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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 Sep 28. 2024

스페인 가는 길

이틀의 시간과 두 번의 경유로 구한, 왕복 60만 원 유럽행 비행기 티겟

5년 차 대리, 황금 같은 시기에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아깝다고 생각할 시간을 나를 위해 쓰고 싶었다. 퇴사를 하고 여행을 다녀온 나에게 사람들이 자주 하던 말은 '용감하다'였다. 이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무모하고 대책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용감한' 유럽 여행을 떠났다.


짐은 최대한 가볍게 꾸렸다. 160cm가 되지 않는 작은 체구로 하루종일 배낭을 메기 위해서는 신중해야 했다. 혼자 다니는 여행이다 보니 화장품도, 근사한 옷도 필요하지 않았다. 모자, 활동복, 잠옷, 몇 벌의 속옷과 양말. 세면도구, 이어 플러그, 충전기. 짐을 다 싸니 무척 가벼웠다. 다녀온 후 내 마음도 이렇게 가벼워지면 좋을 텐데. 평일 저녁, 가벼운 짐을 메고 공항으로 향했다.


왕복 60만 원의 저렴한 항공권이었기 때문에 두 차례 경유를 해야 했다. 먼저 서울에서 중국 상해로 떠나야 했고, 거기서 중국의 원주 지역을 통해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는 비행이었다. 이틀이 꼬박 걸리는 장거리 비행이었지만, 시간은 많으니 괜찮았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오고 가는 비행기들을 넓은 차창으로 구경하며 유럽 여행을 눈으로 그려보았다. 


인천공항에서 상해까지의 비행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상해가 중국의 경제 중심지인 만큼 공항도 거대하고 깔끔했다. 상해 공항 곳곳에는 카페와 흡사한 테이블과 의자, 각 자리에 충전을 할 수 있는 콘센트가 구비되어 있었다. 나는 카페테리아에 앉아 핸드폰을 충전했다. 그리고 근처를 구경하다가, 4미터는 되어 보이는 타원형 의자에 마찬가지의 타원형 모양으로 누워 자고 있는 한 무리의 중국인들을 마주했다. 처음 본 광경에 당황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나도 적응이 되어 그들 옆에 슬며시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중국의 눈치 보지 않는 문화는 나와 제법 잘 맞았다. 이곳에서 9시간을 대기했다.


드디어 중국 동방항공사의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했다. 두 번째 비행이다. 마드리드가 점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비행기는 공항을 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공항에 도착했다. 원주라는 지역은 나에게 낯선 동네였다. 사람들도 중국인밖에 없는 느낌이었다. 다들 환승을 위해 이 지역에 도착한 모양인지, 짐이 한가득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자신의 캐리어를 커다란 랩에 돌돌 싸서 붉은 공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다. 특이했다. 파손을 방지하기 위해서인 듯했는데, 다행히 나는 짐이 단출했기 때문에 모든 짐은 기내 수화물로 들어갔다. 


중국 원주 공항은 낡은 기차역 같았다. 보안 검색대는커녕, 출국 심사대와 입국 심사대도 없어, 어느 누구라도 쉽게 공항에 들어올 수 있었다. 몰래 와서 수화물을 훔쳐갈 수도 있을 텐데, 싶은 생각과 함께 문화 충격을 느꼈다. 마드리드행 비행 체크인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체크인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나는 중국어를 할 수 있었기에, 공항 보안요원에게 체크인을 어디서 하는지 물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장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금으로부터 2시간 뒤, 저곳으로 가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느릿느릿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직원들을 볼 수 있었다. 이미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대한 짐을 가지고 긴 줄을 섰다. 직원들은 10분 정도 무언가를 주섬주섬 준비하더니, 팻말 하나씩을 직원 등 뒤의 벽에 걸기 시작했다. 영어라고는 한 마디도 없이 간체로 쓰인 한자만 있었다. 그중 마덕리,라고 쓰인 팻말을 유심히 살폈다. 설마 마드리드가 중국어로 마덕리인가, 싶어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맞다고 한다. 중국어를 몰랐다면 고생했겠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중국인들 뒤에 나도 긴 줄을 섰다. 


충격적일 정도로 아날로그인 공항을 경험하고,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를 탔다. 이번은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하는 장거리 비행이었기 때문에 미리 태블릿 PC에 다운로드해 둔 넷플릭스 드라마를 켰다.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다가, 기내식을 먹고 잠에 들었다. 중국 동방항공의 기내식은 간이 조금 세기는 하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맥주와 요청한 샴페인도 맛이 좋았다. 그렇게 마드리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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