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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Sep 07. 2024

바다의 손길, 섬의  위로


바다가 스스로 몸을 열어 나를 이끈다. 익숙한 집을 떠나 낯선 섬으로 다가가는 설렘이 파도로 출렁인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햇빛의 부축을 받으며 2층 난간에 서본다. 바람의 저항을 온몸으로 느끼며 하늘에 떠있는 갈매기. 온 힘을 다해 팽팽한 바람을 이겨내는 당당한 모습이다.


영흥대교를 지날 때 동행이 그곳이 돌아가신 분을 화장하여 바다에 뿌리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알려준다. 교각의 빨간색 표시나 바다 위 부표 번호로 바다장 위치를 기억한다고 한다. 다리 아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자리를 바라보았다. 나 또한 엄마와의 이별을 앞두고 있다. 멀어지는 다리를 깊어지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환자분은 나가계시고 따님은 잠깐 계세요.” 따님인 나는 속으로 벌벌 떨면서 서 있었다. 의사가 하는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노려보았다. 곱슬머리 의사의 정수리가 뚫릴 기세였다. 담낭암 4기며 길어야 6개월이라고. 시간이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고 황달에 고열이 올 거라고. 그리 되도록 몰랐다는 것도 망치로 발등을 찍고 싶은데, 6개월 밖에 안 남았다고? 삶의 뇌관은 이렇듯 느닷없었다.


당신 몸을 갉아 여섯 남매를 키웠으나 자식들은 다가올 고통과 죽음 앞에 맥을 못추었다. 엄마에게는 단순한 염증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그대로 믿는 89세의 순진함이 절하고 싶도록 고마웠다. 진통제와 소화제를 받기 위해 수시로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오가는 일은 내 몫이었다. 엄마 집에 들러 엄마를 태우고 병원에 다녀오느라 하루에 왕복 4시간을 운전했다. 집에 오면 진이 빠져 젖은 솜 위에 누운 것처럼 무겁고 축축한 마음이었다.


마음 속이 설거지를 기다리는 그릇들처럼 달그락거렸다. 엄마는 일어나 미음 한 숟갈을 못 드실 만큼 쇠약해져 있었다. 먼저 엄마 집에 도착한 언니는 대문의 초인종을 눌러도 엄마가 문을 열지 못한다고 전화했다. 그때부터였다. 말기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지 4개월이 지났다. 죽음이 턱밑까지 쫓아온 것 같은 두려움이 덮쳐왔다. 목이 꽉 막혀 엉엉 울면서 차를 몰았다. 이제 엄마가 반갑게 웃으며 문을 열어주는 날은 오지 못하겠구나.


 걷지도 못하는 엄마를 어렵게 부축해 병원에서 영양액을 주입했다. 덕분에 엄마의 기력이 개미 손톱만큼 돌아왔다. 요일 별로 당번을 정해 엄마를 돌보기로 정해졌고 내 순번은 다음 주였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바닷가에서 파도 소리에 울음을 숨겨 보내던 밤이 있었다. 마침 풍도에 야생화 탐사를 같이 가자 이끈 이가 있어 도망치듯 덥석 따라나섰다.


하루에 한 번 뜨는 배가 선착장에 닿았다. 바다와 방파제 사이에 고여있던 비릿한 냄새가 섬이라는 현실감을 보여준다. 멀리서 몸빼 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아주머니가 달려 나온다. 무슨 일인가 보니 배에서 달걀 한판과 과자 박스 한 개를 신이 나서 받아 온다. 아마 육지를 매일 오가는 매점 아주머니에게 부탁했었나 보다. 별것도 아닌 물건을 저리 환한 얼굴로 뛰어가서 받아오다니, 여기 뭐지? 섬에 닿자마자 나의 눈빛에 생기 한 방울 똑하고 떨어진다.


민박집에 짐을 내려놓고 물에 닿으면 붉어진다는 진달래 돌을 찾아 해변을 걸었다. 파도가 다가와 몽돌을 건드리는 잘그락잘그락 소리가 들려온다. 설거지를 끝내고 가지런히 엎어놓은 그릇처럼 말끔한 기분이 뽀드득거리며 쌓여갔다. 파도가 내게 못 이길 어려움, 못 막을 슬픔은 없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붉고 너른 바위 절벽 ‘붉대’. 주변에 반짝이던 윤슬이 뜨개바늘처럼 여기저기 해진 나의 마음을 꿰매 준다. 해안선을 따라 걷다가 방목하는 흑염소를 만났다. 해풍에 자란 풀잎을 뜯어먹고 제멋대로 뛰어노는 생생한 모습을 눈에 가득 담는다.


해변을 마당 삼아 고사리를 말리는 풍경도 만났다. 화덕에 큰 쇠솥을 걸고 고사리를 삶은 후 잘 마르도록 펼쳐놓는 아낙들이 보인다. 아저씨 한 분이 솥의 고사리 삶은 물을 바가지로 퍼서 화덕 속 장작에 붓는다. 불씨가 남아있던 장작이 지지직 꺼지며 고사리 냄새가 사방에 퍼진다. 바닷가에서 맡는 고사리 냄새가 낯설면서도 구수하다.


섬마을의 평범한 일상이 풍선 불 듯 가슴 속에 생기 비타민을 채워준다. 누워만 있는 엄마를 떠올리면 가슴에서 바람이 자꾸만 빠져나갔었다. 어쩌면 나는 나아지지 않는 병간호를 벗어나 생명의 기운을 충전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민박집 욕실의 무릎 높이보다 낮게 달린 수도 꼭지에서 샤워는 꿈도 못 꾸었다. 기린 물먹는 자세로 다리를 양옆으로 벌리고 머리 숙여 고양이 세수를 했다. 늦게까지 잠 못 든 일행과 맥주를 마시려니 평상 의자가 차다. 의자에 깔려고 방에서 분홍색 이불을 들고나오다 민박집 아주머니에게 들켰다. “거 방에서 먹으면 되지, 왜 빨기 힘든 이불을 들고나와!” “당장 갖다 놔요.!” 아주머니는 허리춤에 팔까지 얹고 소리를 지른다. 아무 말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이불을 다시 방으로 옮겼다. 아주머니는 내 뒤통수에 찌릿한 눈빛을 던지고 안채로 다시 들어갔다.


 이 나이에 얼이 쏙 빠지게 혼이 나고도 웃음이 나왔다. 어릴 적 엄마가 담근 포도주의 포도알을 몰래 건져먹다 혼났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더 이상 엄마의 큰소리도 듣지 못하고 등짝을 맞지도 못한다.


얇은 요만 깔린 뜨끈한 방바닥이 등에 배겼다. 술기운에도 잠에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새벽녘에야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닭도 아닌 괭이갈매기 울음소리에 어리둥절하게 잠이 깼다. 섬답다. 몸의 불편이 마음의 근심을 덜어준 밤이었다.


마당에 나와보니 부지런한 고깃배가 희뿌연 바다로 나아간다. 묵묵히 제 할 일을 시작하는 풍경 속에서 내 할 일을 떠올렸다. 어젯밤 나를 혼내던 민박집 아주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따뜻한 밥상을 내온다. 세모 가사리에 자잘한 서해안 굴을 넣은 해장국이다. 뽀얀 국물이 시원하게 속을 다스려준다. 엄마를 돌봐야 하는 힘을 한 움큼 끌어모은 아침이다.


섬에서 나가는 선착장 앞 매점에서 풍도 여행안내서를 읽었다. 바다가 이 섬에 나를 데려온 이유를 이제 알겠다.


‘어떻게 왔든 풍도는 하루 만에 나갈 수 없으니

세상 각박한 일일랑 잊고 우리 동네다 생각하며

핸드폰 배터리 충전하는 것 마냥 쉬었다 가세요.’


배가 출발하자 섬에 들 때 만났던 갈매기들이 다정한 날갯짓으로 배웅한다. 바다 깊은 곳을 끌리듯 들여다본다.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을 앞에 두고 안절부절못하던 나. 여섯 남매 중 그나마 시간이 자유로워 수시로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일을 힘에 부쳐하던 나. 혼자 남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자꾸만 엉키던 나. 그 많은 나를 한 겹 한 겹 벗어 저 깊은 바닷속으로 보낸다. 단단하고 씩씩해진 나만 남겨둔다.


바다는 나를 받아주고 섬은 나를 업어주었다. 엄마가 내게 준 내 몫의 사랑을 다시 엄마에게 돌려주러 집으로 간다. 바다가 낳고 섬이 키운 통통한 바지락살과 구수한 고사리를 들고. 그곳이 내게 준 위로와 밝은 기운을 선물로 안고 엄마에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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