 다툴 때 그 틈을 타고 나와 뚫린 입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럴 때 흔히 듣는 말. "또 그 얘기야? 좀 안 할 수 없어?". '또 그 얘기'라는 스토리 라인에 숨겨둔 상처들이 결국 터져버리는 것이 바로 이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물론 말이 정말 너무나 중요한 것을 알지만, 서로에게 내뱉는 이미 그 형태가 굳어진 그런 어떠한 단어들, 서술어, 목소리의 톤, 표현 방법 등을 고치기란 정말 너무 힘들다. 말은 그냥 튀어나와 버리면 그만 이니까. 그래도 40대에 이혼하지 않으려면 노력해야지. 엄마 아빠를 실망시킬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