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a Jul 04. 2022

#12 생일

#바르셀로나에서 보내는 편지

내가 어려서 살던 세검정 집에서의 생일에 대한 기억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생신도, 아빠 엄마의 생신도 아닌,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으로 기억되는 오빠의 생일파티였다.

그날 아침부터 분주했던 엄마는 삶은 계란의 껍질을 조심히 벗겨내시고, 실로 계란을 반으로 가르셨다. 

"엄마, 왜 칼로 안잘라?" 하고 물으니 그래야 노른자가 부스러지지 않고 예쁘게 반을 가를 수 있다고 하셨다.

그 신기하고 생소한 계란 가르기의 광경이 그 날을 아주 특별한 날로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자리하게 했다.


그날은 우리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다니던 오빠의 친구가 모두 왔다. 나는 내가 좋아했던  (지금은 MBC기자가 된) 안형준 오빠 옆에 비집고 들어가서 엄마가 차린 생일상에 자리한 기억이 난다. 

두살 차이 나는 언니에게 항상 짖궂던 아홉살의 오빠는 언니에게 "야! 통수박!( 그 당시의 언니의 별명) 너는 빠져!" 라고 해서 언니를 울렸지만, 나는 조그매서 눈치 못챘는지, 언니보다 귀여워서였는지(내 생각), 무사히 안형준 오빠 옆에 자리를 잡고 그 황홀한 생일 상을 바라본 기억이 난다.

김밥도 잡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생소하고 예쁜 음식이 많았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음식은 아까 엄마가 소중하게 자른 달걀요리였다. 

엄마가 반으로 가른 삶은 계란의 노란자 위에는 빨간 딸기잼이 동그랗고 자그마하게 올라가 있었는데, 그 색의 대비가 너무 화려하고 예뻐서, 그리고 엄마가 오전에 실로 조심히 삶은 계란들을 반으로 자르던 광경까지 겹쳐져서 나에게 그날 생일상의 최고의 신비하고 고귀한 음식은 딸기잼을 올려놓은 삶은 달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한참 어렸던 우리엄마의 서툰 첫아들 생일상 음식이었다고 본다. 퍽퍽한 삶은 달걀에 딸기쨈 찍어먹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실, 비주얼만 기억에 남지,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이후로 나의 어린 시절 생일은 갖고 싶은 선물 목록을 주르륵 적어 식구들에게 한달 전에 돌려놓고, 달력에는 '내 생일' 이라고 동글박이 세개와 별표 열개 즈음을 공간이 닿는 대로 그려놓고 식구들에게 갖고 싶던 것들을 결국에는 생일 선물로 받아낸 기억이 대부분이다. 

지금도 우리 식구들의 각종 비밀번호에는 내 생일 날짜가 숫자로 꼭 들어가 있다. 엄마도, 오빠도 언니도 모두 무언가의 비밀번호 일부에 그 숫자가 들어가 있어서 내가 한 번은 "머야, 크리스마스도 아니고, 왜 다들 내 생일을 자기들 비밀번호에 넣었어?" 하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언니 오빠가 쌍수로 목청 높여 말한 것이 "야! 니가 우리를 좀 들볶았어야지. 아주 니 생일 몇 달 전부터 들들들 볶아대고 난리를 쳐서 우리는 그 날이 지구상에 없었으면 하는 날인 동시에 뇌 깊숙히 세뇌되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놀라는 날이거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호기 있게 강조하던 내 생일은 쏙 들어가고,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의 생일을 잊지 않고 챙기는 데 급급하며 살았던 것 같다. 아이들의 생일이 돌아오면 우리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의 생일파티를 뻑쩍지근하게 차려줘야할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고, 시댁식구들과 친정 식구들의 생일도 잊지 않고 챙겨야하는 의무수첩에 들어오게 되었다. 

아이들은 내 생일이 되면 꽃도 그리고 초도 그린 생일 카드를 주었고, 상빈이는 돈이 없어서 이번엔 선물을 못사드리지만, 크면 립스틱도 사드리고 차한대는 꼭 사드린다는 공수표를 남발한 편지도 써서 주었다.

 (그 편지를 잘 간수했어야한다. 지는 까맣게 잊었을 약속어음이었는데...) 


우리 엄마가 오빠의 생일에 삶은 계란을 실로 가르고 딸리쨈을 올리는 묘기를 부렸던 것처럼, 아이들의 생일은 없는 솜씨를 총동원해서 다른 친구들 파티와 비교해서 빠지지 않게 차려줘야하는 은근한 압박이 밀려오는 엄마의 숙제이다.

한국에 있을 때 서진이 유치원 친구들과 그 엄마들을 초대해 놓고 어디서 시작해야될지 모르는 나를 대신해서 친구들이 수박화채를 만들고 음식들을 모두 집에서 준비해와서 전날 밤에 내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주고 간 적도 있다. 나는 집청소만 하고 손님들이 오자 친구들이 만들어 놓은 음식을 꺼내서 랩만 벗겨서 대접하였다. 

그 날 나는 엄마들에게 "어머, 서진이 엄마 음식도 이렇게 잘해?"라는 칭찬을 받았지만, 할 줄도 모르고 일단 일만 벌이는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이 엄마들 까지 초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알아서 시장까지 봐서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 생일파티를 어떻게 치뤘을까 싶다. 지금에야 피자도 시키고 짜장면도 시키면 되는 일인걸 아는데, 왜 그때는 꼭 내 손으로 없는 솜씨를 자랑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 이후로도 아이들의 생일날 무언가 인상깊게 꿀리지 않게 해줘야 한다는 압박은 계속되었다. 

요트도 빌려보고, 말도 빌려 보고, 해변가의 집도 빌려서 돈쓰고 신경쓰는 파티지랄을 아이들 생일만 되면 되풀이 하다가 문득 이런 질문을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날, 할 수 있고, 해야하는 일은 고작 먹고 마시는 파티밖에 없을까?'

이런 생일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다가 내가 결심한 일이 있으니, 내 생일이라도 파티지랄에서 벗어나 뜻깊은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생일날은 나의 고객과 영업하기로 약속한 날이기도 해서, 나는 가게를 시작하고부터 내 생일에 번 돈을 전부 기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그날도 똑같이 하고, 그 댓가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이 먹고 마시는 일보다는 좀더 생일을 의미있게 보내는 일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그렇게 생일을 보내고 나니 마음 한켠은 뿌듯했는데, 또 마음 다른 한구탱이는 허전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번 가을에 나는 반백살의 생일을 맞는다. 날짜도 제일 바쁜 금요일이다. 그 날도 후라이팬을 낚아채며 야끼소바를 볶고 치호와 라바와 마르티와 서진이에게 서비스와 요리를 재촉하며 정신없는 저녁을 보내고 그날의 매출을 기부할 것이다. 

내가 태어난 의미를 생각해 본다. 

불교신자이셨던 엄마는 늘 개미도 함부로 죽이지 말아라. 이번 생에 덕을 쌓아야 다음 생에 잘 태어날 수 있다고 하셨다. 그 때 나는 개미로 태어나는 인생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누군가의 발에 밟히고, 차 타이어에 깔리는 사건사고가 비일비재할 개미의 삶. 늘 무언가를 낑낑 이고 지고 다녀야하는고 부지런히 모래 한알 한알을 퍼 날라 땅속의 집을 짓고 제일 좋은 곳은 여왕개미에게 바쳐야하는 일개미의 삶.

나는 다행히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게 많은 삶을 살고 있다. 

내가 태어난 이유를, 내가 태어나서 해야하는 사명을, 우주에서 개미가 아닌 인간의 형태로 보내진 이유를 나는 알고 있는가?

반백년을 살아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 반백년의 삶을 기념할 생일은 내가 내 존재의 이유를 알건 모르건 상관 없이 돌아올 터이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태어난 것을 축하받을 일을 하면서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고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축하받을 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누구든 일단 생일을 맞은 이를 축하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나온 그 사람의 삶이 너무도 즐겁고 행복할 터이니, 앞으로 그 기쁨을 누리며 살 그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 아닐까? 


생일에 대한 이런 저런 상념 끝에 도달한 생각은 이렇다.

1.생일은 축하 받는 날.

2.축하 받는 것은 기쁜 일이기 때문

3. 기쁨의 당사자는 그 누구보다도 나여야야 함.

4. 나는 태어난 것이 기뻐 죽겠는가?

5. 고달프고 힘든 날이 더 많다.

6. 기쁜 날은 특별하게 찾아오는가?

7. 대부분 특별하게 기쁜 날은 반백살 살면서 손에 꼽을 정도이다.

8. 그러면 그 기쁜 날은 어떻게 만들지?

9. 매일매일 기쁨의 순간을 낚아채는 수 밖에 없다. 기쁨을 느끼는 연습을 한다.


반백의 생일은 뜻깊은 기부도 하겠지만, 기쁜 일도 해야겠다. 나를 기쁘게 해주는 일을 헤아려 그 일을 해야겠다. 그리고 기쁨을 열심히 눈치채고, 부지런히 기뻐하며 살아야겠다. 

개미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행복, 

개미보다 더 많은 기쁨을 느낄 줄 아는 고등생물임에도, 하루의 고단함에만 허덕이며 사는 건 일개미의 삶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게 아닐까.

그래, 더 많은 감각으로 더 많은 순간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축하해. 

그러니 그 기쁨을 느끼며 누리고 사는 것은 이제 부터 너의 몫이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13 단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