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네가 떠난 날도 야끼소바를 볶았다.

이것을 끝내고 저것을 하면 새날이 온다.

by Mina

누가 시켜서 시작한 일도 아니었고, 절박함에 해야만 했던 일도 아니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어느덧 식당 일에 뒷덜미를 잡혀서 하루하루가 종종걸음이 되었다.

절대적인 시간과, 절대적인 노동이 요구되었다.

처음 시작하면서 품었던 자영업에 대한 환상은 사라지고,

하루를 담보 잡힌 채무자로 살았다.

종일의 시간과 전신의 에너지를 다 바쳐서 하루를 버티고 나면,

새로운 하루가 새로운 빚으로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일에 치여서 힘겹게 꾸역꾸역 살아가던 어느 날, '너'가 떠났다.

내가 일에 치여서 뿌려댄 무거운 기운 때문이었을까?

'너'는 가볍고 밟고 흥겨운 세상으로 사뿐히 발걸음을 틀었다.

'너'가 가려는 세상은 내 생에선 상상조차 안 되는 가볍고 즐거운 세상이었다.


너와 나는 소위 꿍짝이 잘 맞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하고 주고받는 이야기에 눈이 반짝이고 에너지가 치솟았다.

너의 아이디어는 내게 와서 배가 되고 나의 아이디어는 네게 가서 가속이 붙었다.

실행력 갑인 나는 이렇게 나눈 생각을 사부작 실행에 옮겼고 너는 두 팔 걷고 거들었다.

식당도 그랬고, Vacation House 카사민아도 그랬다.

지지할 준비가 되어있는 상대와 나누는 호기심과 생각은 언제나 기쁨과 힘을 키웠다.

'나'라는 경계는 어느덧 사라지고, '너'와 하나가 되어서 커다란 '우리'로만 존재했다.


'너'가 더 이상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며 살고 있는 '나'의 나라를 떠나서

즐거운 나라로 가겠다고 했을 때, 나는 어리둥절했다.

함께 했던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온데간데없고 '우리'라는 덩어리로 살았는데,

'너'는 갑자기 그 덩어리에서 '너'의 몫을 칼같이 잘라서 다른 세상으로 간다고 했다.

그리고, 그 세상에 나의 자리는 없었다.

덩어리에서 네 몫이 나가고, 떨어지고 남은 부스러기를 엉거주춤 주워 뭉쳐서

다시 '나'를 만들기 전에는 화도 나지 않았다.


'너'가 떠난 날도 야끼소바를 볶았다.

문을 열고 손님을 맞으며 음식을 한다는 행위가 까마득한 길이었지만,

점심장사도 해냈고, 저녁장사도 버텼다.

가늘어진 몸뚱이 위에 부스러진 정신을 덕지덕지 붙이고 정신줄을 부여잡았다.


'김밥을 말고, 만두를 뒤집는다.'

'2번 야끼소바가 나가고, 3번 디저트를 준비한다.'


일을 하지 않을 때, 머릿속은 쑥대밭이었다.

초여름 소낙비에 잡풀 올라오듯,

생각은 지맘대로 쑥쑥 자라서 지꼴대로 내 머릿속을 뒤덮었다.

잡생각에 밤새 시달리고 아침이 되면 퀭한 눈으로 운동을 갔다.

이를 악물고 사이클 페달을 돌리는 날도 있었지만, 중간에 페달을 멈추고 내려와

바닥에 멍하니 앉아있던 날도 있었다. 몸이 야위어 딱 달라붙는 레깅스는 몸배가 되어갔다.


'너'는 나를 떠나고 나서 길고 긴 계산서를 보내왔다.

나를 도왔던 모든 일에 시간과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심부름, 설거지, 선반 달기, 수전교체.....

세세한 항목에, 투입된 시간과 가격....

함께 보낸 시간, 함께할 미래,

천 겹의 약속, 만 겹의 웃음, 영겁의 추억이

한 장의 엑셀쉬트에 빼곡히 적힌 숫자가 되어 가지런히 돌아왔다.




"엄마랑 어디를 좀 갈래? 어디를 좀 가야 숨을 쉴 것 같아..."

"어디 가고 싶어 엄마?"

"가능한 먼 곳. 가능한 야생인 곳, 아, 몰라... 네가 정해!!!"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딸을 공항에서 낚아채서 딸이 정한 아무 곳을 향해 떠났다.

코스타리카! 지도상에 어디 붙어있는지도 잘 모르는데, 일단 멀어서 좋다. 그지?


여행은 바보의 천국이다. 첫 여행에서 우리는 장소들의 냉담함을 발견한다. 집에 있을 때는 나폴리나 로마에 가면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나의 슬픔을 잊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가방을 꾸리고 친구들과 얼싸안으며 인사를 나눈 뒤 배에 오른다. 그리고 마침내 나폴리에 도착해 꿈에서 깨어난다. 내 곁에는 무정하게도 내가 벗어나고자 했던 것과 똑같은 가혹한 현실과 슬픈 나 자신이 있을 뿐이다. 나는 바티칸과 궁전들을 찾는다. 풍경과 그것들이 보여주는 암시에 취한 척한다. 그러나 나는 취하지 않았다. 내 등 뒤에서는 나의 무거운 현실과 나의 비대한 자아를 걸머진 거인이 내가 가는 곳마다 나를 따라다닌다. (주석 1)


코스타리카에서는 무엇이든 자랐다. 어디서든 생명이 움텄다.

고개를 90도로 꺾고 한없이 바라 보아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아름드리나무뿐이 아니다.

어디서나 새로운 줄기와 가지가 뻗어서 무엇인가를 휘감고 자라고 있었다.

한 나무를 휘감은 주변의 가지들을 구분해 내고 가려내야 그 나무의 정체가 보였다.

처음에는 하나의 나무의 정체성을 밝히고 싶었는데, 이 땅에서 정체성의 구분은 의미가 없는 듯했다.

하나의 식물, 하나의 초록, 하나의 생명 덩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서로에게 엉겨 붙어서 오로지 생명력을 키우는 것에만 전념하는 그들에게 경계는 무의미했다.


나를 둘러싼 주변은 24시간 생명력으로 꿈틀댔다.


파도는 밤새 철썩이고, 벌레는 기어 다니고 날아다닌다.

원숭이는 적막한 어둠 속에도 나뭇가지를 타고 다니며 망고를 떨어뜨렸다.

오소리만한 다람쥐가 나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열매를 따먹느라 부산을 떤다.

천둥번개가 치는 밤에는 스컹크가 숙소 천정 위의 작은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어떤 순간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조용한 나뭇가지 조차 나무늘보가 잠자고 있다.

생명의 소리와 생명의 기운이 사방군데서 웅성댔다.


비단, 주렁주렁 자라는 것은 열대 과일뿐만이 아니다. 곰팡이도 자랐다.

옷에도, 가져간 트렁크 안에도, 배낭에도, 칫솔을 넣은 파우치에도 곰팡이가 자랐다.

어디서나 움트는 생명력이 징글징글해지다가 이내 그 힘 앞에 무력해졌다.

"이 소리를 들으러 여기까지 온 것일까? 숙연해지는 생명의 소리 "



KakaoTalk_20251117_190432662.jpg
KakaoTalk_20251117_190432662_03.jpg
KakaoTalk_20251117_190432662_06.jpg
KakaoTalk_20251117_190432662_04.jpg






한동안 닫았던 가게문을 열었다.

여행이 아무리 바보들의 천국이라고 해도, 나는 그곳에서 움트는 생기를 받았다.

그 생명력에 똥침을 맞은 삶의 의지가 조금씩 분출됐다.

가게를 접지 않기로 했다. 집도 혼자 고치고 꾸려나가기로 했다.


빨리 하겠다는 조급함을 버리면 될 터였다. (천년만년 걸리는 스페인식으로 하자)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을 줄이면 될 터였다. (바가지도 좀 쓰고, 마음에 덜 들어도 넘어가자)

힘겨울 때는 어디에 좀 비비고 엉겨 붙으면 어떻게든 살 터였다.(코스타리카 나무에서 배우자)


이제는, 뒷덜미를 잡고 달려주는 하루가 있어주어 살아남았다.

날이 새면 새 날이 빚쟁이처럼 찾아와서 살아내라고 호통을 쳤다.

벌떡 일어나서 장을 보러 가라 했고, 무엇이든 챙겨 먹으라 했고,

생각은 떠오르면 단도리질 하라 했다.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오면 긴 호흡을 하고,

한 가지만 생각한다. 이것을 끝내고 저것을 한다.


장을 보고, 만두소를 만든다.

빨래를 돌리고, 잡초를 뽑는다.


내가 덫을 보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렇게 될 운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운명의 결정 앞에서 무지한 자가 나 혼자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 안에서 선한 길을 알게 되니 또한 얼마나 행복합니까. 자신을 내려놓고 울 수 있는 자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운명이 뒤덮을 때는 당신을 한밤처럼 어둡게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당신의 손을 잡아줄 것입니다. 만약 운명이 수백 번이고 당신의 목숨을 뺏으려 한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고 당신을 치료하고자 위함입니다. 만약 운명이 길 위에서 수백 번 당신을 막아 세운다면 하늘 위에 당신의 거처를 마련해 주기 위함입니다. 만약 운명이 당신을 두렵게 한다면 그것은 그의 자비로움을 알게 하기 위함이고, 그의 안전한 왕국의 존재를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석 2)


덫을 보지 못한 내 운명에서 선한 길을 보았다.

야생의 생명이 치료해주고, 친절한 생명이 손잡아 주었다.

길 위에서 숨이 턱턱 막혔던 것은,

하늘 위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나 보다.

.


----------------------------------------------------

(주석 1) 랄프왈도 에머슨, 자기신뢰, 동서문화사.

(주석 2) 루미, 루미 시집, 시공사.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7화밥을 짓고, 사랑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