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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칠호 May 24. 2021

내가 없어도 언제 어디서나 대접받는 기분이기를

남편의 도시락

아침형 인간 남편은 매일 아침 내게 도시락을 들려 보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요리를 잘하는 건 내 쪽이었다. 그러나 저녁형 인간의 아침이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이끌고 현관을 나서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것을. 내 한 몸 건사하느라 난리버거지인 아침엔 도무지 요리 솜씨를 뽐낼 여유가 없다. 그런데 이 남편이란 생명체는 참으로 희한했다. 1분 1초도 아까운 아침 시간에 남의 도시락을 싸는 외계인스러운 행태라니. 요리를 못하는 남편은 처음엔 조금 버거워하더니 한 달 만에 요리 앱도 깔고 스스로 장도 보며 점점 도시락에 진심이 되어갔다. 어라? 요리 시간은 1시간에서 50분, 30분, 20분으로 단축되고 도시락 칸칸의 빛깔도 활기를 띠어갔다. 


나날이 발전하는 남편의 요리 실력에 사무실 팀원들도 환호를 보냈다. 비혼 친구들에겐 결혼에 대한 환상도 조금 심어준 것 같다. 남편은 어떻게 만났는지, 집안일은 어떻게 나누는지, 남편은 도시락을 주는데 와이프인 나는 무얼 해주는지를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기브 앤 테이크가 결혼생활의 기본 룰이란 걸 이미 깨달은 사람의 질문이었을까.) 평소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던 타 부서 사람들에게도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저분, 남편이 매일 도시락 싸준대’ 속닥거리는 소리를 얼핏 듣고는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 적도 있다. 어쩌면 사람들은 나를, 남편이 매일 도시락을 싸줄 만한 뭔가 대단한 매력이 있는 여자로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남편의 치명적인 약점을 잡고 도시락 조공을 바치게 하는 여자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사실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 


처음에는 영 부담스럽고 쑥스러웠다. 무쏘의 뿔처럼 살아온 내가 한 사람에게 의지하고 그의 덕을 보고 그로 인해 조금 뿌듯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남동생에게 밥을 차려주기만 했던, 내 살 길은 내가 챙겨야 했던, 가족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온 K-장녀에게 깃든 사랑스러운 기운을 칭찬받고 누리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런 시선에 익숙해지며 심지어는 뻔뻔해졌다. 누군가 내게 부럽다고 한다면 이제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이렇게 답한다. 

“그쵸? 제가 복이 많아요.” 

능글거리며 받아칠 줄 알게 되는 데는 무려 서른 해가 넘게 걸렸다. 




남편에게 왜 매일 도시락을 싸주느냐 물었더니, 쑥스러워하면서 말했다. 


“내가 없어도 어디서든 대접받는 기분 느끼라고 그랬지.”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라고도 했다. 

내가 일에 휩쓸려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면 속상하다며, 자기 와이프에게 잘 대해 주라는 말도 함께. 어딘가 좀 엄마 같기도 한 남편의 한마디 코가 시큰해진다. 


그의 기억 저편에는 어머님이 정성껏 싸주신 도시락이 있었다. 정갈한 밑반찬과 수제 돈까스 동그랑땡 불고기 등 메인 메뉴로 꽉 채워져 늘 진수성찬이었다고. 친구들의 젓가락질로부터 사수해야 했을 정도로 인기가 좋아 그의 어깨를 으쓱거리게 만든 도시락. 그땐 몰랐는데 직접 도시락을 싸 보니 알겠더란다. 어머님이 어떤 마음으로 매일 도시락을 쥐여주셨는지. ‘엄마는 같이 학교 못 가니 대신 도시락 보낼게’ 같은,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그 마음을 도시락에 채워 당신 대신 보내는 것이라나. 


점심시간마다 도시락 뚜껑을 열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허둥지둥 쌀을 씻어 밥을 짓고 소시지에 계란 물을 묻혀 노릇노릇 지지고 김치를 쫑쫑 썰어 눌러 담느라 분주한 남편의 모습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본인 인생 최대 고객 의전하듯 매일 도시락을 싸주는 남편 못지않게, 나도 인생 최대의 대접을 누린다는 태도로 정성껏(?) 도시락을 싹싹 비워냈다. 나는 좋은 대접을 받아보니 무엇이 좋은 대접인지 알게 되었고, 좋은 대접이 계속 받고 싶어 졌고, 어쩐지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다. 


도시락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구나. 

도시락 좀 먹어본 놈은 싸기도 잘 싼다.


오랫동안 위축되었던 자아는 남편표 도시락을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커갔다. 

먹다 먹다 너무 커져버린 것인지 요즘은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 신기루를 경험하고 있다. 내 오랜 소망이었던 호호아줌마처럼 늙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목에 숟가락 목걸이를 걸고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숲 속 동물들과 어울리는 호호아줌마의 포근한 웃음이 내 얼굴에도 포착되기 시작했다. 눈가엔 잔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뱃살도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는데도 왠지 안심이 된다. 언제 어디에서든 충분히 좋은 대접받을 수 있도록 마음 써주는 도시락 같은 존재가 곁에 있다면, 호호아줌마처럼 그 어떤 곳이라도 어떤 모습이라도 다 괜찮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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