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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 Sep 29. 2024

사적인 미술관

여행할 때마다 그 지역의 미술관을 가본다. 난 무엇을 찾고 있을까?

나는 어릴 때 미술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우선 청소년에게 주어진 의무인 수능을 잘 보는 것이 일 순위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잘한다면 틈을 내서 미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한국의 교육 커리큘럼을 따라가고자 했다. 성적 향상에는 내 예상보다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야 했다. 높은 수능 점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 점수는 꼭 남의 것처럼 느껴졌다. 기쁨보다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 십 대의 길고 긴 수능 생활에, 미술을 할 틈은 끝끝내 생기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 미대로 전과하는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그것이 행정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미대는 실기가 중요한 것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때는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공강일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미술 학원에 갔다. 하지만 대학의 본 과 수업도 나에게 너무 어려웠고, 별도의 언어 학원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늘 돈이 부족했다. 식비를 아껴 몇 달 동안 모은 돈으로 겨우 한 달의 미술 학원비를 낼 수 있었다. 휴학을 해서 돈을 벌어볼까,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 성인인데도 나는 부모님에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모든 가정의 모양이 다르듯,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선택지가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무척 제한적이었다.


그래도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주변 사람들의 그림을 그려 주었고, 자주 미술관에 갔다. 잘 이해하기 어려워도 설명을 꼼꼼히 읽었다. 마치 그 설명문에 내 인생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듯이. 미술에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에, 미술 큐레이터라는 직업도 고민해보았다. 그러나 정보를 찾다 보니 그 직업의 문도 대단히 좁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때로부터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동화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를 꿈꾸던 초등학생의 나는 대학도 졸업하고 직장에 취업했으며, 지금은 잠시 일을 쉬고 있는 무직자이다. 주변 친구들은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하나 둘 결혼을 하기 시작한다. 신부복을 입은 친구들은 무척 행복해 보인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이 친구가 이렇게 예뻤나, 하면서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씁쓸한 기분도 든다. 내가 이 친구처럼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내 인생에 늘 자신이 없었고, 노력하는 족족 벽에 가로막힌다고 느꼈다. 과거도 힘들었고, 지금도 만족감도 느끼지 못하는데, 미래의 내가 나와 배우자를 소중하게 여기고 자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물론 살면서 즐거운 시간들은 많았지만, 그 속의 나는 대체로 우울했고, 그 음침한 기운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는 외로움, 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잠들기 어렵게 한다.


지금은 습관적으로 미술관을 간다. 예술과 관련된 무언가를 해보려는 생각은 더 이상 갖지 않지만, 오랜 습관이니까 그것이 편해서 가는 것에 가깝다. 미술은 오랜 세월에 거쳐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려져 왔고, 그렇기 때문에 늘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된다. 나는 모든 것이 기획된 쾌적한 전시 공간을 돌아다니며 그들이 준비해 온 것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 얼마나 편한지! 이런 이유에 스페인 마드리드에 가장 유명한 세 곳의 미술관에 방문했다. 이제 그 방문기를 남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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