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의 기능, 밥만 짓지 않습니다.
놀라 자빠질 일이었다. 내가 식당을 열었다는 사실.
그것도 오픈키친.
모든 부잡함은 실시간 공개된다.
두 번 놀라 자빠질 일이었다. 스페인에 온 지 1년 만.
아는 단어는 '올라 (안녕)'와 '그라시아(고마워)'
그래서, 손님들의 눈은 동그래진다.
말 못 하는 동양여자의 원맨쇼!!!!
하지만, 이렇게 손님들과 친구가 되었다.
내가 말을 못 하니까 손님들은 서로에게 메뉴를 설명해 주었다.
일손이 부족할 때는, 손님들이 먹은 그릇을 정리해 갖다 주었다.
단골손님은 옆 테이블 손님에게 음료도 내주고 휴지도 갖다 준다.
전화가 와서 못 알아들으면 앞에 앉아 있는 손님에게 수화기를 줘버린다.
손님은 예약을 받아 예쁘게 적은 메모장을 건네준다.
병뚜껑이 안 열리면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에게 열어달라고 내밀면서,
내가 손님의 와인병을 따주는 법은 없다. 나는 타고 있는 만두를 뒤집으러 가야 하니까,
오픈키친이므로 부잡함도 공개되지만, 손님이 음식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도 살필 수 있다. 하루는 부모와 함께 왔던 아이가 바에 앉아 맛있게 밥을 한 그릇 비웠다.
"더 먹을 수 있어?"하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의 그릇을 받아서 같은 양의 음식을 한번 더 만들어주었다.
아이는 또다시 맛있게 그릇을 비우고 환하게 웃으며 가게를 나섰다.
다음날 어떤 아이가 접시에 무언가를 소중히 안고 나를 찾아왔다.
"민아! 너 주려고 내가 아침에 구웠어!!!"
내가 "너는 누구?"하고 물어보고 싶은 찰나, 다행히도 그 아이의 얼굴이 딱 떠올랐다.
어제 밥을 한 그릇 더 만들어 주었던 아이였다. 정신없이 바쁜 시간이었고, 갑작스러운 선물에 깜짝 놀랐지만, 일손을 멈추고 손을 닦고 나가서 아이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그때 즈음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삶의 의욕도, 식욕도 없어서 하루 종일 사과 두 알 정도를 먹으며 버티던 날들이었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고 수북한 설거지통 앞에서 케이크를 덮었던 랩을 벗겨 보았다. 갓 구운 케이크를 오븐에서 꺼내자마자 덮었는지 비닐 랩에 이슬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진한 치즈케이크 냄새에도 식욕이 돋지 않아서 랩을 다시 덮어두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13살 남짓한 남자아이가 토요일 아침에 식당아줌마를 주려고 치즈케이크를 만들다니!!!!'
나는 이 케이크를 먹어야 했다. 내가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크게 이 케이크를 먹어야만 했다.
나른한 늦잠을 자도 아까운 토요일 오전을 그저 밥 한 그릇 더 만들어 준 식당아줌마를 위해 케이크를 굽느라 아침 내내 분주했을 아이가 소중히 품고 온 치즈케이크는 따뜻했고 고소했다.
손님들은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되었다고 시간을 내어 만나거나, 모임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저 따뜻하게 안부를 물어주는 것, 필요한 일이 있나 살펴주는 것, 필요할 때, 어떻게 해서든 도와줄 것이란 것을 서로가 앎으로써 우리는 친구이다.
가게에 자주 왔던 부부의 딸 이레네는 우리 가게 일을 도와주게 되었는데, 서빙하고 치우는 일뿐 아니라 내가 혼자서 허덕일 때마다 필요한 물건을 사다 날라 주었다. 이레네는 단 한 번도 내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배후에는 이레네 부모님들의 도움이 있었다. 본인이 여의치 않을 때는 부모님께 부탁을 해서 부모님이 내 가게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차로 실어다 주곤 한 것이다.
식당 단골손님이 우렁각시처럼 식당아줌마의 일을 몰래 돕고 있었다니!!!
내가 이웃들과 빠에야를 해 먹기로 하고 이레네에게 레시피를 물어보자, 이레네 부모님은 재료와 20인분 빠에야 팬과, 불, 가스통까지 모두 싸들고 와서 빠에야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날을 계기로, 나와 딸은 물론, 우리 집에 같이 사는 이웃들, 심지어 그 당시 우리 집에 숙박했던 손님까지 초대를 받아서 이레네 아빠의 요트를 얻어 타기도 했다.
주딧이 가게에 처음 왔던 날을 기억한다. 까만 눈동자의 빛은 깊고 따뜻했고 강렬했다. 그녀는 말수도 많지 않고, 가게에 자주 오는 편이 아니었는데 내 머릿속에 남는 손님이었다. 어느 날, 주딧이 요가 선생님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가 여름이면 고메라(La Gomera)에서 개최하는 요가 리트릿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가끔 그녀가 밥을 먹으러 왔고, 우리는 간단히 안부만 묻곤 했다.
'해외살이 외롭지 않으세요?'라고 묻는 이들이 많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밖에 나가면 '올라, 올라!' 인사할 사람은 많지만, 챙기고 신경 쓸 사람은 딱히 없는 해외살이가 무척이나 생리에 잘 맞는다.
평상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해외살이지만, 몸이나 마음의 병이 날 때는 위기상황이 된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혼자 있으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머릿속을 발화점으로 해서 온몸이 언제 재로 변할지 모른다는 위기가 엄습한 적이 있었다. 길거리로 뛰쳐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할 수도, 가게손님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멀리 있기에 작은 일에도 걱정을 할 가족과 친구들에게 다가갈 용기도 없을 때였다. 주딧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주딧, 내가 지금 조금 힘든데, 너와 이야기할 수 있어?"
주딧은 바로 달려왔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몇 번이고 내 안부를 챙겼고, 잠을 잘 수 있는 허브를 구했다. 책을 가져다주고, 명상호흡을 가르쳐주고 먹을 것을 싸왔다. 손을 잡아주었고, 깊고 검은 눈동자를 내주었다. 나는 그녀의 블랙홀 같은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뭐든 말했다. 주딧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했다.
"One action can save a person's life(주1)"
(하나의 행동이 한 사람의 인생을 구할 수 있다.)
식당에 길거리 쥐가 들어온 적이 있다. 밤에 청소를 도와주던 친구가 그 쥐와 맞닥 드리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는데, 그 사진을 보자마자 나는 핸드폰까지 내동댕이치며 혼비백산했다. 다음날 가게 문을 열어야 했는데, 나는 가게 문 앞에서부터 벌써 공포에 휩싸여 오줌을 쌀 지경이었다. 청소일을 돕던 친구가 용기를 내서 나 대신 문을 열어주겠다고 왔는데, 가게문을 열자마자 기겁을 하면서 문을 닫았다. 의자 밑 구석에 앉아있는 쥐님과 또 눈인사를 하고 만 것이다.
가게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길 건너편에서 부들부들 떨던 나는 에두네 카페로 뛰어갔다. 카페문이 닫혀있었다.
에두는 우리 가게 맞은편 카페주인인데, 한 번은 일을 마치고 우리 가게에 아들과 함께 와서 늦은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음식이 나와서 가져다주었는데, 아들만 앉아있고, 에두가 안보였다. '음식이 식으면 어떡하지?'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에두가 무언가를 들고 헐레벌떡 나타나서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민아! 아까 저 손님이 커피 달라고 했지? 내가 넉넉하게 다섯 잔 정도 만들어왔어!!!"
손님에게 커피머신이 고장 나서 커피 서비스를 못한다는 내 말을 들은 에두가 몰래 자기 가게로 가서 내렸던 셔터를 올리고 보온병에 커피를 만들어 온 것이었다!!!!!!
에두는 가게 앞을 오가며 언제나 큰 소리로 인사한다. 그러고는 항상 "도울 일 있으면 말해!!!"라고 한다. 그런데, 이건 인사치레가 아니고, 정말로 뭐든지 몸을 던져서 도와준다. 처음 가게를 시작하고 부탄가스통에 호스 연결법을 몰라서 할 수 없이 엔지니어를 부르고 기다리는 도중에도 안부를 물으러 들어온 에두는 뚝딱 호스를 연결해 주었다. 에두가 연결해 주고 떠난 지 일분 후에 도착한 엔지니어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출장비만 받아간 적도 있다. 가게에 갑자기 못질이나 드라이버가 필요할 때도 에두네 가게로 간다. 그래서, 쥐님을 영접한 날도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끌고 에두네 카페로 뛰어갔는데, 에두가 없었다!!! 에두에게 전화를 했다.
"민아! 오늘 나는 휴가를 내고 교외에 나와있어. 그런데, 걱정 마! 내가 친구들을 보낼게!!!"
"아니,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고... 그럼 내가 어떻게 해볼게... 쉬는데 미안해...."
전화를 끊고, 서비스 업체를 알아보려고 손가락을 벌벌 떨며 인터넷을 뒤지고 있는데,
에두와 전화를 끊고 3분이 지났을까? 세명의 장정이 기다란 장대를 갖고 내 가게 앞에 나타났다.
긴장과 불안에 간밤에 잠까지 설친 나는 그 순간, 에두가 이렇게 빨리 친구들을 보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고, 정신이 멍해지면서, '내가 서비스업체에 연락을 벌써 했던가? 그 사람들이 이렇게 빨리 올 수가 있나?' 어안이 벙벙해졌다.
에두의 친구 세명은 1분도 되지 않아 쥐님을 다시 길거리로 몰아냈다. 혹시라도 다른 놈이 있는지 가게 안까지 샅샅이 살피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내 어깨를 도닥여주고 사라졌다.
우리는 언제나 반갑게 안부를 묻곤 했다.
"잘 지내요?"
"아이고, 살이 빠진 것 같아, 무슨 일 있어?"
"언제 밥 한번 먹어요!!!"
언제 밥 한 번 먹자고 망발한 약속이, 걱정반 호기심 반으로 물은 안부가,
챙김과 배려로 위장한 관심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허공으로 흩어지는 적이 다반사였다.
나는 '사랑은 행동'이라는 것을 배웠다.
나는 이 사람들과 속시원히 소통한 적이 없다.
하지만, 언제나 이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듣는다.
나에게 힘든 일이 있었을 때도 손님들은 모두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궁금증과 호기심에 찬 눈으로 나에게 묻지 않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따뜻하게 나를 바라봐주었고, 내 음식을 칭찬해 주었고,
내 가게에 와 주었고, 길거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내 안부를 물어주었고,
'나는 여기에 있어.'라고 눈으로 말해주었다.
걱정과 위안을 남발하지 않았고, 생색내지 않았고,
나에게 평소에 하던 그대로를 두 배 열심히 해 줄 뿐이었다.
필요하다고 말할 때, 행동할 뿐이었다.
밥을 지으며, 넘칠 만큼 사랑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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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Thich Nhat Hanh, Transformation & Hea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