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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Jun 01. 2022

#11 여행가방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

창고 깊숙이 넣어둔 여행가방을 꺼냈다. 하필 제일 높은 선반 위에 있어 끙챠, 소리를 내며 끌어내리는데 어딘가  이상하다. 얇고  면의  귀퉁이가 깨져있다. 살펴보니   플라스틱이 안으로 말려들어갔다. 굳이 손을 넣어 어떻게  보려다간  다치기 좋게끔 생겼다. 이게 부서질 만큼 충격을  일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럼 그냥  홀로 부서지기도 하는 건가.  그대로 삭을 대로 삭고야 말아서? 일리가 있는 말이다. 만으로 10,  세계 방방곡곡을 함께  여행가방이니까.


결혼, 정확히 말하면 결혼식을 준비하며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나의 결재를 기다리고 있음에 놀랐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물어왔다. '신부님, 이건 어떻게 할까요? 보내드린 사진은 확인하셨나요? 견적서는 메일로 드릴게요. 다음 주까지 알려주세요.' 등등. 난생처음 듣는 '신부님'이란 호칭도, 줄줄이 늘어선 결재 건도 모두 낯설었다. 사실 결재는 곧 결제와 동급이라서 일필휘지로 날리는 싸인은 곧 카드승인으로 돌아왔다. 점차 돈을 세는 단위의 감각이 흐릿해진다. 달력은 형형색색의 '해야 할 일'들로 가득하고 나는 매일 열심히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가지만, 자고 일어나면 다시 서너 개는 더 달려있는 그런 부조리한 세계에서 몇 개월을 헤엄쳤다. 그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일들이 모두 끝나고, 부모님을 포함한 하객들을 배웅하고 나니 진정 큰 프로젝트를 마친 기분이 들었다. 가히 합병에 비견할 프로젝트였다. 결혼식장에서 신혼집까진 차로 8분, 터널 하나만 지나면 곧 집이었다. 새벽녘 집을 나와 오후가 될 때까지 먹은 게 별로 없었다. 차에 올라타며 주문한 치킨은 금방 도착했다. 갓 튀긴 치킨과 맥주가 그렇게 맛있던 적은 드물었다. 우리는 방금 치르고 온 엄청난 이벤트에 대해 이야기하며 잔을 부딪쳤다. 단단하게 고정된 머리를 더듬어가며 실핀을 뽑는데 뽑아도 뽑아도 계속 나왔다. 그럼에도 헝클어지지 않던 머리. 화장도 마찬가지였다. 개미 다리 같은 속눈썹을 하나씩 떼어내고, 여러 번 얼굴을 닦아냈다. 화장솜 위로 검고 붉은색들이 얼룩졌다. 막 감은 머리와 맨 얼굴로 거울 앞에 섰다. 드디어 원래의 내 모습이 되었다. 여행가방을 열 때가 된 것이다.


집을 합치며 무수히 짐을 정리하고 버리고 또 새로 살림살이들을 사들이는 가운데 우리는 여행가방도 샀다. 아메리칸 투어리스터의 회색 캐리어. 두 개 합쳐 얼마를 줬더라. 아무튼 합리적인 가격임에 틀림없었다. 그렇게 산 가방은 견고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4개의 바퀴는 전후좌우 부드럽게 굴러갔고, 손잡이는 1단, 2단의 길이로 척척 조절되었다. 무엇보다 아주 무난한 디자인으로 정말이지 평범해 보였다. 도둑이든 세관이든 괜히 눈에 더 띄어 좋을 것은 없으니까. 너무 무난해서 도착한 짐을 찾을 때 헷갈릴 수 있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색색의 손수건을 감는다든가, 벨트를 채운다든가 할 수 있겠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첫 기착지였던 두바이를 시작으로 가방의 겉면엔 수화물 스티커들이 붙기 시작했다.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바코드 스티커는 혹여 어디에서 가방을 잃더라도 스캔을 통해 바르게 가야 할 곳을 찾아준다고 했다. 그렇게 앞면, 뒷면, 옆면과 아랫면까지 얼룩덜룩 스티커들이 붙으며 점차 가방은 무난하고 평범한 가방에서 '그 가방'이 되어갔다. 툭, 덜컹. 공항의 컨베이어 벨트 위로 밀려 나올 때, 아무리 비슷한 회색의 가방들 틈에서도 '저 가방'은 '내 가방'이라고 자신 있게 다가가 꺼내들 수 있었다. 음, 그러니까 먹이를 구하고 돌아온 펭귄이 남편 펭귄과 새끼를 찾아내는 뭐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세상에 가방은 많고 많으며, 그 대부분은 칙칙하고 검으니.


그 후로 10년, 달팽이처럼 짐을 집처럼 이고 지고 다녔다. 언제 어디라도 이 가방만 있으면 내 집과 비슷한 느낌의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매일 입고 자는 잠옷, 오래 걸어도 발이 편한 신발, 노트와 펜, 그리고 노트북과 마우스. 오래 아껴가며 읽을 책들까지. 아무렴 노마드적 상상의 기반이 되어주었다. 그게 비록 출장이라 해도 '여행'의 느낌을 선사했다. 진짜 여행이라면 '일상'의 터치를 전해주었다. 내 안의 서로 다른 자아들이 충돌하며 불을 지필 때, 소리소문 없이 슬쩍 어느 한 구석의 물길을 틔워주었다. 너 떠나도 돼, 너 그냥 훌훌 털어버려도 돼, 하고.


가방은 거의 모든 바다를 건넜다. 거의 모든 대륙에 머물렀다. 온갖 길들을 건너 다녔다. 한없이 덜컹이는 돌길, 마구 구불거리는 산길, 질척거리는 빗길. 온갖 종류의 탈 것들에 실려 다녔다. 색색의 택시, 한없이 느린 '익스프레스' 기차, 빌린 차와 빌리지 않은 차의 트렁크에서 얌전히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손잡이를 잡아 가방을 날랐다. 대부분은 거칠었음이 분명하다. 여기저기 밀려다니거나 마구 내팽개쳐진 것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묵묵히 버텨왔다. 그 한없는 평범함으로 남의 손을 타지도, 길을 잃지도 않고 꿋꿋하게 여행 메이트가 되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된 것, 작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눈물이 났는가? 나지 않았다. 마음이 서글퍼졌는가? 조금 그랬다. 오래 써 온 물건들에겐 정이 들기 마련인가 보다. 함께 한 10년을 추억하며 잘 가, 하고 생각하다 문득 가방은 어디로 갈 것인가에 생각이 머물렀다. 특수한 용도의 플라스틱이라 재활용을 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면 불에 태우거나 땅에 묻으려나. 그 고된 순간을 겪더라도 삭긴 삭되 결코 썩어 없어지진 않을 가방에 대해 생각했다. 흐르고 흘러 언젠가 제가 건너기도 한 바다에서 영원히 떠다니게 되면 어떡하지. 잘게 부서지고 흩어져도 결국 남아있게 되면 어떡하지. 불멸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미련이든 형체든 남기는 것 없이 고스란히 사라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에 대해서도. 작은 조각도 남기지 않고 온전히 사라지길, 나는 가방의 명복을 빌었다. 그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인사였다.




'바르셀로나와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는 바르셀로나의 박민아 님과 함께 2022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도시에서 8시간의 시차를 공유하며 한 달에 두 번 같은 주제로 에세이를 씁니다. 이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 알지 못하나 우리는 정말 즐거운 기대를 안고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꾸준히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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