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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 May 09. 2022

#9 달리기

바르셀로나에서 보내는 편지

자전거 양옆에는 커다란 메르카도나 쇼핑백 두개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자전거 핸들이 이렇게 강했나 싶을 정도로 중량이 엄청난 쇼핑백에는 6킬로의 연어, 새우, 오징어, 고기, 야채 등이 가득 차 있다. 차선으로 잽싸게 끼어들자 마자 쇼핑백의 무게로 뒤뚱거리는 자전거의 평형을 잘 잡아주고는 페달을 밟는다. 주유소를 지나서 바로 우회전을 하며 4차 대로로 합류하면 바로 정면의 신호등을 주시한다.

'초록불, 달려야해'!

쇼핑백의 무게로 정지를 했다가 다시 출발하는 뒤뚱거림이 부담이 되는 나로서는 이 신호등을 정차 없이 지나치는 것이 커다란 관문이다.

 "달려!!!!" 나에게 소리친다. 

순간 나는 경륜선수로 빙의하여 몸의 각도를 낮추어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고 규칙적인 호흡을 시작하며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후후 하하, 후후 하하... 박민아 선수, 연어와 고기를 이고 지고 무사히 결승 통과!!!

결승을 통과한 다리에 맥이 탁 풀린다.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양 옆에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이 길은 결승을 통가한 자의 땀구슬을 식혀주는 쎄레모니의 길. 바람에 흔들리는 플라타너스 잎파리가 박수를 쳐주고 있다.    "고생했어! 해냈어!"  다시 몸통을 세우고 가쁜 숨을 내 쉬며 페달을 천천히 밟아 플라타너스가 끝나는 곳에서 왼쪽 에두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손님들 훑어보며 돌쳐서면 가게에 도착한다. 


오늘도 달렸다.

그리고 내일도 달릴 것 같다.

어제도 달렸는데....


아침에 햇살이 가득 들어오면 맥을 탁 놓고 가만히 앉아있고 싶다. 햇살에 신체 한부분을 지지며 맥 놓고 잠시라도 앉아있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은 지가 반년이 넘는것 같다.

"왜 당신은 남들처럼 가만히 집에서 살림하며 애들키우며 살지를 못해?" 전남편의 불만이었다.

"애미야, 식당 일이 엄마나 힘든데, 몸도 약하고 그런 일은 해보지도 않은 네가 궂이 안해도 되는 일을 왜하니?" 시어머니의 걱정이었다.

그래, 나는 왜 가만 있지를 못할까?

늘 달리며 살아온 지난 날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달리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슈퍼에서 오는 신호등만 해도 그래.  

정지 신호에 걸리면 잠시 정차했다가 가도 되는데, 왜 나는 그 길을 꼭 죽기 살기로 달리고, 통과 하고 나서 혼자 키득키득 좋아하는지...


하루는 달리기로 시작된다. 도시락을 만들어 서진이를 등교 시키고, 잠시 해야할 일을 차분히 하려고 맘먹은 딱 그 순간에 전화가 오기 시작한다. 온갖 물건들의 배송을 알리는 전화이다. 5분만 기다려 주세요! 후다닥 대문을 나서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옷을 입느라 2분을 썼으니 3분 안에 도착해야한다. 마음이 급해지면 심지어 내리막 길에서도 페달을 후다닥 돌린다. 이미 페달은 혼자서 잽싸게 돌고 있는데도 페달을 밟고  달리기 시작한다. 엄마가 그러셨어. 사람이 먹는 게 무서운 거라고. 정말 수십명이  매일 먹는 식당은 매일 무언가를 사야한다. 산더미 같던 쌀도 국수도 야채도 양념도 무섭게 사라진다. 배송된 물건들을 받고 나면 꽃들이 잘 있나 살핀다. 영낙 없이 시든 잎이 있고, 메마른 화분이 있다. 물을 틀어 꽃에 줄 물을 받으며 로봇 청소기를 가동시킨다. 로봇이 열심히 지 일을 하고 있을 때, 무언가를 끓이거나 볶으면서 다듬는 일을 동시 다발 적으로 해야한다. 전화예약과 가게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응대하면서도 손은 계란을 풀거나 썰던 호박의 칼질을 계속해야한다. 뒷부엌 커다란 냉동실과 재료를 다듬는 씽크대와 가스렌지와 조리대 냉장고를 쉴틈없이 잰 발걸음으로  왔다갔다 하기를 무한 반복하고난 후, 가게 조명을 전부 켜고 초를 켜고 다시 식탁을 정리하고 나면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순간에는 손님들과 인사를 건네며 손은 쉴 틈 없이 김밥을 싸기 시작해야한다. 주문이 들어 오기 전에 김밥을 충분히 싸 놓지 않으면 중간에 김밥 재료 통을 와르르 꺼내서 펼쳐 놓고 김밥을 싸야하기 때문이다. 시간도 없을 뿐더러, 다른 음식 준비로 공간도 없기 때문에, 전체요리로 서빙되는 김밥은 주문을 받기 전에 넉넉히 싸아야만 한다. 

       

한 팀의 손님의 음식을 다 준비하고 났는데, 5 분 후에 다른 팀이 들어와서 앞서 요리한 것과 똑 같은 주문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이미 한차례 반복한 루틴을 다시 반복하며 시간은 딱 두배가 걸린다. 이런 비효율을 막고자 생각한 것이, 타임제로 손님을 받는 것이다. 점심과 저녁 각각 두 번의 시간을 정해 놓고, 모든 예약은 그 시간에만 받는다. 그래서 가게에 손님들은 점심은 오후 한시와 두시 반에, 저녁은 오후 8시와 9시 반에 한꺼번에 들어온다. 정말이지 와르르 들어온다. 

마르티와 서진이가 주문표를 가져다가 꽂아 놓기 시작하면 잽 싸게 전체요리를 준비하면서 라바와 치호에게 메인요리의 준비를 부탁해야한다. 라바! 야끼소바 7개! 치호, 연어 6개, 치킨 7개! 오마카세 5개, 교자 5판 올려놓자! 라바! 계란 더 부쳐줘! 주방은 잰 걸음으로 정신이 없다. 

이 모든 소란은 손님들 코 앞에서 이루어진다. 주방은 한치의 숨김 없이 오픈되어있기 때문이다.

나는 치호에게는 일본어를 하고, 라바에게는 스페인어를 하고, 마르티에게는 영어를 하고, 서진이에게는 한국어를 하는데,  이 모든 혼란 속에서 언어도 같이 뒤죽박죽이 되어서 라바에게 끊임없이 일본만을 하고, 치호에게 한국말을 하고, 서진이에게 스페인말을 하는 웃긴 상황이 벌어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모든 말들도 완벽하지 않거니와 , 단어조차 4개국어를 섞어가며 말을 하고 있으니, 모두들 내 말은 귓 등으로 듣는다. 그러면 성격이 급한 나는 마르티의 등짝을 스매싱하며 늦어진 서비스를 재촉한다. 손님들은 기다리는 시간을 이 정신없는 쇼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주문음식이 거의 나가고 나면, 그때부터는 픽업준비를 해야한다. 다음 타임이 시작되기 딱 10분 전을 모든 픽업타임으로 정해두었기에, 두번째 타임 손님과 픽업 손님이 거의 함께 쏟아 들어오기 직전 주방은 다시 전쟁터가 된다. 마르티와 서진이는 늦게까지 앉아서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을 단호히 내보내고 식탁을 다시 세팅해야한다. 내 눈은 모든 테이블을 주시하며 포크 또는 휴지가 더 필요한지, 후식 주문을 하고 싶은지, 무언가를 더 주문하고 싶은지, 계산을 하고 싶은지를 눈치 채고 마르티나 서진이를 그들에게 잽싸게 보내며 음식을 하고, 포장을 하고, 더러워진 팬을 닦거나, 테이블을 정리하느라 손과 발과 눈알을 계속 가동시켜야 한다.

두번째 손님들이 모두 자리에 앉고 주문이 시작되면 다시 시작...


그리고 그 일상은 오늘도 내일도 다시 시작...

어제도 달렸고, 오늘도 달리고, 내일도 달릴 그 일상은 또 시작....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혼자 달리기로 맘 먹었으니 숨이차도, 다리가 후들거려도 탓 할 사람도, 탓 할 이유도 없는 달리기는 내 인생에 영원할 것인가...


메르카도나 가는 일을 화요일로 바꾸었다. 월요일 오전만이라도 햇살에 다리를 지지고 느긋하게 뻣어있어보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오늘은 달리지 않는 오전을 맞았다.

봄이 한껏 찾아온 창을 열어 해와 바람을 잔뜩 받았다. 나가기 30분 전.... 샤워도 해야하고, 부엌도 치워야하고, 요가도 좀 하고 싶은데, 컴을 켜고 미뤄둔 숙제를 한다. 

은아씨와 약속한 달리기에 대한글쓰기.

아무도 등떠밀지 않았는데, 혼자서 달려온 지난 날을 반추해보았다. 달리지 않기로 한 잠시의 시간이 있으니, 또 달려야하는 이유도, 달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계속 달리는 삶은 너무 지치지만, 계속 안 달리고 사는 것도 나무 힘빠져. 

신호등을 통화하겠다는 그 단순한 미션으로 내 신체 구석구석의 힘을 다 써보고 마침내 그 우스운 스스로의 미션을 달성하고 나서 잠시 맛보는 짜릿한 쾌감도 내가 사랑하는 내 인생의 일부이니까.

하지만, 줄창 달리지는 말아야겠어.


어제 달렸으면,  

오늘은 걸을래.  

내일은 내일이 되서 결정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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