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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 Apr 27. 2022

#8 성장

바르셀로나에서 보내는 편지

성장통을 겪고 있는 딸과 여행을 했다.

서른 일곱에 낳은 나의 딸.

내 팔자에는 아들만 있다는 역술인의 말을 듣고 애진작에 내심 포기했던 딸.

역아였기에 수술을 했어야했는데, 수술을 하고 출산한 그날 밤에 간호사의 실수로 진통제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았다. 진통제 한 방울 없이, 생살을 절개하고 아이를 꺼낸 상처의 쓰라림을 밤새 뜬 눈으로 견디면서 계속 나에게 외운 주문이 있었으니,

 " 딸을 낳았으니, 이정도 아픈 건 참아야돼, 딸을 낳았어. 딸을 낳았어...."

아침에 회진을 돌던 간호사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은 진통제 링거백을 보고 하얗게 질려서 물었다.

 " 아니, 산모님, 도대체 진통제가 한 방울도 안들어 갔는데, 이걸 어떻게 참으셨어요?"


아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짓만 하였다. 방글방글 웃고, 울고 떼쓰지 않았고, 그 어린 나이에도 다른사람을 배려하고 생각하고, 기다릴 줄 알고 참을 줄 아는 아이로 자랐다.

딸이라는 것만으로도 예쁜 그 아이가 마음까지 예쁘게 자라주었다.


그 예쁜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 상담을 좀 받아보고 싶어"

"야! 너 같이 맨날 웃고, 학교생활도 잘하고, 엄마랑도 잘지내는 애가 왜 상담이 필요해? 엄마가 상담해줄께."

사춘기때 현기증이 나서 좋아하던 체육선생님 앞에서 한번 쓰러져 보는 로망이 있던 나는 현기증으로 쓰러지는 가녀린 소녀를 꿈꿔보곤 했는데, 딸 아이도 사춘기가 되어서 상담받는 소녀가 되어보는 로망이 있나? 그게 있어보였나? 하고 생각하고 말았다.

몇 달 후에, 아이가 학교에서 패닉어택이 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를 처음 받은 이후로도 나는 꽤 자주 학교에서 전화를 받고 가게 문을 닫고 자전거 페달을 밟아 헐떡 거리며 학교에 가서 아이를 중간에 데리고 오곤 해야했다.


스페인이라는 나라에서 영어로 상담을 할 수 있는 아동전문 심리사를 찾기는 힘들었다. 외롭고 긴 터널이었다. 아이는 좋아지지 않았고,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최대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내 감정을 들어내는 것 보다 아이의 감정을 들어주기, 욱하지 않기, 언제나 아이 편에서 말해주기, 상담을 해나아가며 빼곡히 적은 것들을 지키는 일 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화살을 내게 돌리는 일이었다. 

화살이 가슴에 냅다 와 꽂혔다. 후두둑, 후두둑, 날마다 밤마다 아이가 힘든 모든 이유가 내 가슴을 냅다 후비고 파며 박혔다. 


상빈이가 사춘기 성장통을 겪을 때는 그래도 욱할 때 마다 할말은 다 퍼부으면서 산 것 같다.

그놈 또한 내 맘을 후벼파는 말을 퍼부었지만, 나도 지지않고 맞받아치며 똑같이 굴었다. 우리는 웩웩 거리고 싸웠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아이가 먹을 아침, 점심을 챙기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고, 상빈이는 군말 않고 밥먹고, 싸준 도시락을 갖고 학교에 다녀와서 " 엄마 저녁 반찬 뭐예요?" 하며 집에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남을 배려하느라 자기의 감정을 표현할 기회를 놓친 섬세한 딸은 달랐다. 성질대로 웩웩 거렸다가는 아이는 그 상처를 밤새 안고 힘들어 하다가 어떤 일이 생길 지 몰랐다.  성질을 꾹꾹 삼켜야한다. 

아이는 어느 날 부터인가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자기 부정이 낳은 결과일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힘든 일도 섬세하게 살피는 아이이기에, 힘든 내색을 해서도 안되었다.  거의 빌어가며 음식을 먹게 하기 위해서 비위를 건드리는 일은 있어서는 안되었다. 

상빈이 사춘기를 겪으면서 상한 마음을 추스리며 내 몸에서 사리가 나올것이라고 했는데, 딸의 성장통을 겪으니 내 몸에서 사리가 나오는게 아니고, 그냥 나 스스로가 사리가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웩웩거리고 밥잘 먹는 아들의 사춘기가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뒤늦게 깨닳았다.

섬세하게 움직이는 아이의 감정 살얼음판 위에서 매일 춤을 추어야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그 살얼음판이 와사삭 부서지지 않게 조심하면서도 이쪽도 건드려보고 저쪽도 건드려 보며 과하지 않은 '그렇구나, 그랬구나'로 비위를 맞추며 아이의 감정이 숨지 않게 살얼음판 위를 뛰어다녀야했다. 

그 살얼음판이 와장창 무너진 날은 아이는 자기 몸에 상처를 내었다. 

음식을 거부했다.


"당신이 유난해서 그래. 나도 힘들게 하더니, 아이들도 힘들게 하려고 그래?"

헤어진 사람이 했던 미운 말들이 되살아나서 밤새 가슴을 후벼판다.

난 유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유난히 나에게 유난떤다는 비난을 퍼부었던 그 사람이 딱 거기에 서서 날 째려보고 있는 것 같다. 

"유난 떨더니, 거 봐라! "


지금 자면 일아나고 싶지 않아.

그냥 쭉 잘 수 있으면, 깨어나지 않을 수 있으면, 그럴 수만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어.

내 마음이 말한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눈을 뜨며 떠오르는 해야하는 일들, 자질구레하고, 귀찮고, 힘든 일들...

내게 돌린 화살이 밤새 후벼판 상처는 배를 째고 아이를 꺼내고 한방울 진통제 없이 견뎌낸 고통보다 더 아리고 깊었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구글에서 찾아봤던가 유튜브에서 찾아봤던가....

이런 말이 있었다.

"성장하기 위해서. 어제보다 나은 나와 만나기 위해서" 

나의 하루하루는 살아 버티는 일.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욱하면 팍 터뜨려 버리고, 척하는 것은 생리적으로 불가능하게 태어난 나다움을 모두 꽁꽁 숨기면서 버티는 일에 지쳐가는 이 마당에, 성장을 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라고?

그 이후로 성장을 생각했다. 

성장이란 무엇인가. 신체적인 세포증가와 번식이 중단되고 애진작에 노화가 시작된 나에게 성장이란.

정신이 성숙해 지는 것이겠지. 몸에 근육이라도 하나 더 붙이는 것일까? 어제 찢지 못한 각도로 조금 더 스트레칭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아지는 것이겠지. 성장이겠지.

가슴을 후벼판 날카로운 화살을 맞고 힘들어 죽겠다 징징대지 않고, 의연하게 실패에서 배움을 찾는 것일까?

덜 웩웩 거리는 것인까? 유난떨지 않고 평정심을 기르는 것일까?


햇살 가득 머금은 광장의 카페에 앉았다.

멋진 이탈리안 오빠에게 커피를 시켰다. 크로와상도 시켰다.

"서진아, 너는 사람이 언제 성장을 한다고 생각해?"

"어. 인간에게 닥친 어떤 장애물을 극복하고 넘어서기 위해 계획하고 그 장애물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계속 성장한다고 생각해."

"정말 맍는 말 같아. 너에게는 어떤 장애가 있었어?"

"생리! 나 지금 배가 너무아파"

"그럼 생리가 극복되면(끝나면) 성장하는거야?"

"ㅋㅋㅋㅋㅋㅋ"

그러고 보니, 내 나이가 생리가 극복(끝나는)되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주기가 끝난 것이 아니고 완전히 끝난. 

생리가 시작되었던 내 딸의 나이와 생리가 끝날 때가 된 내 나이.

나는 얼마나 성장하였을까?

내 생각의 폭은 얼마나 자랐고, 

세상을 보는 시선은 얼마나 깊어졌고, 세상의 이치를 얼마나 더 이해하게 되었을까?

수많은 생명과 물리적 논리와 천체와 화학반응의 이치를 얼마나 더 알게되었을까?

더 많이 알게 된 만큼 더 많이 깊어졌을까? 이해하는 폭과 통찰은 얼마나 자랐을까?

그 시간을 바쁘게 치열하게 산 것은 알겠는데, 

얼마나 성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있는 대답이 하나도 나오지 못했다. 


아침 일찍 꼬모 호수에서 배를 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녀 보기 위해 서둘러 출발했기에, 이제 막 태양은 자기 할 일을 시작해서 내 등을 가볍고 따사롭게 지져주고 있었다.

크로와상 가루를 콕콕 손가락으로 찍어먹고 있는 딸아이의 볼의 보송보송한 솜털이 햇살에 기지개 켠다.

세포분열을 하느라 몸이 크는 것도 바쁜데, 호르몬까지 냅다 들이 부어대어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가 맨날 헷갈릴 수 밖에 없는 딸, 그렇게 성장하는 딸.

성장을 애진작에 멈추고 그 다이나믹한 성장의 광경을 바라보는게 힘에 부친 엄마.

상빈이 말대로 나는 진부한 생각을 갖은 엄마. 학력고사 시대 세상을 살아가는 시선으로 아이들을 키우려 했던 엄마.

내가 달라져야해. 내가 같이 성장해야해...


세련된 조끼를 팔락이며 서빙하는 이탈리아 오빠에게 계산을 하고, 배에 올랐다. 

넷소. 우리 거기서 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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