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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잎지던날 Jan 02. 2019

치킨은 흑인 노예가 먹던 음식이었다.

치킨은 밀가루 옷을 입혀 기름에 튀긴 닭요리로 한국인의 야식을 책임지고 있는 음식이다. 정확한 명칭은 프라이드치킨(Fried Chicken)으로 닭튀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예전에는 치킨보다는 통닭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는데, 통째로 닭을 튀겨내는 모습에서 온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는 튀긴 형태에 상관없이 통닭이나 치킨이나 비슷한 맥락으로 통해서 통째로 튀긴 닭은 옛날 통닭, 시장 통닭으로 별도로 지칭하기도 한다.





치킨의 시초는 미국 흑인 노예들이 먹던 음식에서 비롯됐다. 17세기 미국 남부에서 농장을 운영하던 백인들은 닭요리를 자주 먹었는데 주로 오븐에 굽는 로스트 치킨이었다. 로스트 치킨은 살이 많은 몸통으로만 조리를 했기 때문에 살이 적은 목과 날개는 버려졌다.


버려진 날개와 목은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흑인들의 숙소에는 비싼 오븐이 없어 로스트 치킨을 요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븐을 대신해 돼지기름에 닭을 튀기고 들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허브를 향신료로 사용해 맛을 냈는데 이것이 바로 프라이드치킨이다.


이렇게 만든 프라이드치킨은 바삭하게 튀겨져 뼈째 먹을 수 있었고 열량도 매우 높았다. 고강도 육체노동에 비해 고열량 음식을 쉽게 섭취할 수 없었던 흑인들에게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다.

프라이드치킨의 발전은 인종차별도 한몫했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후에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여전히 심했다. 특히 남부지역은 그 차별이 유독 심했는데 흑백분리정책을 실시하면서 흑인은 백인이 드나드는 곳엔 갈 수 없었다. 이는 레스토랑도 마찬가지였다.



흑인 가정부 이야기를 담은 영화 <헬프>



흑인들은 어쩔 수 없이 음식을 싸서 다녀야 했고, 장시간 보관이 가능하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치킨은 도시락으로 제격이었다. 이는 남부 흑인 가정마다 치킨요리가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됐고, 흑인들의 소울푸드가 된 이유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프라이드치킨은 비윤리적인 노예제도와 불합리한 인종차별 속에서 탄생한 음식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치킨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건 1960년대 말 즈음이다. 이 시기는 기적적인 경제 성장과 더불어 양계장의 생산량이 10배 이상 증가한 시기로 국민들은 본격적으로 닭요리를 접하기 시작한 때였다. 거기에 1971년 해표에서 처음으로 식용유가 출시되면서 본격적으로 닭을 튀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1977년 한국 최초의 프라이드치킨집인 림스 치킨의 개업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치킨집들이 생겨났고, 1980년대 이르러 처갓집 양념통닭, 메시칸 치킨, 페리카나 치킨 같은 프랜차이즈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문화인 배달문화까지 맞물려 치킨은 순식간에 남녀노소가 사랑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치킨의 진리는 역시 반반 무마니!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는 음식인 만큼 치킨은 다양한 이슈를 몰고 다녔다. 2010년 말 롯데마트에서는 오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통큰 치킨’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많은 프랜차이즈 업체는 이에 집단 반발했고, 롯데마트는 며칠 만에 판매를 중지하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한식의 세계화에 양념치킨이 메뉴로 선정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고, 최근에는 끊임없이 오르는 가격과 배달료가 문제가 되기도 했으며, 기승전치킨이라는 신조어로 젊은이들의 일자리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대변하기도 했다.

이쯤하면 치킨은 흑인의 소울푸드가 아니라 한국인의 소울푸드라 해도 영 과언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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