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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Sep 19. 2024

일곱 개의 무지개가 뜨는 곳

수원화성 화홍문

 *이 글은 지난 4월에 썼던 여행에세이를 다시 퇴고한 글입니다. 계절이나 방화수류정 보수가 현재와 맞지 않음을 의아해하실까 미리 말씀드립니다.


성곽 안에 봄이 먼저 와 있었다. 햇볕을 독차지한 산수유와 매화 몇 송이는 일찍 꽃을 피웠다. 봄의 기운을 만끽하며 수원화성 성곽길을 걸었다. 조선시대 제2의 한양이라 불렀던 수원. 그 중심에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축조한 수원화성이 있다. 우리나라 성곽 건축 사상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로, 우아하면서도 웅장한 곳이다.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효심과 애민정신이 지극했던 정조대왕의 숨결을 느끼며 성곽길을 걸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장대에 올랐다. 수원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정조대왕이 친필로 쓴 화서장대 현판 아래 정자에 두 팔을 뒤로 젖히고 편안히 걸터앉은 사람들이 보인다. 자연석으로 받친 기단이며 시민에게 개방된 누각은, 정조대왕의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과거와 현재에 맞닿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봄볕을 따라 부지런히 걷다 보니 장안문과 북동포를 지나 화홍문에 다다랐다. 화홍문과 용연, 방화수류정(동북각루)으로 이어지는 길을 좋아한다. 특히, 화홍문 누각에 앉아 앞뒤로 넘나드는 바람을 느끼며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순간의 쉼표가 감미롭다.



수원천이 여름에 자주 범람하자 정조대왕은 화성의 남북에 각각 수문을 만들었다. 그중 상류에 해당하는 북수문의 별칭이 바로 화홍문이다. 화홍문에는 일곱 개의 아치형 수문이 있다. 비가 많이 올 경우 수량을 조절할 수 있게 가운데 수문이 좌우의 수문보다 넓고 크다. 수문 위에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다리와 함께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단층 누각을 세웠다. 방어적 기능을 고려한 것이다. 수문은 물의 범람을 막고, 누각은 적의 침략을 막았다. 백성의 안위를 걱정했던 정조대왕의 배려가 숨어있는 곳이다.



정조대왕의 애민 정신은 수원 화성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서장대와 화홍문도 그렇지만, 현재는 안전과 보수를 위해 출입이 금지된 방화수류정도 그렇다. 자연스럽게 앉거나 서서 성곽의 풍경을 내다보는 시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화홍문의 뒤편으로 활짝 열린 누각에 나란히 앉은 연인들이 보인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사이에는 그들만의 무지개가 떠있으리라. 햇살만큼 따스한 눈빛으로 백성을 아끼던 정조대왕의 마음을 새겨본다.


탄천길 양 옆으로 머리카락을 길게 드리운 버드나무가 화홍문과 함께 물 위에 비치는 풍경은 언제 보아도 운치 있다. 방화수류정과 용연을 둘러보고 화홍문 아래 탄천으로 내려와 물길을 따라 걷는다. 물 흐르는 소리와 봄의 기운이 어우러져 내 귀에는 청아한 음악소리로 들린다. 수원천을 따라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며 시장을 향해 활기차게 걸어가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운동 기구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열심히 운동하는 할아버지도 보인다. 성곽을 울타리 삼아 살고 있는 성안 사람들의 안온한 일상이 흐른다. 평화롭고 정겨운 봄날의 풍경이다.

정조대왕이 외로울 때면 찾아와 위안을 고, 노년에 머물며 무지갯빛 삶을 살리라  꿈꾸던 수원화성. 시대가 변해도 성곽 안과 밖의 삶은 물길을 따라 끝없이 흐르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무지개를 찾아 떠나기도 한다.

일곱 개의 홍예문을 통해 맑은 물이 넘쳐흘러 물보라를 일으킬 때면, 무지개가 화홍문을 한층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꽃이 만개한 봄밤에 홍예 수문에 조명이 들어와 누각과 수원천을 비추는 모습을 상상한다. 비가 내렸다가 개인 다음날이면 더욱 좋겠다. 밤에 뜨는 일곱 개의 찬란한 무지개를 만날 수 있으리라. 한 마리 거대한 용이 힘차게 땅을 밀치며 하늘로 날아오른 듯, 성벽은 여전히 견고하고 장엄하게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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