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보내는 편지
'산토리 가쿠빈 입고되었습니다.' 기다리던 문자가 왔다. 나는 바로 답장을 보낸다. '두 병 부탁합니다.' 마음이 급했던 걸까. 선입금부터 해놓고 나니 그제야 안심이 된다. 며칠 후, 문자를 보내온 동네 술 가게로 향한다. 당최 구하기가 힘들다는 그래서 이렇게 예약까지 해놓은 두 병의 위스키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위스키 두 병쯤은 거뜬히 살 수 있는 재력에, 입고 소식을 제일 먼저 문자로 받아볼 수 있는 능력에, 그리고 위스키를 마시는 방법 서넛은 술술 읊을 수 있다는 연륜에.
그렇게 사들고 온 위스키를 야금야금 마신다. 잘 따르고 나서는 뚜껑을 고이 닫아 찬장에 넣어둔다. 그러면 몹시 흡족한 마음이 된다. 이 흡족함을 나만 알기는 아쉬운 나머지, 나는 위스키를 들고 기차를 탄다. 잠옷과 속옷, 칫솔과 레몬과 함께 떠나는 여정이다.
'자고 가도 됩니까?' 물으면 '얼마든지요.' 하는 답이 날아왔다. 단체 대화방은 금방 떠들썩해졌다. 2년 만에 보는 얼굴들이다. 그 사이 이사한 g언니가 집으로 놀러 오라 한다. 조금 늦은 집들이인 셈이다. 어디든 자리를 만들어 줄 테니 편하게 자고 가라 한다. 안대를 챙기겠다고 말하자 b언니가 자기 것도 가져오겠다고 말한다. 혹시 이상한 안대 아니냐고, 수면용으로 부탁한다고 말하자 수갑이랑 세트라고 말한다.
홍대의, 합정의, 상수의 술집들을 떠돌았다. 그것도 모자라 서로의 집에 자꾸 찾아가 밤을 지새웠다. 명륜동, 장승배기, 성산동, 목동, 망원동, 신사동, 광안리와 서귀포의 성산까지.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원서동, 구기동, 삼청동에 이르기까지 나는 언제나 두 팔 벌려 그들을 맞았다. 가방 안에선 밤을 지샐 선물들이 자꾸만 튀어나왔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지난주 써 본 단편소설, 타로카드, 손톱 손질 세트, 마스크팩, 위스키와 와인, 때로 막걸리도. 나는 그들을 위해 커피 드립 도구를 들고 비행기를 탄 적도 있다. 원두와 써버, 도자기 드립퍼와 여과지를 담은 가방. 난기류를 만날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너무 편해서였다. 언니들 그리고 h와 함께면 그곳이 어디든 좋았다.
현관문이 열리고 우리는 살가운 인사를 나눴다. 이게 얼마만이야, 하여 햇수를 세어보니 12년의 인연이다. 어쩜 변한 게 없네! 하며 반가운 티를 낸다. 이런 걸 헤아린다는 게 우리가 나이 먹었다는 반증일 테지만 오랜만에 만난 얼굴이 좋고 좋아 대낮부터 위스키를 꺼냈다. 이미 g언니는 냉동실 그득그득 얼음을 준비해 두었다. 나는 내 집처럼 언니의 부엌으로 가서 고이 가져온 레몬을 저민다. 계량하는 도구 없이 순전히 눈대중과 감, 그리고 흥겨운 기분으로 위스키를 따른다. 해는 길어 낮술을 다 마시고도 아직 환하다. 집들이인 만큼 집 구경을 하다 언니의 작업실에 예전에 선물했던 액자가 어여쁘게 놓여있는 것을 보고 몰래 좋아한다. 몇 번의 이사 동안 살아남았다니 조금은 감격스럽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고 동네 술집에서 다시 한 잔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까지도 밤은 길다. 지난 2년의 삶을 나누다가도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다가, 그보다 우리의 굽어가는 어깨를 더 걱정하다가 미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지에 대해 분노하기도 했다. 그게 말이 돼? 말이 되는 거냐고. 나는 Eliza Hittman의 영화 <Never rarely sometimes always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 이야기를 꺼냈다. 십대들이 임신 중단을 위해 어렵사리 돈을 모아 주 경계를 넘는 장거리 버스를 타야 하는 게 말이 되냐고. 분통을 터뜨리던 새벽 두 시, 우리는 가느다랗게 구부러진 달을 함께 보았다. 달의 꼬리는 아주 선명하고 매끄러웠다.
늦은 아침, 부스스한 얼굴로 식탁에 모여 앉으니 12년 전과 별 다를 게 없었다. 우리가 밤을 지새우던 술집들은 12년의 풍파 사이 사라진 곳 많으나 여기 모인 우리만큼은 그대로다. 세 달 째 실업급여를 타고 있는 h가 밥을 산다고 하여 다소 황송한 기분으로 양장피를 먹었다. 이조차도 기시감이 들었다. 나란히 앉아 <헤어질 결심>을 본 후, 가볍게 손 흔들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다음은 우리 집에 놀러와! b언니가 말했다. 가을쯤 좀 선선해지면 보자. 우리의 인사는 옛날 선비들의 대화처럼 느슨하나 고아한 아취가 있다. 거기엔 오래 묵은 술처럼 은근하고 다정한 출렁임이 있다. 좋은 것, 멋진 것들은 언니들과 다 해보았다. 방콕 호텔에서의 풀파티도, 거침없이 시켜먹던 룸서비스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받던 마사지도, 그러다 심지어 택시 기사에게 사기당해 눈탱이 맞은 기억도 있다. 가자고 한 레스토랑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며 안내한 곳에서 무려 20만원짜리 푸팟퐁커리를 먹었었다. 뭔지도 모르고 좋다고 먹어놓고 계산할 땐 순순히 내란대로 돈 내고 나와 나중에야 열을 올렸다. 그보다 더 웃기고 우스운 것은 h가 맡아주었다. 그는 학교 도서관에서 칸트를 훔치고서 훔친 책은 읽지도 않고 자랑만 했다. 여기저기에 빌붙기를 잘해, 집에 돌아갈 때면 늘 나와 택시를 타고 먼저 내려 손만 흔들었다. 먹성이 다채로우나 알뜰하기도 해 치킨을 먹으면 가여운 닭의 영혼까지 쪽쪽 빨아먹었다. 둘이든 셋이든 함께 많은 영화를 보았고 영화를 본 뒤면 늘 술을 마셨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우리는 곁을 맴돌며 안부를 묻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임을 안다. 꽤나 오래되었으나 그래서 더 좋은 단골인 셈이다.
'바르셀로나와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는 바르셀로나의 박민아 님과 함께 2022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도시에서 8시간의 시차를 공유하며 한 달에 두 번 같은 주제로 에세이를 씁니다. 이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 알지 못하나 우리는 정말 즐거운 기대를 안고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꾸준히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써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