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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데이지 Mar 20. 2019

우리한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었나요?

특별한 존재를 통해 우리의 슬픈 운명을 성찰한 문제작 <나를 보내지 마>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저


영국의 시골 기숙학교 헤일셤의 학생들은 학교를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창밖으로 울창한 숲을 바라보기만 해도 두려움에 떨기 때문이다. 세상과 단절된 이곳의 선생들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등의 창의적인 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르친다. 작품이 학생의 영혼을 나타내기 때문이라나. 또 한 선생이 옛날에 흡연했다는 것을 말하며 본인은 그래도 괜찮지만, 학생들은 절대 안 된다고 한다. 


You've been told about it. You're students. You're...special. So keeping yourselves well, keeping yourselves very healthy inside, that's much more important for each of you than it is for me.

그런 것에 관해서는 너희도 들었을 것이다. 너희는 학생들이다. 너희는……좀 특별하다. 따라서 각자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내 경우보다 훨씬 중요하단다.

학생들은 왜 이곳에 갇혀있을까? 무엇이 자꾸 특별하다는 걸까? 첫 페이지부터 궁금증이 들끓지만, 독자는 화자인 캐시가 아는 만큼만 알 수 있다. 캐시가 친구 루스, 토미와 단서들을 찾아 학교와 학생들의 정체를 알아가는데, 그들과 함께 독자도 추측하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아파한다. 


캐시, 루스, 토미는 장기기증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복제인간, 클론이다. 때가 되면 장기를 기증하고 죽을 운명인 것이다. 내심 짐작은 하고 있지만 학교 분위기 때문에 질문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어린 학생들은 미래를 꿈꾸고, 상상한다. 자신들이 본 떠진 모델을 '가능성'이라 부르는데, 가능성을 찾으면 자신이 어떻게 살지 엿볼 수 있다 생각한다.  자신이 성욕이 많다고 생각한 캐시는 야한 잡지를 모아 한 장, 한 장 넘기며 여자들의 얼굴을 살핀다. 혹시 자신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말이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꿈인 루스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중년의 여자를 스토킹 하기도 한다. 자신이 어디로 왔는지, '보통'사람이었다면 어떻게 살았을지 알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간절한 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학생들이 자라서 기부를 시작하고, 루스가 먼저 삶을 마감한다. 연인이 된 토미와 캐시는 기부를 몇 년 미룰 수 있을까 하여 헤일셤의 마담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교장을 만나 충격적인 사실들을 알게 된다. 원래 클론들은 동물처럼, 기계처럼 취급되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헤일셤은 그들이 보통 아이들과 같이 행복한 유년기를 보낼 수 있도록 설립된 학교였다. 그래서 모든 것을 비밀로 하고 보통 아이들처럼 교육했던 것이다. 그들의 예술작품이 중요했던 이유는 세상에 그들이 영혼이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클론을 만든 세상은 자신과, 자신의 남편, 자식의 암 치료가 더 중요했고, 헤일셤은 문을 닫아야 했다. 그리고 기부를 미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어진 운명에 순복해야한다. 헤일셤 덕분에 분명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렇지만 이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학생들을 위해 진실을 감추어왔다는 교장의 말에 캐시와 토미는 고맙다고 말을해야할지 화를 내야할지 몰라 어색하게 집을 나선다. 소설은 진흙 속에 발을 묻고 울부짖는 토미를 그리며 무엇이 정말 이들을 위한 것이었을까 질문한다. 차가운 현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좋은가 감추는 것이 좋은가? 언제나 꿈을꾸고 소망을 갖게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현실에서도 고민해볼만한 문제이다. 


토미가 네 번째 기부 후 세상을 떠난다. 홀로 남은 캐시는 들판을 바라보고 서 있다. 저 멀리서 단짝 친구 루스가, 평생을 사랑한 토미가 나타나진 않을까. 소망을 보내지 못한 채 인생의 끝자락에 서있는 그 모습이 왠지 우리 '보통'사람의 모습 같다. 우리도 유년기를 벗어나 성숙할수록 소중한 사람과 결국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 사실은 누구에게나 아프다. 

I keep thinking about this river somewhere, with the water moving really fast. And these two people in the water, trying to hold onto each other, holding on as hard as they can, but in the end it's just too much. The current's too strong. They've got to let go, drift apart. That's how I think it is with us. It's a shame, kath, because we've loved each other all our lives. But in the end, we can't stay together forever. 

어딘가에 있는, 물살이 정말이지 빠른 강이 줄곧 떠올라. 그 물속에서 두 사람은 온 힘을 다해 서로 부둥켜안지만 결국은 어쩔 수가 없어. 물살이 너무 강하거든. 그들은 서로 잡았던 손을 놓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거야. 우리가 바로 그런 것 같아. 안타까운 일이야, 캐시. 우린 평생 서로 사랑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영원히 함께 있을 순 없어.



<나를 보내지 마>는 클론들을 통해 결국 우리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 소중한 순간들을 쉽게 보낼 수 없는 우리의 얘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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