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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 May 26. 2022

#10 칭찬

바르셀로나에서 보내는 편지

어버이날 상빈이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까똑!


"어버이날 축하드려요 엄마"  (어버이날이 축하할 날은 아니란다. 감사할 날인 것이지)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식상하긴 하나, 고맙다)

"누가 뭐래도 엄만 항상 최선을 다하신 거 알아요. 감사합니다." (누가 뭐랬는지 바로 알겠구먼....)


아들이 보낸 소중한 메세지에 계속 딴지를 걸며 읽어가다가 "엄만 항상 최선을 다하신 거 알아요" 라는 마지막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순식간에 고인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알아 준 것이 이렇게 고마운 일인가....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 이렇게 눈물 날 일인가...


엄마라는 역할에 대해 칭찬을 들어보질 못했다. 그 칭찬은 누구의 몫이였을까 새삼 자문해 본다.

엄마라는 역할을 칭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는 그 칭찬을 남편에게 듣고 싶었다.

'당신 정말 열심히 했어.' '당신 정도면 훌륭한 엄마지' 머 이런 말을 들으면 365일 24시간 생색 없이 주구장창 해야하는 엄마라는 고된 역할도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들이 엄마가 최선을 다한 것을 안다는 말. 그 말이 내가 처음으로 들은 엄마로서의 역할에 대한 인정이자, 판정이자, 칭찬이었다. 나는 상빈이의 문자를 바라보며 한참을 눈물을 떨구었다.

스무살이 된 아들에게 엄마노릇 이십년을 하고 받은 인정.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했기에, 이 상장을 수여함' 과 같은 인정.

고마워....엄마의 진심어린 최선을 알아준 것만으로도...


'바르셀로나 Mina's의 예약이 확정되었습니다'

이메일이 왔다. '이건 먼소리냐?' 

이메일의 링크를 따라가 보니, 코로나가 시작되기 직전에 내가 올렸던 우리집 방 한칸에 대한 예약이 확정되어 있었다. 입실은 바로 내일 모래.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손님 방에는 빨래 건조대와 내가 입고 벗어 던진, 겨울코트, 봄 가기건, 그리고 여름 티셔츠가 계절별로 뒹굴고 있었고, 부엌, 화장실 제대로 치우지 않고 못견디게 싶은 것만 후딱 치우고 눈가리고 아옹하며 살아온 지가 몇달째 였다.

예약플랫폼에 연락을 해서 예약취소를 부탁하고 한시름을 돌리고 있는데, 또 이메일이 왔다.

'예약이 확정되었습니다."

헐.... 그 이후 즉시 예약이 안되도록 조치를 한 후에도 예약문의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먼일이 난 거지?'

귀국 후 격리조건이 없어지면서 한국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나는 내코가 석자로 돌아가는 일상에 손님을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광고를 내리기로 했다. 그러자, 잠시, 내가 무슨 생각으로 손님을 받으려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이 아름다운 마을에서 이 사람들과 같은 느린 삶의 속도로 여행을 하고, 이곳 사람들의 속도로 살아보는 경험을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경쟁하듯, 더 많은 곳을 보고, 더 많은 쇼핑을 하고, 더 많은 맛집을 찾아다리고, 더많은 사진을 찍어 자랑을 하는 여행이 아닌 나를 찾는 여행을 소개하고 싶었던 그 예전의 야심이 떠올랐다.

지금 이 광고를 내리면 나는 다시 이런 일을 시작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서진이와 의논을 하고, 우리는 대청소를 할 겸, 손님을 받기로 했다.


나는 우선 락스를 한 통 사서, 샤워실 타일 줄눈에 번져가는 거뭇거리는 곰팡이를 없애기로 했다. 화장실 구석구석을 치우고, 다 쓴 샴푸와 린스 플라스틱통을 가져다 버리고 겨울내내 지핀 벽난로 아궁이를 청소했다. 겨울 내내 깔려있던 양모 카펫도 청소해서 돌돌말아 치워두었다. 여기저기 너저분한 장작도 한 곳으로 모아 정리하고, 서진이 할로윈 파티 때 바꾼 내 침대 위치도 이제사 제자리에 돌려두었다.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손님방 이불커버와 침대커버를 새것으로 갈아 끼우고 첫 손님을 맞았다.


후기가 한개도 없어 불안하게 이 먼 곳까지 온 손님은, 지인과 여행을 시작했는데, 트러블이 심해져서 결국 지인과는 헤어져 여행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들어가려다가 표 변경을 하지 못하고 어찌 어찌 공중에 붕 떠서 머물 곳을 찾아 이곳까지 온 터였다.


손님은 3일을 머무는 동안, 내 일손이 모자란 날엔 뒷부엌으로 와서 설겆이를 도맡아 해주었고, 나는 손님을 부산언니라 부르기 시작했고, 언니는 서진이 저녁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시간이 될 때는 같이 저녁을 해서 먹었고, 까바를 따서 마셨고, 노을을 보고 인생을 얘기했다. 부산언니가 돌아가기 전날에는 함께 온천에 갔다. (가게 뒷문을 열면 호텔 뒷문이 바로 나오고, 거기는 내집 목욕탕과 같은 몬세니 온천수가 나오는 유명 온천이다)

부산언니는 나를 꼭 끌어안아주고 떠나면서 나에게 이런 메세지를 남겼다.

'내 인생의 가장 큰 경험이었고 축복이었어.'

나는 언니가 오는 바람에 락스를 한통 사서 목욕탕 청소를 했을 뿐이고,

바쁠 때는 언니의 손을 빌어 설겆이를 부탁하고 김밥을 싸달라고 징징댔을 뿐이고,

내 아이의 밥을 챙기면서 같이 저녁을 먹었을 뿐인데...

그런 조금은 당연스럽고, 조금을 어이 없는 순간이 누군가의 가장 큰 경험이고 축복일 수 있다니...

피식 웃음이 나면서

마음이 따뜻하면서

누군가의 칭찬에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몽글몽글 솟았다.

'동네 헌집을 개조해서 본격적으로 가봐? 민아의 힐링 민박? 현지 레스토랑 주방보조 체험여행! 온천입장권을 선물로 드려요!'

뭔가 앞뒤가 안맞는데, 솟아오르는 이 자신감은 무엇인지, 

그건 분명 칭찬의 덕이다. 

결국, 우리가 목마른 것은 칭찬, 

우리를 앞으로 나가게 하는 것도 칭찬,

애기때는 침이 마르게 오버하던 칭찬이 뚝 떨어지는 사춘기 때도 칭찬, 

애엄마가 되서도 받고 싶은 것은 칭찬, 

늙어서도 받고 싶은 건 인정, 그리고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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