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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잎지던날 Jan 16. 2019

치즈의 옛 이름은 수유였다.

치즈는 동물의 젖을 굳혀 만든 식품으로 재료와 제조 방법에 따라 그 종류가 수백에서 수천 가지로 알려져 있다.

인류가 치즈를 먹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그러나 치즈에 대한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가축을 기르고 그 젖을 먹기 시작했을 때부터라 추정하고 있다.



재료와 생산 방식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치즈



치즈의 발상지는 일찍이 유목을 했던 중앙아시아로 보고 있다. 아랍의 민화에 따르면 상인들이 사막을 건너던 중 수통에 담겨있던 우유가 발효되면서 만들어진 것이 치즈의 시초로 보고 있다. 현대의 치즈제조방식에 따르면 수통에 담겨 있던 우유가 자연스럽게 치즈가 될 확률은 거의 없다. 다만, 당시 수통은 양의 위로 만들었기 때문에 수통에 남아 있던 박테리아가 우유를 발효시켰던 게 아닐까 싶다. 기원이야 어쨌든 치즈는 서양에 전해지게 되면서 목축업의 발전과 함께 치즈의 종류도 함께 발달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치즈에 대한 기록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3년의 기록을 보면 수유치酥油赤라는 말이 등장한다. 여기서 수유酥油는 버터나 치즈 같은 유제품을 뜻하는 말이며, 치赤는 장사치, 벼슬아치의 ‘치’다. 그래서 수유치는 버터나 치즈를 만드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들은 한 마을에 모여 수유를 만들며 생활했다.


물론 수유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조선은 농업기반의 국가였고 우유를 구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우유의 가공식품인 치즈나 버터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수유는 왕이나 양반만이 먹을 수 있는 귀한 보양음식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시대에도 기록은 남아있다. <고려서> 충렬왕 27년의 기록에 따르면 “병인 초하루에 사재司宰 윤정랑尹鄭良을 원에 보내서 수유를 바쳤다.”는 내용으로 원에 진상할 정도로 당시에도 유제품은 귀한 음식임을 알 수 있다.



치즈와 궁합이 좋은 김치볶음밥



한국에서 치즈를 보편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90년쯤으로 보고 있다. 그 이전에도 치즈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익숙한 식재료는 아니었다. 90년대 중반부터 햄버거나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가 큰 인기를 끌었고, 치즈 또한 더는 생소한 음식이 아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볶음밥, 닭갈비, 떡볶이 같은 음식에 치즈를 더한 음식들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다양한 퓨전음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치즈는 매운맛을 중화시키는 효과가 탁월해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한국에서 치즈를 논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지정환 신부다. 지정환 신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임실치즈와 오늘날 한국에 치즈가 있게 한 인물이다.

본명은 디디에 세스테벤스(Didier t'Serstevens). 가톨릭 사제였던 그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을 찾게 됐고, 임실의 가난한 농민들을 돕기 위해 산양유를 생산하게 된다. 그러나 60년대 한국에서 산양유는 매우 낯설었기 때문에 잘 팔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산양유는 오랫동안 보관이 불가능했다. 지정환 신부는 산양유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했고, 그 해답으로 치즈를 생각하게 된다.



지정환 신부(사진 명인 문화사)



그러나 치즈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에서 치즈를 만든다는 것은 사막에서 우물을 파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제대로 된 기술은 물론 시설도 없었다. 지정환 신부는 잠시 한국을 떠나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치즈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1969년 치즈 생산에 성공하기에 이른다. 이는 국내 최초의 치즈 생산이기도 했다.

지정환 신부의 노력 덕택에 임실치즈는 점차 유통망을 넓혀 갔고, 유명 호텔에 납품까지 하게 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물론 치즈로 얻어지는 수익은 함께한 농민들에게 고루 돌아갔으며, 치즈 공장에 대한 소유권 및 운영권 또한 주민협동조합에 넘긴 상태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정환 신부는 2016년 2월 4일 법무부로부터 한국 국적을 수여받아 진짜 한국인이 됐다.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나 ‘무지개장학재단’을 만들어 장애인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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