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가 미치도록 그리운 날

Ep.14

by 니디

온 제주를 집어삼켰던 강풍이 잦아들고, 숨어있던 해는 일찍이 구름 뒤에서 완전히 나와 세상에 빛을 내뿜으며 바다를 깨운다. 힘을 받은 바다는 마음껏 파도를 살랑이고 한껏 반짝거리며 기지개를 켠다.


가만히 여울지는 수평선을 가만히 보다가, 문득 12년 전 홀로 왔던 제주 여행이 떠올랐다. 그때도 제주 바다는 오늘처럼 한없이 반짝거렸다. 엄마에게 보낸 문자가 생생히 기억난다.


'바다가 그 어떤 보석보다 반짝거려. 이렇게 아름다운 보석은 세상에 없을 거야'


난 지금 홀로 제주를 거닐던 21살의 나를 마주하고 있다.





빌딩 숲을 매일 아침 그리고 매일 저녁 구석구석 헤집고 다녔던 나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선택은 오늘은 누구와 뭘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 지을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었다. 때문에 나는 출근길에서부터 저녁 약속을 잡는 문자를 여러 명에게 이리저리 뿌려 놓고 답장을 기다리곤 했다. 그렇게 지옥철을 타고 도착한 회사. 얕은 숨 한 번 들이켜고 사무실 문을 연다. 부장과 팀장에게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것이 나의 첫 임무다. 그다음 두 번째 임무는 바로 커피 서빙. 노란 커피 봉지를 반듯하게 뜯어 종이컵에 붓고 팔팔 끓는 물을 반쯤 따른다. 그리고 상사의 데스트까지 배달. 임무 끝. 벌써 출근하자마자 두 가지 일을 해냈다. 편안한 마음으로 향하는 나의 책상.


양 옆으로 서류가 쌓여있고 컴퓨터 모니터에는 덕지덕지 메모가 빼곡한 스티커 메모지가 붙어있는, 그 와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머그컵은 항상 내 왼손 45도 대각선에 놓아져 있으며, 필기감이 예술인 색색의 펜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평평하고 네모난 나의 책상. 큰 사무실에 작지만 내 공간이 있다 사실은 나를 오늘도 회사로 나오게 하는 큰 위로 중 하나가 되어주곤 했다.


거래처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한 손에 붙들고 서둘러 점심 약속을 잡던 나의 일상. 왠지 이때는 점심 약속이 비어 있으면 자존심이 상했다. 이는 매번 팀장이 나에게 강조하던 사실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기자가 점심 약속이 비어있으면, 그건 좋은 기자가 아니라는 의미'라는 것이었다.


자기 전 패션쇼는 매일 반복되는,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아무리 피곤해도 빼놓지 않고 하는 루틴이 되었고, 예쁜 핑크색 카디건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그런 날에는 나의 선택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곤 했다. 이런 날에는 꼭 취재원이라던지 동기라던지 하는 타인이 나의 패션 센스를 한 껏 치켜세우곤 했으니 나로서는 내 감각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휴대폰 벨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보통 진동 모드로 해놓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때만 하더라도 벨소리 또한 그 사람의 감각적 취향을 여실히 드러내는 도구 중 하나였다. 나의 선택은 그때도 지금도 스티비 원더. 울리는 스티비의 곡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웠다.


작은 언론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신입 치고 나쁘지 않은 월급을 받았었다. 때문에 부지런히 욕심부리지 않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가면 나중에 30대가 되어서는 나의 최종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목표는 바로 '아무 거리낌 혹은 심적 부담감 없이 이태원에 있는 바에서 와인이나 양주를 시킬 수 있는, 나 하나를 가꾸고 즐겁게 하는 게 아무 무리가 없는 '커리어우먼''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바리코트 날리며 일대를 종횡무진하던 나의 마음속엔 이렇듯 원대한 꿈이 있었던 것이다. 30살의 생일파티를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치를 거라는 착각과 환상에 흠뻑 젖어있던, 조금은 들떠 있던 나의 사회 초년 시절.




주말이면 밀린 잠을 자며 바삐 살던 그때에도 난 언제라도 피어오를 수 있는 로맨스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 이리저리 치인 하루 끝에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와의 로맨스. 전화벨이 울리면 단숨에 떠오르는 그 누군가. 꼭 끊어지기 직전에 전화를 받아 '네, 끊어요'의 '요'자를 다 말할 때까지 설레는 정신줄을 단단히 잡으려 애쓰던 내 모습. 택시요금이 비싸서 택시는 잘 타지 않았지만, 가끔 택시에 몸을 실을 때면 항상 택시 번호판을 외워주던 그 사람. 지난밤에 있던 싸움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나를 괴롭혀, 화장하는 내내 멈추지 않는 눈물 때문에 눈 화장을 번번이 실패로 만든 나의 로맨스.


지금은 '가족'이 내 우선순위 최상위에 있지만 그때의 나는 '연애와 일'이 최우선이었다. 현명한 나의 부모님은 나이에 따라 우선순위가 바뀐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터라 나에게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끔은 서운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엄마가 평생 너 옆에 있는 게 아닌데.. 네가 좀 알아줬으면 해서"


그 말을 들은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나는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부엌에서 조심스레 건넨 엄마의 진심은 나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그래서 난 그날도 있는 힘껏 화장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놀러 나가면 엄마는 꼭 '언제 오냐?'하고 문자를 하기도, 전화를 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느라, 밥을 먹느라 엄마의 연락을 받지 못한 적이 수두룩하다. 엄마에게 진짜 미안하다. 과거를 추억하며 후회한 건 별로 없는데 이건 후회가 된다. 몹쓸 딸내미.




며칠 전, 한때 나의 인생 드라마였던 '달콤한 나의 도시'를 우연히 보게 됐다. 어찌나 반갑고 설레던지. 이때다 싶어 1회부터 정주행 중이다. 나의 20대와 꽤 비슷한 구석이 있는 이 드라마를 난 찬찬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보며 그 시간에 대한 예의를 차려본다. 아름답고 선명히 남아있는 나의 20대. 퍽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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