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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 Sep 05. 2024

마음 바라보기

책 이야기

에크하르트톨레의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사람들은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영적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고 한다. 아무리 현세가 거지 같아서 영적인 세상에서 평화를 찾아보고자 한다 해도, 영적인 세상은 멀고도 멀다. 언제 읽어도, 언제 들어도, 내게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이다. 하지만, 첫 번째 그의 책을 좋아했기에, 또 마침, 언니가 이 책에 나오는 에고의 본질에 대해 한바탕 설교를 했기에, 마침, 요가수트라를 읽었던 터라, 영적인 세상을 다시 영접해 보기로 했다. 책은 나와 거의 두 달을 넘게 같이 했다. 잠 못 드는 밤에도, 일찌감치 반짝 눈이 떠진 아침에도, 코스타리카를 여행하는 내내, 그리고 야끼소바 기름과 땀으로 샤워를 하고 돌아온 팔월의 긴 밤에도 책을 펼쳤다.  하지만, 수많은 밑줄을 긋고, 수많은 메모를 해둔 심오한 내용도 책을 덮는 순간 연기처럼 순식간에 날아갔다. 읽을 때는 가슴에 와닿는 좋은 말들이, 현실세계에 와서는 먼지처럼 사라진다. 경험해 보지 못한 그 추상적인 설명의 나열은 눈으로는 쫓아가 보아도, 가슴에 남기기가 힘들었다.


"형상 차원에서 잃음은 본질 차원에서의 얻음이다."

"불확실성과 편안해지면 삶에 무한한 가능성이 열립니다."

"누구도 잘못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누군가에게 있는 에고일 뿐이다. 모두가 똑같은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알면 자비의 마음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에고가 지배하는 인간관계의 드라마에 더 이상 기름을 붓지 않는다. 기름은 무엇인가? 대응이다. 에고는 그것을 먹고 번창한다. "


 에고의 장난질에 넘어가지 말고, 나의 의식을 알아차리는 현존을 경험하고 싶었지만, 책을 덮는 순간 에고는 멜롱을 하며 보란 듯이 나를 휘둘러 몰고 다녔다. 잡다하고도 얄팍한 내 생각 곳곳에는 나의 우월함을 설득시키고 싶은 몸짓이 배어있었고, 나의 말과 행동에는 나의 정당함을 입증하고픈 안달이 묻어났다. 나의 에고는 형상의 변화에 방응하고 방어하느라 잡다한 생각과 사념은 잠시도 쉬지 않고 밀물로 쳐들어왔다 썰물로 쓸고 나갔다. 하루종일 "나"라는 에고에 휘둘려 살다가 저녁에 침대에 누워 다시 에크하르트톨레가 조용히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리고, 다시 다음날 아침이면 에고가 나를 들쳐 업고 뛰어다니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머리가 터질 듯 사념이 많아지는 날은 머리서기를 하고 오래 머물렀다. 들숨과 날숨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금세 어깨가 무너지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숨소리를 고르기 위해 사념을 잘라낸다. 쳐버린다.


에크하르트톨레의 책을 다 보고 다시 집어든 책은 우연히도 코이케류노스케의 초역부처의 말이었다. 


"자기 내면을 응시하면 몽롱한 의식을 깨울 수 있습니다. ' 지금 게으름 피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화가 나고 있다' '이번에는 응석을 부리고 싶다' 이렇게 자기 내면을 의식하여 늘 알아차린다면, 자기 내면을 끝없이 응시하며 조절하는 사람은 생존본능에 지배당해, 무의식적으로 폭주해 온 노예와 같은 상태에서 마침내 자유에 다다릅니다." 


이 말은 왠지 가슴에 팍 와닿았다. 감정의 노예로 살아온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에고가 받아들이는 대로  불쾌해지거나, 기분이 업되어서 그대로 지껄이고, 그대로 대응하고, 그대로 행동하고, 그대로 생각을 키웠다. 그리고, 그것이 나였다. 불쾌하거나, 우울해지거나, 우쭐해지거나,  불안해지는 감정 그대로가 나였다. 무의식적으로 폭주해 온 감정의 노예와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감정에게 '나를 갖고 놀며 나인 척하세요' 하고 고삐를 고이 넘겨주었다. 내면을 응시하고 알아차린다는 것은 나의 의식이 시시각각 날뛰는 내 마음과 기분과 생각의 주인이 되어  그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응시하면서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그때의 기분과 감정과 생각을. 또 그것들이 폭주를 시작했을 때에도, 폭주를 마치고 힘들어 나자빠져 잠잠해졌을 때도, 나의 의식이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에크하르트 톨레를 읽을 때의 추상적인 개념이 갑자기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반열에 오른 것인가?

진정한 행복의 본질이라는 현존의 알아차림, 어떠한 형상의 변화에도 자유롭고 평화로울 수 있다는 내면 의식의 깨어있음........ 그 세계가 궁금해진다. 

눈을 감고 명상을 시도해 본다. 잡생각이 웽웽거린다. 파리새끼처럼 

끊임없이 잡음을 내고 달라붙는다. 아. 정말 때려주고 싶다. 파리새끼도, 잡념도.....

나는 멀었다.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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