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
얼굴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있고 뻣뻣하다. 얼굴이 유연하지 않으니 덩달아 마음마저도 푸석하다. 날씨를 탓할 수도 없게 오늘은 오랜만에 하늘이 화창하다. 그동안 강풍 영향 때문에 거칠고 높기만 했던 바다의 파도도 잔잔히 반짝거리기만 하고, 거리의 나무들도, 길거리의 잔풀들도 생글생글 그 초록빛을 잘도 뽐내기만 한다. 아마 요 며칠 간 비를 만나 생기를 얻었나보다. 아침 바람이 아직까지 겨울의 시간을 느끼게 하지만 또 해가 세상의 중심에 뜨는 오후가 되면 봄의 기세가 겨울의 미련의 미련을 뚫고 있는대로 세어진다.
출근하는 차 안에서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는다. 내가 도대체 오늘 왜 이따위의 기분 상태인지 잠시 생각해보지만 나에게 느껴지는건 그저 차 안의 정적 뿐이다. 좋아하는 블루스를 크게 틀고 먼 수평선을 보며 지난 밤 명상에서 그러했듯이 나의 고민과 걱정을 온 바다에 다 털어놓으려 해도 역시 실패한다. 배꼽 잡고 한 껏 웃어본게 언제인지, 아무 생각 없이 사람을 마주하고 세상을 바라보던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 노력 해도 나의 오늘은 어제와 역시나 다를 것이 없다. 아이슈타인이 그랬지.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바라는 건 정신병 초기 증상이라고. 난 정신병이 걸린 것일까.
남편 탓, 일 탓, 걔 탓, 쟤 탓, 이것 탓, 저것 탓, 이제 탓하기도 지겹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그 요인을 외부에서 찾으면 답이 너무 많아서 거의 불가능하지만 내부 요인을 찾는다면 그 해답은 내 자신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손님이 한, 두팀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는 인사를 하고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한 다음, 손님이 나가면 또 다시 인사를 하고 테이블을 정리한다. 몸은 그렇게 움직이지만 내 정신은 복잡하게 꼬인 나의 내면의 문제를 찾기 위해 그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만에 하나 나의 우울함을 손님이 눈치 챌 수도 있으니 목소리는 한 톤 높게 올려 우울함을 감춰본다. 그런데 얼굴은 당최 풀릴 생각을 않는다. 그렇게 딱딱하기만 한 내 얼굴.
갑자기 이런 말장난이 떠오른다. '우울할면 울면'
아, 우울할 때 울면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정말 얼마나 쉽고 간단하고 좋을까. 배달 시켜 먹어볼까. 배달앱을 켜본다. 하지만 울면을 파는 중국집이 근처에 없다. 울면을 먹고 우울한게 나아진다면 나는 울면 요리사가 되어 사람들의 기분을 어루만져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잠이 깨지 않아서 이러나.' 커피를 내려 얼음에 차갑게 달군 다음 마셔본다. 오늘 따라 커피도 맛이 없다.
이렇듯 말도 안되는 공상을 하면서 가만히 오빠를 지켜본다. 좁은 주방에서 요리조리 바쁘게 몸을 움직이며 점심 장사를 준비하고 있는 오빠는 방금 채소 써는 작업을 막 마쳤다. 남편은 감정이 불안한 어떤 순간에도 매번 그러한 것처럼 정확히 순서를 지켜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한다. 나는 때에 따라 혹은 내 편의에 따라 규칙이든 행동이든 이것저것을 바꾸기도 하고 지나치기도 하며 내 멋대로 살곤 하는데 남편은 그러는 법이 없다.
나와는 확연히 다른 그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얼굴에 미소를 띄우니 마음이 조금 뜨거워 지는 것 같다.아, 이제부턴 울면 대신 오빠를 보면 되겠구나.
몇 번의 피식거림이 뒤에 드는 의문. 왜 나는 이렇게 주기적으로 우울함을 겪어야만 하는 건가. 평온하게 묵묵히, 강인하게 그러니까 한낱 가벼운 감정이, 약간의 중력의 힘도 받지 못할 만큼 하찮은 감정이 내 마음까지 침범하지 않는 그런 강한 태도로 하루를 살고 싶은데, 그래야 내일 죽어도 후회가 없을텐데. 내 자신이 한심하고 밉다. 나도 어떤 사명 혹은 이유가 있어서 세상에 태어난 것일텐데 그것이 무엇일까 아무리 고민하고 해봐도 지금껏 알아내지 못했다. 눈을 아주 감는 찰나의 순간에 나에게 답이 올런지.
배는 고픈데 입에 음식을 넣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후 영업을 마치자마자 노트북을 테이블에 펴놓고 브런치를 켰다. 뭐라도 써봐야지, 내 상태를 글자로 나열하면 좀 나아지겠지 하며. 그래서 지금은? 그냥 웃고만 있다. 나란 존재는 얼마나 미물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