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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May 20. 2022

#10 칭찬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

인색하다는 평은 좋지 못하다. 비단 물질적인 문제뿐 아니라 칭찬 같은 경우에도 그렇다. 남에게 들려주는 칭찬, 그리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칭찬 모두. 안타깝게도 나는 칭찬에 박한 엄마 밑에서 자랐다. 엄마의 요망 수준은 높디높아서 한다고 해 보는데도 성에 차진 못했다. 엄격한 완벽주의자의 눈엔 딸의 노력보다 자잘한 실수들이 먼저 들어왔다. 나는 나대로 빈약한 논리로 방어를 해보지만 애초에 구도가 잘못되었다. 그렇지만 그 안에 있을 땐 구도고 나발이고 내가 속한 이 지점이 어느 곳인지 알지 못한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의심해 본 적은 없으나, 내가 완전 바닥을 치더라도 나를 온전히 수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있었다. 그래서 서럽고 슬프고, 그러나 더 잘해보려고 애쓰는 십 대를 보냈다.


어느 순간 엄마의 영향력은 차차 희미해져 갔다. 집안이 기울기 시작할 무렵, 자식 교육이나 진로와 같은 이상적인 미래에 대해 논하는 것은 살짝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이대로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다. 머리가 굵어진 나는 줄곧 엄마의 무릎 밑, 슬하를 떠나기를 갈망했지만 그래도 어딘가 연결된 지점은 존재하길 바랐다. 태초에 존재했던 탯줄처럼 가늘지만 탄탄한 줄, 모선과의 연결 접점은 늘 필요했다. 영화 <그래비티>처럼 속수무책 나뒹구는 일은 두려웠으니까. 엄마의 관심이 옅어진 사이 나는 나대로 자랐다. 하지만 내게 드리운 그늘은 여전히 존재했다. 나는 그걸 결혼하고서야 알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한평생을 약속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멋쩍게 실소가 나올 법한 문장을 진지하게 믿었다. 어렸으니까, 아무래도 몰랐으니까. 빽빽하게 늘어선 하객들 앞에서 부케를 던지는데 한 번에 될 리가 없다. 던지는 나도 받는 친구도 서툴러 몇 번의 엔지가 났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아, 제가 초혼이라서요.' 라고 농담을 했다. 정말이지 초혼이라 모르던 게 한 둘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집에 살며 약속한 시간에 만나 데이트를 하고 헤어지던 때는 몰랐던 서로의 민낯과 맨살을 보게 되었다. 사랑하거나 싸우거나 한없이 불타던 그때에서 한참이 지나자 내 모습도 보였다. 나는 엄마와 똑 닮아있었다.


기대 수준은 높고 칭찬은 박하다. 적당한 거리의 타인에겐 너그럽고 관대한데 자신에게 친밀한 상대에겐 사랑의 크기만큼 엄격해진다. 최악의 파트너가 아닐 수 없다. 그게 성격적 결함인 줄도 모르고 당당하게 외쳤다. 넌 왜 이것밖에 못 해? 왜 이렇게 한 거야? 이건 내가 줄곧 들으며 슬퍼했던 말인데 그걸 고대로 따라 하고 있다니. 낯 부끄럽기 짝이 없다. 게다가 스스로에게 칭찬을 건네는 법도 어색하니 그걸 북돋아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실수를 했을 때는 '괜찮아, 그만하면 수고했어.' 란 말이, 성취를 했을 땐 '정말 축하해, 잘했어. 역시 너 대단해.' 란 말이. 내겐 나를 비출 큰 거울, 쓴소리보다 달디 단 소리만 계속 해 줄 거울이 필요했다. 언제나 목말랐기에 그 역할을 자연스레 달에게 요구했다. 달은 그때마다 넉넉한 칭찬을 부어주었다. 내가 얼마나 일그러져 있었는지는 그래서 달이 제일 잘 알 것이다. 내가 몹시 괴로워하고 싫어하고 벗어나고만 싶었던 회사 일에 관해서도 나는 달의 칭찬을 요구했다. 하루의 노고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적절한 추임새와 치켜세워주기를 바랐다. 지쳐 돌아온 것은 둘 다 마찬가지임에도 나는 그에게 또 다른 야근을 강제한 셈이다.


시간이 흘러 생각한다. 내가 왜 그리 호스트 일에 몰두하며 많은 시간과 애정을 담아 보살폈는지 알 것 같다. 호스트인 나는 계약한 내용에 따라 공간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게스트는 그에 맞는 비용을 지불한다, 이 단순한 교환 너머의 가치를 줄곧 좇아왔다. 거기서 느끼는 만족과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 안의 갈급한 욕구를 채워주었으니까. 특히나 영어권 특유의 다소 과장된 표현과 제스처는 인정 욕구를 한껏 만족시켰다. 이건 부끄러운 일일까. 아니면 그야말로 적성을 제대로 찾은 일일까.


얼마 전, 그리고 또다시 얼마 전, 다시 며칠 전. 아주 예전의 게스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숙소는 닫아둔 지 오래니 예약 여부를 묻는 메시지는 아니었다. 보스톤의 A가 말한다. 그냥, 문득 네 생각이 나서 연락해 봐. 잘 지내고 있지? 이런 메시지였다. 그게 또 내 마음을 휭하고 훑고 지나갔다. 별 의미 없는 안부 차원의 메시지. 우리는 몇 년 전 만나 인생의 짧은 순간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음에도 이렇게 남겨주는 메시지라니. 거기엔 게스트를 넘어 친구가 된 이, B의 꼬마 생일 축하 메시지도 있었다. 2살이 된 것을 축하해! 라고 정확히 말하는 것을 보면 아마 핸드폰 캘린더에 저장해 놓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안부를 전하고 또 듣는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일을 하던 C의 메시지 서두는 이러했다. 나 지금 여행 중인데 네 생각이 났어, 란 말에 나는 그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꼬마의 탄생 소식과 책 출간 소식을 알린다. 대화는 갑자기 진지해진다. 인생을 기록하는 일, 성장을 바라보는 일, 그 속에서 함께 하는 일에 대한 메시지를 나눈다. 언젠가 내가 다시 호스팅을 하게 된다면 꼭 메시지를 보낼게! 라고 말을 하면, 그럼 나는 당장 서울로 가는 티켓을 끊겠어! 라는 답이 온다. 어쩜 이렇게 살갑지? 마음은 순식간에 포근하게 녹아내리며 노곤해진다. 내 성실함과 부단한 노력을 존중해주고 치하해주는 오랜 친구들이 있다니, 이만큼 보람 있는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나는 달라져야 한다. 받는 칭찬에 으쓱하고 우쭐대는 것 말고 가까운 이들에게 더욱 너그러워질 필요가 분명히 있다. 유년 시절의 상처를 들추며 엄마가 나한테 그랬어요, 흑흑. 이걸 언제까지 할 수는 없으니. 2살 먹은 꼬마에게 '잘했다!' 하고 말하면 신이 나서 박수를 짝짝 친다. 때론 '잘했다!' 란 탄사 없이도 스스로 잘한 것 같으면 먼저 박수를 친다. 꼬마도 분명 칭찬이 좋은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를 북돋는 방법도 알고 있다. 배울 것이 많고도 많다. 그래서 오늘의 칭찬할 만한 일을 복기한다. 우리의 글쓰기 프로젝트도 어느덧 10번째 주제까지 도달했다. 한 달에 두 편씩 느릿느릿하나 꾸준하게 써 왔다. 서로에게 감상평과 응원을 보내며 스무 편의 글을 발행하는 사이, 눈은 멎고 봄비도 그치고 이제 초여름의 햇살이 내리고 있다. 아무도 재촉 없는 느슨한 프로젝트임에도 우리는 진심으로 쓰고 있다. 우리의 하루를 녹여내 담고 있다. 언니에게 칭찬을, 나에게도 칭찬을 건네고 싶다. 짝짝짝, 참 잘했어요! 라고.




'바르셀로나와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는 바르셀로나의 박민아 님과 함께 2022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도시에서 8시간의 시차를 공유하며 한 달에 두 번 같은 주제로 에세이를 씁니다. 이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 알지 못하나 우리는 정말 즐거운 기대를 안고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꾸준히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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