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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May 12. 2024

다시 쓰다 - 1

한국에 다녀와서

한국에 다녀온 지 두 달쯤 지났다. 거기에서 겨울 한 철을 보냈다. 장소가 바뀌면 그 장소와 연결된 자연스런 습관과 사고방식이 잠시 사라지기도 한다는 걸 잦은 이사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글쓰던 습관으로 돌아오는데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일종의 여행 후유증 같기도 하고.. 어쩌면 한국에서의 경험들을 차분히 녹여낼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강남역과 쌍문역 근처에 숙소를 잡아 머물렀다. 처음엔 강남역, 다음엔 쌍문역 근처. 시댁에서 좀 지내보려 했는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첫날부터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 시부모님은 좋으신 분들이지만 방이 좁았다. 남편과 나의 물건을 둘 곳도 우리 둘의 몸을 뉘일 공간도 부족했다.


어머님이 작은방에 이불 여러 겹을 깔아주셨지만 거기에 눕자마자 나의 뼈들이 급격히 고통을 호소했다. 내 몸도 나이가 들어버린 것이다. 매트리스 없인 하루도 자기 힘들었다. 부모님들의 서운함을 헤아린다면 며칠이라도 더 묵어야 하는데 그랬다간 골병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남편만 볼모로 남겨두고 다음날 나는 이모댁으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일본에서 엄마가 먼저 나와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남편과 나는 서둘러 숙소를 잡았다. 그 역시 어머님댁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안 그래도 기다리셨을 어머님이 남편과 자주 대화하고 싶어 하셨기 때문에. 회의를 하게 되면 대꾸조차 하기가 쉽지 않아서.. 미안해서 불편해서..


그리하여 강남역, 강남역은 교통이 편리하고 쇼핑할 곳이 많았다. 숙소에 오가느라 언덕배기를 오르는 것은 허약한 하체에 근육을 길러주었다. 주변 맛집들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는데 지금도 잊지 못할 최고의 맛집은 역 주변 포장마차였다. 우리는 거의 매일 저녁 그곳에 가서 떡볶이를 먹었다. 자주 나타나는 우리에게 포장마차 할머님은 ‘떡볶이를 좋아하나 봐? ’하며 인심 좋게 떡볶이를 접시 가득 담아주셨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강남역 숙소에 머물기로 한 한 달여의 기간이 끝나갈 무렵 나는 그 할머니에게 우리가 사실은 뉴질랜드에 살고, 지금은 한국에 여행을 와 있으며 며칠 후면 다른 곳으로 옮기기 때문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길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두둥! 어느날처럼 찾은 그곳은 할머니의 포장마차대신 의욕에 넘쳐 보이는 젊은 아주머니의 포장마차로 바뀌어있었다. 스타일은 달랐지만 우리는 습관처럼 그곳에서 떡볶이를 주문했고 맛은 별로였다. 나의 기억은 새로운 떡볶이로 대체되길 거부하고 있었다. 그게 강남역에서 생긴 가장 슬픈 기억..


그리고 나를 절망하게 한 건 따로 있었으니, 오랜만의 고국방문에서 한 달 안에 성취하려 했던 또 하나의 목표가 좌절되고 있었다. 가족 및 친구와의 만남 외에 또 다른 목적이었던 치과 치료. 나는 이미 뉴질랜드 치과에서의 부정적인 경험으로 한국방문 시까지 미뤄온 치과치료가 있었는데 (크라운 교체) 부푼 마음으로 찾았던 첫 한국 치과에서 대실망을 하고 부득이 다른 치과를 찾아야 했다. 한국의 눈부신 치과기공의 발전을 내가 너무 신뢰한 탓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예정보다 오래 머물게 되어 다른 숙소를 이리저리 물색하다가 가격과 날짜가 맞는 곳을 찾았다. 그것은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 쌍문동에 위치해 있었다. 그렇다, 지금은 응팔과 오징어게임으로 잘 알려진 쌍문동, 거기에 십여 년을 살았었고 나에게는 애증의 동네였다. 거기만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으나 가격적인 면을 고려하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아무렴 어쩌랴.. 지금은 그 동네에 내가 아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하며 짐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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