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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하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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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다솜 Apr 26. 2024

일하는 맛 ;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글 쓰는 기획자입니다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업가이기도 하고, 기획자이기도 하고, 작가이기도 하고, 때론 디자이너이기도 하며, 마케터인 동시에 종종 컨설턴트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직업이라는 어떤 명칭을 떼어 놓고, 제가 하는 일의 성격만을 놓고 본다면 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일이 쥐어져도 결국엔 해내는 사람, 어떤 문제든 해결책을 찾아내 일이 되게끔 만드는 사람이죠.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했어요. 27살에 전 남친이자 현 남편의 회사에 합류한 후, 몇 달 되지 않아 뜻하지 않게 회사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 버렸어죠. '기둥'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쓰긴 했지만, 합류 당시의 회사는 동아리 수준이었습니다. 사무실은 과방 같은 느낌이랄까요. 직장인 3년 차였던 제 눈에도, 어떻게 이렇게 회사를 운영하나 싶을 정도의 심각한 수준이었죠. 


일은 없는데, 사람만 득실득실하고, 매출은 안 나오고,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던 당시의 상황. 결국 당시 함께하고 있던 직원들이 전부 퇴사하고, 남편과 저, 그리고 창업멤버였던 팀장님 한 분과 다시 처음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이래서 기둥이 되어버린 거예요).

당시엔 명확한 회사의 정체성도 없었어요. 그저 망하면 안 된다, 생존이 최우선이다, 하는 생각으로 주어지는 일들을 어떻게든 해내기 시작했죠. 제게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뭔 방법을 쓰든, 일단은 일이 되게 해야 했어요.


이 당시의 경험 덕분에 일하는 근력이 생긴 것 같기도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다양한 일들을 쳐내기만도 바빠 어디선 디자이너, 어디선 카피라이터, 어디선 컨설턴트, 어디선 강사로 일을 하며 일하는 자아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이 오더군요. 뭔가 계속 해내면서 근력이 쌓이는 것 같긴 한데, 딱히 내세울만한 전문성은 없는 것 같은 불안함? 특히 당시엔 'N잡러'나 '긱이코노미' 같은 말이 생기기도 전인 2017년이었기에 일을 하면서도 쉽게 풀리지 않는 고민에 꽤 고통스러웠던 시절이었어요.


그때 서점에서 제 직장생활의 성경과 같은 책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제현주 대표님의 『일하는 마음』이라는 책이었죠. '나를 키우며 일하는 법'이라는 부제가 제 눈을 사로잡았어요. 이 책에서 만난 두 개의 문단이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하나의 고정된 주체로 상정하고, 거기에 딱 맞는 하나의 직업을 찾으라는 게 여태껏 들어온 조언이기 때문에 n잡러는 "대체 나는 누구인가"에 명료하게 답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그러나 N잡러에게 필요한 것은 고정된 단 하나의 답을 찾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답들을 서로 연결하여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서사가 유동하는 정체성을 붙들어주는 하나의 정박지가 된다. 
- [N잡의 기술] 中
나는 "전통적인 의미의 전문성을 어떻게 갖추느냐보다는 자신만의 탁월성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답했다. 전문성이 한 가지 이름의 직업과 결부되는 것이라면, 탁월성은 일을 바라보는 접근법, 다양한 분야로 확대할 수 있는 중심 기술과 연결된다. 중심 기술은 사실 하나의 서사이자 이름 붙이기다.

기자였다가 번역가이자 작가로 일하고, 또 비영리단체의 권리옹호부장에서 사업본부장을 거친 김희경 작가는 자신의 중심 기술이 "정보를 구조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업과 직위는 계속 바뀌었지만, 정보를 구조화하는 것이 언제나 자신의 일이었다는 것이다. 
- [우연성과 자율의 조건] 中


이 문장들을 읽으며 저는 제 스스로에게 나는 '문제를 해결해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라는 스토리를 만들어주었어요. 그리고 이 서사를 저의 일하는 정체성을 붙들어주는 하나의 정박지로 여전히, 7년째 여기며 살고 있죠. 


실제로 회사에 신입사원이 들어왔을 때, 서로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에서 함께 일하는 팀원이 저를 소개할 때 '일이 되게 해야 하면 장 팀장님을 찾아가시면 된다'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그때 제가 규정한 스스로의 정체성이 일관성 있게 잘 유지되어 온 것 같아 참 뿌듯했습니다.


어떻게 나는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 되었나

'나'의 서사를 만들어보자 하는 생각을 하기 전까진 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다녔던 것 같아요. 불안한데 이대로 가만히 있기에는 마냥 처지는 느낌이고, 뭐라도 배워보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죠. 친구들에게도 이런저런 고민 상담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사실 지나고 나서 보니 그때 제게 필요했던 건 현실을 직면하는 일이었어요. 


두루뭉술하게 뭔가를 배우러 다니기 전에 내가 처한 상황을 직면해서 지금의 나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쪼개고 쪼개서 하나씩 행동으로 옮겨나갔어야 하는데, 정말 이렇게 행동에 옮기기 시작하면 그 결과까지도 내가 가감 없이 마주해야 하니까, 그게 좀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막연히 뭔가를 배우고, 누군가를 만나고 하는 행위 자체에서 위안을 얻었고요. 그러면서 잠재의식 속에선 뭔가 하긴 해야 하는데 계속 미루고만 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함은 여전했습니다.


하루는 그렇게 고민만 하고 있는 저에게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그냥 니 걸 해."라고요.

"어차피 우리가 만들어가는 서비스고, 누구도 하지 않았던 서비스인데 정답이 어디 있어. 정답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우리만의 정답을 만들어가야지. 어차피 우리 건데 실패하면 좀 어때. 자기가 누구한테 혼날 사람도 없고, 자기 해보고 싶은 대로 해볼 수 있는데 남들한테 조언 얻으러 다닐 시간에, 그냥 우리가 가설을 세워서 과감하게 시도하고, 만약 실패하면 거기서 또 개선할 점을 얻어서 다시 해보고 하면서 우리 걸 만들어보자."


이 말을 듣고, 그때부터 고민의 방향을 밖이 아닌 안으로 가져왔어요. 남들에게 의견을 묻거나, 두루뭉술한 불안감으로 강의를 듣거나 책 속으로 도피하는 걸 멈췄어요. 일단 내가 먼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대로 행동해 보고, 그 과정에서 모르는 게 있으면 그때 뭔가를 찾아보고 배워본다는 식으로 행동했죠. 


그러다 보니 문제가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매출을 어떻게 올려야 하지?"라는 질문이 "이 상품은 30-45대 여성들에게 OO 하는 포인트로 소구를 해보면 잘 통할 상품인데, 어떤 채널을 통해서 홍보를 해야 효과적일까?" 하는 식으로 질문이 구체화되기 시작했죠. 그리고 그런 경험이 반복되니, 제 안에 나만의 '꺼리'들이 쌓이기 시작했어요.


'글 쓰는 기획자'라는 또 다른 서사

그렇게 쌓이는 '꺼리'들을 나만의 관점과 경험으로 재해석해 '또 다른 내 것'을 만들려고 글을 씁니다. 때때로 그 기록은 하루를 회고하는 일기가 되기도 했고, 인스타에 올리는 릴스가 되기도 했고, 블로그 포스팅이 되기도 했죠. 그 과정에서 저는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라는 서사에 '글 쓰는 기획자'라는 또 다른 서사를 살포시 떠올리게 되었어요.


결국 제가 하고 있는 일에 이름표를 붙여 본다면 '기획자'가 될 것 같아요. 거기에 조금 더 욕심을 내어 내 나름의 서사를 붙여본다면 '글 쓰는' 기획자가 되고 싶고요. 그 이유는 기획을 잘하고 싶기 때문이죠!


전 좋은 기획은 좋은 서사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서사를 구축하는 힘은 남들이 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 내 시선과 관점으로 가설을 세우고, 행동하고, 검증하고, 개선하는 일에 성실히 임하는 자세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몇몇의 사람들에겐 '글쓰기'라는 행위가 그 서사를 만들어가는 데 좋은 도구가 되어준다고 생각하고요.


글을 쓴다는 건 내 생각의 빈틈을 마주하고, 나의 서사를 갖추는 일입니다. 특히 기획자는 클라이언트, 디자이너, 개발자 등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키를 움켜쥐고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이런 과정 속에서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고 일이 되도록 하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실행하고 책임지는 힘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런 힘은 누군가에게 배워서 구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부지런하게 자기만의 서사를 쌓은 이들의 근력으로부터 나오게 되죠.


<서사의 위기>라는 책에서 철학자 한병철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스토리는 서사가 아니다. 스토리, 즉 정보는 끊임없이 등장하는 다음 스토리로 대체되어 사라진다. 반면 서사는 나만의 맥락과 이야기, 삶 그 자체다. 나의 저 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기에 방향성을 띤다. 곧 사라져 버릴 정보에 휩쓸려 자신만의 이야기를 잃은 사회, 내 생각과 느낌과 감정을 말하지 못하고 입력한 정보를 앵무새처럼 내뱉는 사회의 끝은 서사 없는 ‘텅 빈 삶’이다.


좋은 기획자가 되는 건 좋은 서사를 구축할 수 있는 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요즘. 나만의 서사를 담을 그릇이 필요하겠다는 생각과 항상 스크롤 압박을 주는 장문으로 인친들로부터의 원성이 자자한 인스타에서 벗어나, 길고 길게 내 생각을 펼쳐놓아도 큰 문제가 없는 브런치로 이사를 왔습니다. 



텅 빈 삶이 아닌 꽉 찬 삶을 살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도 일을 하면 닥치는 자잘하면서도 커다란 문제를 뚝딱뚝딱 해결해 결국엔 일이 되게 하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글 쓰는 기획자로 브런치의 맛을 살려보겠습니다. 일단은 「일하는 맛」「읽는 맛」으로 매거진을 나누어보았어요. 「일하는 맛」은 일을 하면서 느끼는 생각과 에피소드들을 그때그때 생각나는 키워드 위주로 서술해 볼 예정이고, 「읽는 맛」은 그야말로 내가 읽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아볼 예정입니다. 


그럼 오늘은 제 직장생활의 성경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일하는 마음] 속 한 구절로 다시 돌아가 마무리를 해볼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가 자기만의 서사를 쌓아가길 바라며.


"같은 일을 해도 그 일의 경험을 통해 써 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얼핏 보아 파편적이고 불연속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일관되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은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 기준에 맞춰 자기 일의 경험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만들어내는 탁월성은 전문성으로 치환되지 않더라도 굳건한 디딤돌이 되어준다"- [전문성이 아닌 탁월성]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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